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수 없는 밤, 집 근처에 있는 심리상담센터를 생각한다. 간판만 보다가 결국 들어가지 않았던 그곳을 날이 밝으면 가야 하나, 병원으로 가는 게 나으려나, 어디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콧방귀를 뀐다. 어차피 하지 않을 게 뻔한 문제로 이러는 게 우습다.
상담받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친구와 지인에게는 강조하고 강요하고 있으면서 정작 당신은 미루고 미루고 있다. 오래전에는 비용을 걱정했고, 지금은 거기에 '솔직하게 나를 공개할 자신 없음'을 얹는다. 스스로가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으면서 어떤 부분은 명확하게 알고 있으니 무엇을 보여주고 숨겨야 하는지계산하게 된다. 근사하게 포장할 자신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자신도 없다.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진짜 전문가인지도 믿지 못하겠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치유자가 아닌 내담자가 어떤 인간인지 판단하고 비판하는 심판자는 아닌지 의문이다.
하루 종일 불안과 열등감에 시달리지는 않으니까. 하루 종일 괴롭지도 않으니까. 대부분은 말짱하고, 어느 순간에는 즐겁기도 하고, 대체로 평온한 듯도 하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을 테니까. 이렇게 합리화하면서 당신은 또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를 어영부영 보낼 것이다. 그러다 꽤 자주 숨쉬기를 위장해 한숨을 쉴 테고, 밤이 되면 심장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차라리 터져버렸으면 하고 바라면서 또 그 밤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되면 5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는 심리상담센터 간판과 홈페이지에 소개된 상담사 프로필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겠지.
**
그렇게 날이 밝는다. 여전히 불안과 열등감으로 괴로운 중이다. '여기 열등감과 불안으로 자신의 삶을 좀먹은 인간이 있으니.'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저절로 조합된다. 누군가가 이것을 당신의 묘비명으로 새기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상담 대신 혹은 상담을 받기 전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기로 한다.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기 위해 집에서 미리 때를 밀고 목욕탕에 간다는 누군가처럼 당신도 불안이무엇인지 알아야 상담사 앞에서도 떨지 않을 것 같다.
30페이지 남짓 읽다가 덮었던 책을 오랜만에 펼친다. 이 책을 읽었던 그날도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어두운 방안이 당신을 압박했다. 공기가 이렇게까지 무거울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한쪽 귀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다른 한쪽 귀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말투로 봤을 때 일상적이면서 사소한 내용이었다. 좋은 관계로 지내다 자연스럽게 끊긴 인연이었지만 뜬금없이 그들이 나타난 게 공포였다. 그 뒤로 보기 싫은 얼굴들이 나타났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펼쳐졌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당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모든 두려움과 무서움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던 새벽 내내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을 뜰 수 있으면, 손가락 한 마디라도 굽힐 수 있으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만 있으면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공포는 더 강해졌다.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새벽 내내 불안에 관한 책을 검색했고, 날이 밝자마자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주문했다.그때 당신이 원했던 건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는 책이 아니라 불안을 낱낱이 파헤치는 내용의 책이었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라는 문장을 보면서 이 책을 읽으면 불안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다가 왜 멈췄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어야 할 다른 책이 있었을 테고, 뭔가 바쁜 일이 있었을 테고, 책 보다 재미있는 게 많았을 테고, 소란스럽던 마음이 조금은 잠잠해졌을것이다. 혹은 책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심란했을 수도 있다.
불안과 열등감으로 괴로운 지금, 거기에서 파생되는 양가감정과 욕망이 팽팽하게 맞서는 지금, 다시 책을 펼친다. 당신의 상태가 조금은 편안해지길 바라며당신이 읽고 있는 『불안』에 그림책을 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