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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16. 2020

<욕구를 요구하지 못했던 날> 딸꾹질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딸꾹질, 김고은 지음, 아지북스 펴냄


정신분석학자 쟈크 라캉은 욕구와 요구와 욕망을 구별했다. 욕구는 인간이 갖고 있는 식욕, 성욕, 수면욕, 배설욕 등의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이다. 일차적이고 단순하다. 욕구는 가만히 있는다고 충족되지 않는다.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 욕구가 언어로 전환되는 게 요구다. 배가 고픈 게 욕구라면 엄마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말하는  요구다. 모든 욕구가 요구를 통해 충족되면 좋은데 그럴 수 없단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욕구가 있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욕구가 있고, 요구했으나 거절을 당하는 욕구가 있다. 이때 결핍이 생기는데 이것이 욕망이다. 그에 따르면 욕망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단다. 그 결핍이 신경증, 정신병, 도착증을 유발한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경증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라캉은 신경증이란 '존재가 주체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했다는데 라캉을 읽는 나는 복잡하고 모호하기만 하다. 그냥 나의 욕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해 쌓여있는 결핍만 느낄 뿐이다.


어린 시절, 수많은 버릇을 갖고 있었다. 눈을 너무 자주 깜빡였고, 새끼손가락을 약지 손가락 위에 올려놓았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 위해 음식을 마구 삼켰다. 손가락 위에 펜을 올려놓고 하루 종일 돌리거나, 콧구멍을 자주 후비거나,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돌돌 말거나, 입가와 볼에 힘을 줘 입술을 8자로 만들었다. 자주 혼났고, 네 속엔 대체 뭐가 들어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결핍을 달래기 위한 노력이었나 보다. 혹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만든 이상행동이었거나.


바구니에 든 소꿉놀이 세트를 갖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갖고 싶은 인형은 비닐봉지에 쌓인 못생긴 인형이 아니라 커다란 상자 안에 든 예쁜 인형이라고 전하지 못했다. 안 되더라도 시도해야 했는데 너무 일찍 포기했다. 어차피 안 된다고 미리 단정하고 단념했던 날이었다. 삼켰던 말이 쌓일 때마다 손가락이 간지럽고 눈코입이 불편했다.


그때의 내가 『딸꾹질』의 짹짹이와 만났다.



짹짹이 아빠는 바쁘다. 엄마도 바쁘다. 이웃과 수다를 떠느라, 컴퓨터를 보느라, 잠을 자느라, 집안일을 하느라, 둘이 싸움을 하느라 바쁘다. 짹짹이는 엄마와 아빠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너무 바쁜 둘은 짹짹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급기야 서로 싸우다가 짹짹이에게 "조용히 좀 해!"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때부터 짹짹이는 딸꾹질을 시작한다. 그제야 엄마와 아빠는 짹짹이에게 집중한다. 갖은 방법을 시도하지만 딸꾹질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아빠와 엄마는 짹짹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한다.


말방구폭포법 : 위에서 내려온 것은 아래로 나오는 법! 찌그러진 수다들이 한꺼번에 강력한 가스와 함께 섞여 아래로 아래로 나옵니다.
주저리주저리퉤퉤법 : 말방구폭포법보다 냄새가 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걸려 지쳐 쓰러질 수도 있어요. 엄마와 아빠는 귓구멍을 잘 파주세요!
  

짹짹이 가슴에는 안아달라, 같이 있자 등의 언어들이 쌓여 있다. 내 안에는 어떤 말이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소꿉놀이 세트를 갖고 싶었는데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날, 때리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울기만 했던 날, 엄마와 아빠에게 싸우지 말라고 하고 싶었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던 날, 어느 날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얼굴만 빨개졌고, 어느 날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야 했는데 내 잘못이 되어버렸다.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도 가득 들어있다. 짹짹이는 상대가 듣지 않아도 침을 튀기며 열심히 말했는데 나는 소심하게 몇 번 시도하고는 그만두었다. 웅얼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날이 더 많았다.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 부모에게 화가 나고, 실망하고, 지친 상태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한 짹짹이와는 달랐다.


그런 짹짹이에게 조용히 하라는 윽박은 충격이고 상처였다. 자신의 요구가 무산되고 억압받는 순간 명랑하고 발랄한 짹짹이에게 딸꾹질이라는 문제가 나타났다. 소심하고 예민하고 불안이 강한 에게 나타난 문제들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때의 보상심리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말을 쏟아내고 있다.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해 당신을 당황하게 하거나, 필요 이상 감정적으로 대응하곤 한다. 또다시 바보가 되지 않겠다는 강박이 수시로 나와 당신을 공격하고 있다. 정작 요구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결핍으로 남겨둔 채 말이다.


라캉은 결핍의 산물인 욕망을 무의식적이고 부정적으로 봤지만 들뢰즈는 욕망을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 하는 힘이라 했다. 결핍이 있기에 인간은 긍정적인 힘을 갖고 창조하고 생산할 수 있단다.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핍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 하는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그동안 나에게만 사로잡혀 당신의 결핍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나만 바라봐달라고 보채기도 했다. 이젠 나의 욕구를 알아보면서 당신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겠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좋은 사람이고 싶다.



* 딸꾹질, 김고은 지음, 아지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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