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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Aug 27. 2020

<모두의 평온을 기원하는 날> 집으로 가는 길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모두의 평온을 기원하는 날>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미야코시 아키코 지음, 권남희 옮김, 비룡소 펴냄



거리에 어둠이 짙다. 이 길에는 오직 엄마 토끼와 아기 토끼뿐이다. 엄마 토끼가 아기 토끼를 안고 있다. 엄마 토끼가 걷는지, 잠시 멈춘 건지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뒤로 보이는 길을 보니 꽤 걸어온 듯하다. 아직 이 둘에게는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제목으로 짐작했을 때 집으로 가는 길이다. 엄마는 아이를 단단하게 안고 눈을 크게 뜬다. 무사히 집으로 가기 위해 다짐하는 것도 같고, 누군가를 발견하고 놀라는 것도 같다. 혹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뜬 것도 같다. 아기는 엄마에게 안겨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표정을 알 수 없지만 불편하지는 않은 듯하다. 목탄의 질감이 거칠게 어둠을 표현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의 표지 그림은 전체적으로 따뜻하다. 건물 창문의 노란빛이 이 둘이 가는 길을 밝혀준다. 집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지는 않겠다.


그림책 『집으로 가는 길』의 표지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다. 어느 순간 어린 내가 그 거리에 서 있다. 밤거리는 신비롭다. 낯설고 두렵지만 금기가 풀렸을 때의 쾌감과 설렘을 동반한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본 불빛이 유난히 밝다. 아련하고 아리다.


어린 내게 집은 아늑한 공간이 아니었다. 낡고 허술한 집에서는 안정감을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은 어딘지 낯설고 불편했다. 불만과 화를 참은 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가족 사이에서 자주 조마조마했다. 그 때문이었나 보다.『집으로 가는 길』에서 편안함과 따뜻함보다는 묘한 서글픔을 느꼈다. 가끔 어떤 기억과 기분이 그림책에 투사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용인데도 뜬금없는 감정이 일렁인다.  


그래서 엄마 품에 안긴 아이의 나른한 행복보다 아이를 안고 집으로 향하는 엄마의 고단함이 크게 보인다. 엄마는 아이를 따라다니느라 지쳤을 텐데 아이를 안고 밤길까지 걷고 있다. 늘 그랬다는 듯이 담담하다. 걸음에서 위대함이 느껴지지만 애잔함도 지울 수 없다. 집으로 향하는 엄마 토끼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어둠과 묘하게 겹쳐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도 같다.


아이에게 밤은 무섭지 않다. 고요하고 포근하다. 아이는 졸린 눈으로 창문 속 이웃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혼자서 쉬고, 누군가는 여럿이 함께 어울린다.


저 안에 당신이 있다. 오늘 하루 고단하고 외롭고 피곤했을 당신이, 내일 역시 비슷한 하루를 보낼 당신이, 소소한 행복을 찾으면서 웃다가도 꾸역꾸역 삶을 소화해야 하는 당신이 노란 불빛 아래에 있다. 아이의 시선이 너무 따스해서 나는 슬프다. 아이는 알지 못하는, 책장 너머에 있는 당신의 삶이 먹먹하다.


가끔 이유 없이 우리의 존재가 서글플 때가 있다. 위대한 줄 알았는데 초라하고, 경이롭다가도 비루한 삶에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아직 풀지 못한 과거의 어느 날이 이 그림책과 만났나 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어딘가가 시리다.


아기 토끼가 그랬듯이 나도 당신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부디 오늘 밤은 모두가 평온하길, 집에서만이라도 편안하길, 포근함 속에서 내일을 맞이하길.


이제 그만 이 책을 놓아야겠다.

 


* 집으로 가는 길, 미야코시 아키고 지음, 권남희 옮김, 비룡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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