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 좁은 의미에서 이 말은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을 가리킨다(기혼자, 중위 등).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가리키며, 이 책에서는 이 의미가 더 중요하다. -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농담이 썰렁할 때도),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지위로 인한 불안 -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 불안은 무엇보다도 불황, 실업, 승진, 퇴직, 업계 동료와 나누는 대화, 성공을 거둔 걸출한 친구에 관한 신문 기사 등으로 유발된다. 질투(불안도 이 감정과 관련이 있다)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드러내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경솔한 행동이며, 따라서 이 내적인 드라마의 증거는 흔치 않다. 보통 어디에 몰두한 듯한 눈길, 부서질 것 같은 미소, 다른 사람의 성공 소식을 들은 뒤 이어지는 유난히 긴 침묵 등으로만 간간이 나타날 뿐이다. -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명제 -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 지위에 대한 갈망은 다른 모든 욕구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재능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자극하며, 남들보다 나아지도록 고무하며, 남에게 해를 주는 괴팍한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며, 공동의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결합한다. 그러나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이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 불안 -
"정말 좋았어요. 어젯밤에는 일찍 잠들었고, 아침에는 상쾌했죠.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니까요. 그래서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좀 부끄럽더라고요. 이렇게 편안한데 왜 불안하다며 감정을 쏟았나 몰라요. 민망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질투(불안도 이 감정과 관련이 있다)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드러내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경솔한 행동이며, 따라서 이 내적인 드라마의 증거는 흔치 않다.'라는 문장을 읽고는 속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죠. 성숙하고 우아한 인간이고 싶은데 불안하다며 칭얼거리는 유치한 인간이 된 건 아닌지 걱정과 함께 수치심이 올라왔어요. 뭐 어때, 라며 어깨를 으쓱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사람들이 저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지 않을까요? 감정적이고 미성숙한 인간이라고 흉보고 있는 건 아닌지 또 불안해요. 제가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고, 많은 이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사람이라면 제 불안이 멋있어 보이려나요? 제가 그 위치에 있다면 불안은 당연하다고 인정받겠죠?"
*******
서둘러 뛰어가도 천천히 걸어가도 어차피 지각이니까. 이것이 적당 씨의 사고방식!
뭐 어때! 당신이 하고 싶다는 말이 이 그림책의 제목이다. 달걀을 의인화한 건가요? 당신이 표지를 보면서 작게 웃는다. 넥타이를 일부러 엉망으로 묶은 건지, 아니면 이것 자체가 하나의 방식인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표지에 시선을 고정하며 말한다. 제대로 묶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닐까요? 내 질문에 당신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당신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가 펴진다.
표지 속 인물처럼 당신도 두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를 으쓱한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행동을 멈춘다. 뭐 어때, 뭐 어때, 뭐 어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당신이 중얼거린다. 제목을 읽는 건지,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건지 모르겠다.
『뭐 어때!』의 주인공은 적당 씨다. 시간을 잘못 맞춰 출근 시간이 지난 후에 알람이 울렸지만 그는 태평하다. 느긋하게 하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여유까지 보인다. 넥타이가 삐뚤빼뚤하지만 그래도 목에 맸으니 괜찮다.
어차피 늦었으니 아침 식사를 하고, 경치까지 구경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뛰어가도, 걸어가도 지각이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신문 기사를 보다가 내려야 할 때를 놓쳤지만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즐겁다. 그 뒤로도 당황스러운 일이 계속 생기지만 뭐 어때! 어깨를 으쓱하고 나면 문제 될 게 없다.
어쩜 이렇게 대책이 없죠? 당신은 적당 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긍정이 아니라 무책임이에요. 혹시 회사 대표인 가요? 그렇다면 인정할게요. 인상을 찡그리며 화를 내던 당신이 갑자기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회사 대표면 괜찮나요? 당연히 그렇지 않나요? 내 질문에 당신이 질문으로 답한다. 지위에 따라 무책임한 사람이 되거나 무엇이든 허용되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게 현실이라며 당신이 단호하게 말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는 것과 사장님이 화가 많이 났을 거라는 짐작과 회사 경비원이 적당 씨라고 부르는 것으로 봤을 때 그는 그냥 사원인 것 같다고 하자 당신이 다시 눈살을 찌푸린다. 이 사람은 '적당'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안 된다고 작지만 강하게 말한 것도 같다.
사전을 찾아보면 '적당'은 '적당하다'의 어근으로 나온다. '정도에 알맞다,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 꼭 들어맞다'는 의미를 가진 '적당하다'는 '알맞다, 적합하다, 적정하다, 적절하다, 합당하다' 등의 비슷한 말을 갖고 있다.
그의 이름이 이런 의미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그의 행동은 적당했다. 늦은 시각에 회사에 갔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그래도 되는 하루였다. 설령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도 상사의 따끔한 질책과 인사 평가에서의 감점 정도일 것이다. 각오와 낙담은 딱 그만큼만 하면 된다. 출근 좀 늦게 한다고 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감정에 감정을 보태면서 자신을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혹시 회사에서 잘린다 하더라도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건 아니다.
그날은 운이 좋았잖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걸 운이라고 할 수도 없죠. 적당 씨가 좀 더 꼼꼼하게 일정을 챙기고 주의력만 있었어도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준비성, 계획, 생각 뭐 이런 게 없는 사람 같아요. 개에게 고양이 사료를 먹이질 않나,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쳤는데도 더 멀리 가질 않나, 가방을 버스에 두고 내리질 않나……
당신은 팔짱을 낀 채 적당 씨가 한심하다며 혀를 찬다. 적당 씨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면서 알차게 살고 있는데요,라고 말하자 당신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적당 씨의 집에는 선인장을 비롯해 몇 가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시들지 않고 싱싱하다. 부지런해야 가능하다. 자명종 소리에 깬 적당 씨는 시간을 확인하고 무척 놀란다. '또 지각이다'라는 말이 없는 걸 보면 이런 일이 처음인가 보다. 혹은 아주 드문 일이거나. 지각을 하더라도 회사는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성실함과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을 채운 기타, 사진기, 책, 액자 속 사진과 그림 등을 통해 그가 일 뿐 아니라 취미생활도 열심히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려견 사진과 가족사진을 집안 곳곳에 두고, 꽃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적당 씨는 무척 낭만적이고 사랑이 넘친다. 가방과 옷까지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끈질기고 끈기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적당 씨를 마냥 한심하게 볼 수는 없다.
어쩌면 적당 씨에게 그날은 일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역시 매일매일 열심히 살면서 때로는 마음을 졸이고, 때로는 자신을 탓하기도 했을 거다. 자신의 낮은 지위에 절망도 하고, 잘 나가는 동료에게 질투를 느끼면서 적당 씨는 적당한 삶을 찾기 위해 '뭐 어때!'를 외치는 건 아닐까.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가면서 한 번쯤은 이래도 된다고 충분히 계산하고 계획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의 실수 때문에 문제 된 건 없었다. 반려견 해피는 맛있게 사료를 먹었고, 적당 씨는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 회사에 가겠다는 목적을 이뤘다.
내가 말하는 내내 가만히 듣고 있던 당신이 적당 씨가 절망과 질투를 느낀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누구나 마냥 신나기만 할 수는 없다고 하자 당신이 피식 웃는다. 하긴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 중에도 불행하다는 사람이 참 많더라고요. 그래도 전 그들이…… 당신이 급하게 입을 다문다. 당신이 왜 그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