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2 속물근성> 닮은 사람이 껄끄러운 당신에게

『불안』&『다른 사람들』

by 꿈의 떨림




어렸을 때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으며,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애정을 얻을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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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근성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nobilitate(이것을 줄인 말이 's.nob.'이다), 즉 작위가 없다고 적어 놓는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을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 것, 즉 그 사람의 조롱받아 마땅한 매우 유감스러운 차별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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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자면,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 또는 무엇을 존중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지어 속물근성의 의미를 좁혀보는 것이 더 정확하게 살펴보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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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집단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좌절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는, 즉 우리의 지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있고 오디세우스의 책략과 꾀가 있다 해도, 우리의 자질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표지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 존재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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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은 명성과 업적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의 외적인 환경이 바뀌면 누구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삼는 것이 좋을지 잽싸게 재평가를 해보곤 하는데, 때로는 이것이 희비극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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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고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모든 학대 행위에 적용되는 패턴이지만,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나이 든 세대는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것이 곧 재앙이라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준다. 자신의 후손이 낮은 지위(자신의 낮은 지위와 남들의 낮은 지위)가 곧 무가치한 존재로 연결되지는 않고, 또 높은 지위가 곧 훌륭한 존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며 내적인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감정적 토대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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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자신이 속물적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힘들다. 이 병은 애초에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속물근성에 분개했다고 해서 그 뒤에 점차 스스로 속물이 되어가지 말란 법도 없다. 거만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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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펴냄 -



1892년 《펀치》에 실린 만화 (불안 中)



"알아요. 막상 꺼내면 아무것도 아니죠. 숨기려 하니까 커지는 거예요. 저와 같은 사람은 무척 많으니 대수롭지 않은 사연이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게는 너무 무겁고 거대한 문제예요. 차라리 다른 큰 상처는 털어놓을 수 있는데 그 일은 꼭꼭 감추고 싶어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서 늘 전전긍긍이지요.


아무렇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근데 제 얘기를 듣고 표정을 바꾸던 몇 명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은 제게 다시 물었고, 한번 더 그 사실을 확인했고, 입을 다물어 어색한 시간을 만들었지요. 누군가는 재빠르게 화제를 바꿨고, 또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반응했는데 어떻든 마찬가지였어요.


애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원인 중 하나도 그거였어요. 그들에게 들키기 전에 도망쳐야 했지요.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그에게 고민 끝에 얘기했는데 정확하게 밝히지는 못했어요. 술에 취한 척 두서없이 늘어놓고는 울음으로 마무리했거든요. 뭔가 숭고하고 거창한 비밀을 고백할 것처럼 시작했지만 결국 알맹이는 없고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 뿐이었죠. 그래 놓고 너에게만은 솔직했다고 그와 저를 속이는 중이에요.


어쩌면 그들은 아무렇지 않았을 거예요. 자기들과 비슷하지 않아서 놀랐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저를 얕보거나, 비난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의 열등감과 두려움이 그들의 표정을 제멋대로 해석했고, 그들의 궁금증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거죠. 아뇨, 그건 오해가 아니에요. 그들은 옹졸하고 치사했어요. 그런 속물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전 속상했고요. 태어날 때부터 잘난 사람인 척하면서 그들 틈에 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절망했지요.


저를 이해한다거나 괜찮다는 말은 사양할게요. 그냥 무심하게 넘어가 줘요.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싫어요. 보기 싫은 저의 한 부분을 갖고 있는 그들은 위로가 아니에요. 부끄러움과 껄끄러움이죠.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과거가 제 발목을 잡을 거예요.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이 비밀이 드러날까 봐 불안하겠죠. 알아요, 아는데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특별하게 태어나서, 꽤 괜찮은 이력을 쌓고, 잘난 사람들 틈에서 잘나고 싶은 바람은 저만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모두 속물 집단을 경멸하면서도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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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진 나의 모습에 놀라
도망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나도 놀랐지.


『다른 사람들』의 주인공은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크게 태어났다. 자라면서 조금 더 커지고, 커지고, 커지더니 높은 빌딩을 넘어선다. 주인공을 본 사람들은 놀라고, 그들의 반응에 주인공도 놀란다. 결국 그는 자신보다 작은 틀에 갇혀 머나먼 치유의 섬으로 보내진다. 작은 틀에 옮겨질수록 주인공의 몸은 줄고 줄고 줄어서 다른 사람들만큼 작아진다.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 전에는 타지 못했던 작은 배에 탈 수 있고, 자신을 반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가족들과 식사도 할 수 있다. 딱 맞는 정장을 입을 수도, 구두를 신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걸으며 출근도 할 수 있다. 평범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던 어느 날, 그는 큰 사람을 만난다. 이전의 자신만큼 큰 사람을.


당신이 짧게 탄식한다. 뭔가 얘기할 듯 입술을 움직이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작게 한숨을 쉰다. 간간이 씁쓸하게 웃으며 발끝으로 바닥을 차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닮은 사람들'로 읽히네요. 침묵을 깨고 당신이 말한다. 마지막이 참…… 당신이 시선을 떨구며 말끝을 흐린다.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고 당신이 담담하게 얘기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항상 뒤통수가 얼얼하죠. 공감보다는 깨달음이에요. 감추고 싶은 저를 일깨워주거든요. 여기까지 말하고 당신이 또 침묵한다. 뭐가 그렇게 뒤통수를 아프게 하냐고 묻자 당신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더니 시선을 돌려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작은 틀, 치유의 섬, 피 묻은 가방이라고 대답한다.


세상은 다름을 용납하지 않아요. 다른 것은 두려우면서 경멸해도 되는 것이죠. 『도시 악어』에서도 확인했듯이 차이는 차별을 품고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의 테두리를 만들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문제로 규정하지요. 『다른 사람들』의 주인공도 작은 틀에 갇혀 치유의 섬으로 보내지잖아요. '치유'는 치료해서 병을 낫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주인공의 다름은 치료해야 할 병인 거죠. 치유의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엄청난 폭력을 경험했을 거예요. 자기에게 맞지 않는 틀에 갇힌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니까요. 그 후 주인공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겁에 질린 얼굴로 눈물을 흘리던 그는 자신감이 넘치고, 여유롭고, 행복하죠. 자신의 과거를 닮은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상처가 아물지 않았으니 나도 너와 같은 아픔이 있었다고 큰 사람을 위로할 수는 없었겠죠.


목이 마르다며 당신이 물을 찾는다. 컵을 꺼내고, 정수기의 버튼을 누르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 느긋하면서도 능숙하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성급하고 부산스럽다. 여기저기 움직이는 당신의 눈동자와 컵을 툭툭 치는 검지 손가락 때문인 것도 같다. 여유로우면서 초조하고, 침착하면서도 불안하다. 뭔가를 털어놓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도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그들이 별로인데 또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들과 어울리면서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살고 싶어요. 남들과 비슷해야 무시받지 않고, 어떤 면은 우월해야 사랑받을 수 있잖아요. 부끄러운 과거는 없었던 것처럼, 괜찮은 이력만 쌓고 살아온 것처럼, 처음부터 그들과 같았던 것처럼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저를 깔본 사람들이 싫은데도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니…… 모순이죠. 그럴수록 그들을 닮아가고 있는 것도 알아요. 아닌 척 하지만 결국 저도 속물인 거죠. 『다른 사람들』의 주인공도 그런 마음이었겠죠. 그래서 큰 사람을 보고 그런 행동을 한 거예요. 부끄러운 과거는 없었던 것처럼, 괜찮은 이력만 쌓고 올라온 것처럼, 처음부터 그들과 같았던 것처럼 지냈는데 보고 싶지 않은 자신과 마주한 거잖아요. 현재가 어쨌든 그 역시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거죠. 『불안』에 나오듯이 이 문제의 모든 근원은 두려움이에요. 두려움이 주인공을 잔인하게 만들었어요.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고 하잖아요.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고 삼지 않고,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 기를 쓴다는 부분을 읽는데 뜨끔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남들이 만든 틀에 저를 잘라 넣고 싶은지, 그 틀에 맞춰 다른 이들을 판단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지 알겠더라고요. 나이를 먹는다는 건 틀을 견고하게 쌓는 건가 봐요. 주인공이 어렸을 때는 같이 공놀이를 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자라서 자기들 틀 안에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으려나요?


당신이 다시 정수기의 버튼을 누르고 물을 마신다. 조금 전보다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다. 그래도, 당신이 불쑥 접속사 하나만 내뱉고 내 눈을 바라본다. 나는 가만히 당신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계속 감춰볼래요. 망설임 없이, 조금은 당당하게 당신이 말한다. 그게 편하다면 그래도 된다고 응답한다. 계속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을 삼키기 위해 나도 물을 마신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펴냄

* 다른 사람들, 미안 지음, 고래뱃속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