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 떨림 Sep 07. 2020

<실수가 두려운 날> 아름다운 실수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실수, 코리나 루켄 지음, 김세실 옮김, 나는별 펴냄


  잘 하고 싶어서,
  틀리고 싶지 않아서.

  이런 마음 때문에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경직된다는 것, 유연하지 않다는 것,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그게 뭐라고 또 내게 폭력을 가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해놓고 그러면 안 된다고 윽박질렀다. 주의력 없고, 야무지지 못하고,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다고 꾸짖었다. 그 누구가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를 한심하고 못난 인간으로 만들었다.


실수에 관대하지 못했다. 완벽하고자 하는 욕심이나 욕망보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게 쏟아지는 시선과 반응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미 내가 나를 질타하고 있는데 다른 이들까지 합세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거기에서 멈추지 못한 채 내 잘못 때문에 벌어질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망가지거나, 누군가가 크게 다치거나, 조직이 무너지거나, 지구가 멈추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벌어졌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도, 국가의 기밀을 관리하는 것도, 우주의  안전을 처리하는 것도 아니면서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도 날 것처럼 절망했다.


돌아보면 고작 그깟 일이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고, 어떻게든 해결했다. 정 안 되면 욕 한 번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서워 완벽이라는 불가능을 꿈꿨다. 여유를 갖고 둘러보면 길은 어디에든 존재했고, 나무들은 황홀했는데 강박과 두려움에 갇혀 산속을 헤매기만 했다. 괜찮다는 당신의 말에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마음은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아름다운 실수』를 처음 만났던 날,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추진 중이었다. 나름 순조로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초조했다. 사회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정을 받아야 했다. 지난 시간이 남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더 절박했다.


욕심과 상처는 끈질기게 나를 구속했다. 몇 번씩 확인해도 초조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속도는 느렸고, 효율성은 떨어졌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차라리 이게 편하다고 대답했다. 내가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저절로 손이 갔지만 '아름다운 실수'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는 없었다. 이미 실수에 대한 교훈은 끝없이 들었고, 실수에 대한 명언도 알고 있었다. 순전히 그림 때문이었다.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들추지 않았다.


읽기 전부터 비웃을 준비를 했다. 그렇고 그런 문장으로 실수를 정당화한 책이라 추측했다. 넘어져야 일어설 수 있다는 설교를 진부하게 늘어놓았을 거라 결론지으며 삐딱한 시선으로 책을 펼쳤다.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책의 주제는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신선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화자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자신의 실수를 고백한다. 귀여운 말투에 부끄러움이 담겨있지만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그림은 원래의 의도와 달라지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꽤 만족스럽다. 실수로 떨어진 잉크 자국은 모자로 재창조되기도 하고, 그대로 남아 책의 주제를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눈 크기가 다른 아이로 시작한 『아름다운 실수』는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면서 멋진 작품이 된다.



실수는 시작이기도 해요


다시 『아름다운 실수』를 마주한 지금, 어느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오고, 어느 장면에서는 마음이 아프다.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내가 성숙하다고 자신할 수가 없어 그렇다. 실수는 아름답고, 실수는 시작이고, 실수가 있기에 성장하고 있다는, 너무나 뻔해서 안다고 착각하는 이야기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


차분하게 다시, 어설프긴 해도 한심하거나 못난 인간이 아니라고 나를 다독인다. 나는 그저 실수를 했을 뿐이지 실패한 게 아니라고, 그 일이 나의 전부를 규정짓지는 않는다고, 남들은 내게 관심이 없으니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누군가가 나를 멸시하더라도 그가 옳지는 않다고, 불안의 근거는 타당하지도 않고 실체도 없으니 괜히 부풀리지 말자고, 실수를 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정리한다. 더불어 당신에게도 관대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당신의 실수에 아파하면서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며 안도했다. 당신에게 때로는 야박했고, 때로는 옹졸했다.


작가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했듯이 당신 역시 실수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만들고 있다. 이 사실을 잊고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하겠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 해결 능력과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가 나아지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나와 당신의 실수가 언젠가는 감탄사를 불러올 수 있다.




* 아름다운 실수, 코리나 루켄 지음, 김세실 옮김, 나는별 펴냄


  

매거진의 이전글 <귀 기울이고 싶은 날>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