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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24. 2020

<고함의 이유를 알게 된 날> 고함쟁이 엄마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작년 이맘때였다. 회를 먹다가 불쑥 엄마에게 물었다.


"근데 엄마는 왜 그렇게 날 때렸어?"


잠깐이었지만 엄마는 당황했다. 이내 민망한 듯 웃더니 내가 언제 널 때렸느냐고 반박했다. 자기는 잘해 준 기억밖에 없단다. 옆에 있던 동생도 엄마가 언니에게 잘해줬다고 거들었다. 열한 살 차이 나는 막내 동생은 모를 수 있지만 엄마에게는 서운했다. 분명 엄마는 내게 헌신했지만 나는 그보다 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가 나 자주 때렸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히 툭 던졌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손이 살짝 떨렸다. 뜬금없이 왜 이 문제를 꺼냈는지, 왜 그만 두지  못하고 계속 이어나가는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유난히 엄마를 찾았어. 바빠 죽겠는데  안 떨어지니까 그랬지."

원인을 내게 돌렸지만 엄마는 표정과 목소리에 미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수많은 심리학자와 아동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부모와의 애착형성시기 할머니와 고모와 보냈다. 할머니에 의하면 나는 유난히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일을 나가는 엄마를 붙잡고 놓지 않아 어르고 달래다가 매를 든 적이 많았단다. 엄마에게 가자고 길에서 악을 쓰고 울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왔다고도 했다.  번은 사진관 아저씨가 경찰이 잡아간다며 무섭게 말했다. 이제 울음을 그치나 했는데 오히려 아저씨의 눈을 노려보면서 더 크게 악을 썼다. 세 살짜리 애가 어쩜 그렇게 앙칼진지 모르겠다며 살아계실 때 할머니는 자주 고개를 저었. 그래 놓고 막상 엄마를 보면 낯설고 불편해서 몸이 굳었다.


엄마는 다시 한번 내가 유별났다고 강조했다. 유별나게 칭얼댔고, 유별나게 달라붙었고, 유별나게 까탈스러웠다고 했다. 내가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웃으면서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그 안에는 민망함과 미안함과 서글픔이 담겨있었다. 엄마의 표정이 너무 순하고 맑아서 내 어린 시절이 거짓말 같았다.  



엄마는 몸집만큼 목소리가 컸다. 눈도 컸다. 엄마가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이면 『고함쟁이 엄마』의 '나'처럼  몸과 마음도 찢겨 나갔다.


 아이에게 고함을 친 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엄마 펭귄과 엄마 품에 안겨 웃고 있는 아이 펭귄를 처음 보던 날,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때린 후에 나를 꼭 안아주던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홉 살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엄마의 품에서 두려움을 견뎌야 했다. 엄마에게서 떨어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무력감과 공포, 어색함과 불편함, 감당하기 버거운 엄마의 감정과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엄마는 어린 나의 실수에 괜찮다고 한 적이 없었다. 너는 대체 왜 그러느냐, 정신을 어디에 팔아먹었느냐, 왜 갈수록 맹한 짓만 골라하느냐 등등의 말로 나를 다그쳤다. 아픈 나를 걱정할 때도 내 잘못인 것처럼 얘기했다.  엄마가 너무 무서워 자주 실수했고, 갈수록 기가 죽었다. 혼나지 않으려 거짓말을 했다가 더 크게 혼났다. 애착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엄마의 고함은 더 크게 울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자신을 닮은 딸에 대한 서툰 애정표현이었다. 나처럼 무시당하면 안 되니까, 나처럼 못 배우면 안 되니까, 나처럼 고생하면 안 되니까 자식들은 야무지고 똑똑해야 했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나는 실수가 잦고 자꾸만 덤벙댔다. 남들에게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고, 총명하지도 못했다. 동생과 비교를 당해도 아무렇지 않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냥 넘어갔다. 그렇다고 순하거나 무던하지도 않았다. 까다롭고 예민하고 이해하기 힘든 아이였다.  


엄마와 동생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내내 조금 웃겼고, 그만큼 슬펐다. 아이가 엄마를 찾는 건 당연한데 그게 혼나야 하는 이유였다는 게 내내 아팠다.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 듯도 해서 예전처럼 무조건 엄마를 원망할 수 없었다. 미움이 사라진 자리에 슬픔이 채워졌다.


미숙했지만 그 당시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스물세 살에 엄마가 된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엄마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다. 가난과 서러움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고, 자식을 아주 많이 사랑하지만 표현에 서툴렀을 뿐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스물세 살의 엄마를 생각하자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 엄마의 이십 대가, 엄마의 젊음이 너무 아깝고 안타까웠다. 일부러 엄마의 가슴에 대못 몇 개를 박으면서 즐거워하던 그때가 미안했다. 나의 예민함과 소심함이 엄마의 고함을 더 크게 받아들이면서 오해에 미움과 원망을 쌓았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잘 커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딸들 덕에 행복하다 등의 말을 자주 한다. 엄마의 살가운 행동에 무뚝뚝하게 반응하지만 엄마가 고단한 시간을  이겨내줘서 나 역시 고맙다. 엄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얼마나 위대하게 살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인정 많고 성실한 엄마 덕에, 순하고 선량한 엄마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 사실을 잊은 채 오래 어느 날에만 매달려 있었다. 이젠 그날의 엄마와 내게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


  아이가 말이 늦거나, 분리불안이 심하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양육의 잘못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책은 아이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많은 경우 악순환에 빠진다. 자신을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자기혐오나 자기 소진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애착의 형성과 손상을 일방적으로 부모 책임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어느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벌어지는 일은 없다. 애착손상도 마찬가지다.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게 애착은 곧 생존 문제이므로 아이는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빤히 쳐다보기, 표정 따라 하기, 구슬피 울기, 환하게 웃기, 붙잡고 매달리기 등. 
  이렇게 애착형성이 쌍방향으로 일어나듯, 애착손상 역시 쌍방향적이다. 부모의 양육태도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기질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심한 낯가림, 예민한 감각, 과도한 칭얼거림, 의존적 성향, 유난히 고집스러운 성격, 지나친 공격성 등 유전적으로 타고난 기질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중략)

  애착손상을 주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지음, 더퀘스트 펴냄 -

  

  

*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지음, 이현정 옮김, 비룡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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