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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14. 2020

<공포가 상식을 이기는 날> 섬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섬, 아민 그레더 지음, 김경연 옮김, 보림출판사 펴냄


장벽은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높고 견고하다. 누구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엄격함이 보인다. 여백에서 여유, 편안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빈자리는 거칠고 단단한 벽을 강조할 뿐이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듯하다. 제목도 만만치 않다.  그림책 『섬』은 표지부터 단단하다.


이방인, 그리고
머릿속의 장벽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섬에 나타난다. 파도와 운명이 남자가 탄 뗏목을 섬으로 이끈 것이다. 섬 사람들은 남자가 여기에 왜 왔는지 궁금하다. 호기심이 아닌 의심이다. 사람들은 남자를 돌려보내고 싶다. 파도가 심한 바다에 남자를 몰아넣는 건 살인이라고 어부가 반대하지 않았다면 남자는 엉성한 뗏목과 함께 바다에 던져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염소 우리에 넣고 못질을 한다. 그리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남자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소란이 일어난다. 섬 사람들은 남자가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남자는 쓸모도 없다. 이번에도 어부가 남자를 도와주자고 말한다. 결국 식당 주인이 남자에게 남은 음식을 주기로 한다. 돼지들에게 던져 주던 음식이다. 그들은 남자가 또 말썽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문을 튼튼하게 고친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섬 사람들에 의해 남자는 야만인이 되고,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자기들을 언제 죽일지 모르는 살인마가 된다.  


낯선 자가 퍼뜨리는 공포

그림책 『섬』을 보면 파시즘이 생각난다. 파시즘에는 개인의 자유, 평등, 개성, 인권 따위는 없다. 자기들과 다르면 무조건 파괴한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로 공포를 퍼뜨리고 혐오를 조장한다. 같은 편을 똘똘 뭉치게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파시즘하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 독일의 히틀러를 떠올리지만 이것은 단지 과거의 이념이 아니다. 파시즘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파시즘이 무서운 이유는 대중의 열광과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현재 히틀러는 독일의 수치이자 혐오스러운 독재자이지만 당시 히틀러는 독일인들의 찬사를 받던 인물이다. 그가 연설을 할 때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백만 군중이 환호했다. 대중들이 나치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나치의 만행을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면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한눈에 봐도 섬 사람들과 낯선 남자는 덩치부터 다르다. 남자는 옷도 입지 않은 채 왜소한 몸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그가 타고 온 뗏목은 작고 낡고 엉성하다. 어디에도 위협적인 물건은 없다. 무방비한 남자와 달리 섬 사람들은 손에 뭔가를 하나씩 들고 있다. 평상시에는 일할 때 쓰는 장비이지만 남자 앞에서는 무기가 된다. 자신들과 같지 않은 남자에 대한 의심, 남자 때문에 우리의 식량이 부족해질 거라는 불안, 언론과 지식인이 만들어낸 공포가 섬 사람들을 점점 잔인하게 만든다.



그래서 내 안의 두려움을 생각한다. 두려움 앞에서 나는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윤리적일 수 있는지, 얼마나 용기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한다. 내가 당시 독일인이라면, 섬 사람 중 한 명이라면, 불합리에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


섬 사람들의 만행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내 안에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의심이 불안을 낳고 불안이 두려움을 만들고 마침내 공포에 장악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부처럼 나설 수 있는지, 어부의 편에 서서  남자와 그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지,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남자에게 음식을 나누고 잠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지,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과 여론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에 끝까지 맞설 수 있는지 등등의 질문을 할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과거에 나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위해 나서지 못했다. 조직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항하지도 않았다. 소문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판단했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멀리 했다. 티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서 비겁함을 합리화했다.  


직접적으로 폭력에 가담하거나 행동한 적이 없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다. 방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제는 안다. 과거의 잘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다시 또 그 일을 겪는다면 어떨지 자신할 수 없다. 더는 비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위험 앞에서 불확실해진다. 그래서 이 책이 너무 무겁다. 『섬, 일상적인 이야기』라는 부제까지 나를 짓누른다. 남자를 염소 우리에 가두고 평범한 하루를 사는 어른들 아래 나오는 아이들의 일상도 숨이 막힌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옳지 않은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작가는 『섬』을 통해 실체 없는 공포가 인간을 어떻게 장악하는지 보여주었다. 일상적이면 안 되는 이야기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일상적인 이야기'라는 부제를 갖고 펼쳐졌다. 평범하게 살고 있던 섬 사람들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나와 당신에게 경고를 했다. 반박할 수 없어 더 무거운 작품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나와 당신에게 근거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괴물이 되지 말자고 부탁한다.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 이방인이고 어떤 집단에 의해 위험인물이 될 수 있다.


부디 공포가 상식을 이기는 날은 없길 바란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는 같이 때려야 했다. 그 다음으로는 흥분 상태,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도취 상태, 즉 대중이라는 인력이 영향을 미쳤다.

- 어느 독일인 이야기, 제바스티안 하프너 -

  


* 섬, 아민 그레더 지음, 김경연 옮김, 보림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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