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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01. 2020

<아직은 숨기고 싶은 날> 돌 씹어 먹는 아이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아직은 숨기고 싶은 날> 돌 씹어 먹는 아이


돌 씹어 먹는 아이, 송미경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문학동네 펴냄


말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다. 밖으로 꺼내면 별 것 아닌데 오랫동안 침묵했다.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데 나만 그런 것 같아 잔뜩 움츠렸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그 일이 아직도 내게는 거대하다. 차라리 다른 큰일은 말할 수 있지만 그 문제는 꺼내고 싶지 않다.


그건 나의 일부이고, 지나온 과정이기에 대수롭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무렇지 않았는데 내 얘기를 듣고 인상을 찌푸리던 몇 명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내게 다시 물었고, 한번 더 그 사실을 확인했고, 입을 다물어 어색한 침묵을 만들었다. 또 다른 그는 재빠르게 화제를 바꿨지만 그의 눈빛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당신에게만은 나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술 취한 척 한 어느 밤, 홍대 건물 계단에 앉아 어렵게 말을 꺼냈다. 시작은 했지만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여러 번 각오했지만 그 사실을 토해내기 힘들었다. 결과에 대한 원인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애매모호하게 드러내 놓고는 뜬금없이 울음을 터뜨려 마무리했다. 대체 얘가 왜 이러나, 당신은 그런 표정을 짓다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제대로 말하지 않았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말했다고 기만했다. 당신에게만큼은 솔직했다고 오랫동안 나와 당신을 속이는 중이다.



『돌 씹어 먹는 아이』의 '나'는 돌을 좋아한다. 입에 넣고 살살 굴리는 것을, 와작 씹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돌처럼 맛있는 게 없다. 하지만 아이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가족에게도 비밀이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가족들이 실망할까 봐 겁이 난다. 아이에게 돌은 즐거움이면서 죄책감이다. 더는 먹을 돌이 없자 아이는 이유를 말하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난다. 아이는 돌산에서 자신의 비밀을 아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처럼 돌을 씹어 먹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그곳에서는 죄책과 불안이었던 돌 씹어 먹는 일이 당연하고 즐거운 것이 된다. 자신을 이해받은 아이는 용기를 얻는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들키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털어놓는다. 아이의 고백에 가족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가족에게 이제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다름일 뿐이다.    

 

이 재미있고, 발랄하고, 엉뚱한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웃지 못한다. 『돌 씹어 먹는 아이』의 아이는 모든 감정과 문제를 해소했지만 나는 내가 드러날까 봐 두렵다. 말하지 못하기에, 말할 수 없기에 더 그렇다.  터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숨기려 하면서 불안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은 내키지 않는다.


가끔은 비밀을 털어놓고 당신과 한바탕 울고 웃고 싶다. 심각한 일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면서 미련했던 지난날을 가볍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나의 돌을 꺼내고 싶지 않다. 내 돌을 알아보면서 이해해주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면 좋겠다.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만나는 일 역시 없기를 바란다. 보기 싫은 나의 한 부분을 갖고 있는 그들은 위로가 아니다. 부끄러움과 껄끄러움이다.  

 

누구에게나 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억지로 끄집어내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담아둬도 괜찮다.  


가끔은  이해와 위로보다 무심함이 더 고마울 때가 있다.  


  꼭 힘든 걸 말해야 하고, 공유해야 관계가 깊어지는 걸까.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 주고 딱 그만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까. 그러고 보면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게 참 어렵다.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두렵고, 그런 말을 듣고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도 두렵다. 멀어지느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지레 겁을 먹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중략)

  너의 이야기를 물어봐 주고 들어 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윤정은 지음, 비전비엔피-애플북스 펴냄 -



* 돌 씹어 먹는 아이, 세르주 블로크 그림, 송미경 글,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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