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1 사랑 결핍> 인정을 갈구하는 당신에게

『불안』&『도시 악어』

by 꿈의 떨림




먹을 것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도 사회적 위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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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 연인에게서 원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사랑이라는 말을 세상에서 원하는 것, 또 세상이 제공하는 것에도 사용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가족에서 나타나든, 성적 관계에서 나타나든, 세상에서 나타나든 일종의 존중이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볼 수도 있겠다. 누가 우리한테 사랑을 보여주면 우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존재에 주목하고,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고, 약점이 있어도 관대하게 받아주고, 요구가 있으면 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우리는 번창한다. 낭만적인 사랑과 지위와 관련된 사랑은 다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성적인 관련이 없고, 결혼으로 끝나지도 않고, 그런 사랑을 해주는 사람에게는 보통 다른 동기가 있다. 그러나 지위와 관련된 사랑을 받는 사람 역시 낭만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눈길을 받으며 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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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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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물질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지 결정한다. 이 자리는 우리에게 전례 없는 중요성을 가지게 된 일용품, 즉 사랑을 얻는 열쇠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 불안 -
낮은 지위가 끼치는 영향은 물질적인 맥락에서만 볼 수 없다. 적어도 생계는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로 인한 고통이 신체적 불편으로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낮은 지위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들을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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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한다.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략) 반면 지위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온 세상이 주목한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관심을 가진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 도덕 감정론, 애덤 스미스(불안 中) -


"사랑을 받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제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버거우면서 한없이 가볍고 간지러웠죠. 처음 연애를 했던 오빠가 몇 장에 거쳐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줬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이 사람과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의 간절함이 부담스러우면서 또 하찮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자존감이 문제였어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하는 마음과 왜 이런 사람을 만나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팽팽하게 맞섰죠.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의 직업이 좋았고, 대기업의 인턴사원이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지요. 그에 반해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에 적응 중인 신입이었고, 성실한 부모님 덕에 밥은 먹고살았지만 늘 돈걱정을 듣는 처지였어요. 어차피 대학에 갈 마음은 없으니 이 회사에서 버티다가 그렇고 그런 회사를 전전하겠구나, 했지요. 슬프지는 않았어요. 야망이나 꿈 따위는 없었거든요. 적은 돈이라도 매달 월급이 들어온다면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야망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 그것을 누르고 있었던 거예요.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다고 했지만 아니에요. 합격하지 못할까 봐 미리 선수 친 거예요. 엄마는 제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았거든요. 제 능력을 증명할 자신이 없었기에 핑계를 댔던 거죠.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니 노력하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와 사귀면서 내내 열등감을 느꼈어요.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게 명확한 그 사람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더라고요. 동시에 그의 세련되지 못한 옷차림과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외모도 자꾸만 저를 작아지게 했어요. 단 둘이 있으면 좋은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그와 손을 잡고 다니기가 너무 창피했거든요. 부러움은 못 받더라도 비웃음은 사지 말아야 하잖아요.

네, 그래요. 저는 사랑 대신 인정받기를 원했어요.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찬사와 존경을 받고 싶었어요. 어쩌다가 간 대학에서 제 야망을 발견했죠. 엄마는 늘 욕심이 없는 저 때문에 속상하다고 했는데 제 안에 잠재된 욕심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서, 비웃음을 받고 싶지 않아서, 어차피 안 된다는 비관이 강해서 욕망을 누르고 있었던 거예요. 저조차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에요. 눈에 띄지 않았으면 했던 바람은 형편없는 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죠.


인정받고 싶은 이 욕망이 사랑이었다니! 그렇다면 전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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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대해 인정받고 싶냐고 묻자 당신이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어색하게 웃는 걸 보니 아직은 얘기하고 싶지 않나 보다.


모든 일에서 다 칭찬받고 싶죠? 과장을 살짝 더해 장난스럽게 묻는다. 당신이 눈을 크게 뜨고 손을 저으며 절대로 아니라고 한다. 그 정도로 비현실적이지도, 욕심이 많지도 않단다. 완벽을 꿈꾸지만 모든 일에서는 아니라는 당신에게 완벽이야말로 비현실이고 욕심이라고 응수한다.


아, 말실수를 했어요. 완벽이라니 말도 안 되죠. 예전에는 완벽이라는 허상에 갇혀있었지만 이젠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요. 그냥 제가 세운 기준이라고 하지요. 제가 원하는 일에서는 그 기준을 통과하면 좋겠어요. 목표는 점점 낮아지는데 그마저도 어렵네요.


그 기준에는 다른 이의 평가도 있냐고 묻자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의 평가와 다른 이의 평가 중 어떤 게 더 비중이 높냐는 질문에 당신은 다른 이의 평가라고 답한다. 제 평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고민 없이 당신이 말한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기쁘냐고 묻자 마냥 기쁘지는 않다고 한다. 비난과 무시를 받지 않아 다행이고, 그만큼은 아닌데 칭찬을 받아 부끄럽고, 그냥 하는 말은 아닌지 의심이 들고, 다음에는 그들이 실망할까 봐 겁이 난단다. 그런 당신과 『도시 악어』를 읽고 싶어 진다.



나는 악어야.
도시에 사는 악어

『도시 악어』는 도시에 사는 악어에 관한 이야기다. 악어가 원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인간들에 의해 도시에 온 악어는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


악어는 토마토를 좋아하고, 햇볕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악어를 무서워하며 싫어한다. 그들은 상냥하고 순박한 악어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선입견과 필요로 악어를 판단한다. 사람들은 악어를 두려워하면서도 가방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하찮게 여긴다. 제품으로 만들어진 악어는 가치 있지만 살아있는 악어는 그렇지 않다. 악어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프다. 사랑받기 위해 피부를 관리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뭉뚝하게 다듬지만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차마 꼬리를 자르지 못한 악어는 자신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을까 봐 불안하다. 그렇다고 여기를 떠날 수는 없다. 수영을 하지 못하니 물에서는 살 수 없다. 강물을 바라보던 악어가 돌아가려 할 때, 게의 집게에 발을 찔린다. 중심을 잃고 휘청이던 악어는 자신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물에 빠진다.


앞표지와 뒤표지의 배경이 왜 다른지 알겠네요. 책을 다 읽은 후 당신이 다시 표지를 본다. 앞표지는 높은 빌딩 아래 무표정이거나 눈코입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도시가 배경이고, 뒤표지는 물속이 배경이다. 악어의 상반신은 도시에, 하반신은 물에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살아가야 하지……'라는 문장이 책을 읽고 나니 가슴을 세게 친다고 당신이 말한다. 잔뜩 주눅이 들어 슬픈 표정을 짓던 악어가 표지에서는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다행이긴 한데 ……. 당신이 말끝을 잇지 못한다.


도시에 사는 악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적어도 혐오와 무시를 받지 않기 위해 옷을 입고, 두 발로 걷고, 피부를 관리하고, 이빨을 다듬고, 꼬리까지 자르려 한다. 악어는 자신이 악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고, 그때마다 좌절한다. 악어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건 당연하다고 당신이 말한다. 타인의 시선이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설명한다. 사람들이 악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단다. 당신은 악어의 진심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며 악어의 실제 모습과 그림자가 다른 장면을 펼친다. 사랑이 넘치든, 마음이 여리든 사람들에게 악어는 악어예요. 도시에서 악어는 환영받기 힘들죠. 당신이 한숨과 함께 안타까움을 내뱉는다.





그림자는 악어보다는 포악한 공룡에 가깝다. 사람들은 선입견과 이기심을 섞어 악어를 위험한 대상 또는 제품으로 만들어도 되는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들을 이해한다고 당신이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멸시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냐며 당신이 따지 듯이 묻는다. 나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악어에게는 안쓰러움과 속상함이 충돌하면서 화가 난다고 한다. 화려한 불빛 속에서 청승맞게 울고 있는 악어 때문에 답답하단다. 물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고 믿는 악어를 얘기할 때에는 눈살을 찌푸린다. 사람도 아니면서. 당신이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린다. 그래도 결국 악어는 자기가 누군지 깨달았잖아요. 자기를 받아들인 자의 편안함과 여유가 표지에서도 느껴지죠. 자신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도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은 악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걸요. 내 말에 당신은 대꾸하지 않는다. 당신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댄다. 침묵을 깨고 당신이 질문을 쏟아낸다. 형식은 질문이지만 내용은 강한 확신과 불신이다. '나답게'가 당신을 자극할지 몰랐다.


'나답게'가 뭐죠? 대체 뭐가 '나답다'는 거예요? 사실 '나답게'라는 말도 능력 있고, 멋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나답게 살겠다고 하면 비웃음을 사기 쉽잖아요. 너답게 살아라, 나답게 살겠다는 말에는 잘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와 잘난 인간이라는 우월감이 숨어 있다고요. 분명 악어의 만족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아무리 악어가 자신을 인정하며 뭐해요. 세상이 악어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니다, 아니에요.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만이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어요. 자신에게 당당해야 남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지요. 이제 악어는 달라졌을 거예요. 남들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을 거고, 꼬리를 끌어안으며 처량하게 울지도 않을 거예요. 그런 악어에게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며 관심을 보이겠지요. 지금쯤 악어는 꼬리를 높이 들고 어깨를 펴고 씩씩하게 걷고 있겠죠. 아니, 어쩌면 옷을 다 벗고 네발로 당당하게 기어 다닐 거예요. 앞뒤 면지가 다르다는 건 악어의 삶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거니까요. 그러니 결론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구하기 전에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거죠. 악어처럼요. 그런데요, 악어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지, 꿈같은 얘기라고 콧방귀를 뀌어야 할지, 그냥 무심하게 넘겨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지금 당신의 내면에는 냉소와 희망과 반성과 원망이 충돌하는 중이다. 절망하면서도 기대를 품고, 의심하면서도 믿고 싶다.


갈피를 잡지 못한 말을 쏟아내고 나니 피해의식과 패배감을 드러낸 건 아니지, 통찰력 따위는 없는 단순한 생각만 나열한 건 아닌지, 너무 쉽게 흥분하고 서툴게 수습하려 한 건 아닌지 걱정이다. 뒤섞인 감정 중 어떤 것을 드러내고 숨겨야 할지, 내보일 때는 어떤 표정과 몸짓이어야 하는지, 수많은 단어들 중 무엇을 선택해서 엮어야 하는지도 혼란스럽다.


악어인 주제에 다른 악어에게 상처를 주네요, 제가. 자조와 씁쓸함이 당신의 말투와 얼굴에서 묻어난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당신에게 이 시를 내밀지 말지 고민이다. 햇빛이 너무 맑은 날이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펴냄

* 도시 악어, 글라인&이화진 글, 루리 그림, 요요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