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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25. 2020

<고함을 시작한 날> 다시 또 『고함쟁이 엄마』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jy7008/28


완성한 글은 처음 의도와 달랐다.

 

원래는 『고함쟁이 엄마』가  불편하다고  쓰려했다. 시작부터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는 엄마 펭귄과 그로 인해 몸  여기저기가 흩어진 아이 펭귄을 보면서 내 몸 일부가 과거의 그 날에 떨어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를 산산조각 내놓고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마무리하는 엄마 펭귄에게 부당하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엄마와 자식 관계는 그렇다 혹은 그래도 된다는 간편함에 맞서고 싶었다.


책에 담겨있지 않은  엄마 펭귄의 마음은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조각난 아이의 몸을 꿰매면서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필요가 없었다. 아이의 몸을 망가뜨려놓고 당연하다는 듯 고쳐주는 장면이 끔찍해서 그녀의  아픔보기 싫었다. 상처를 주는 것도,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엄마라는 지독하고 무서웠다. 엄마 품에 안겨 웃는 아이 펭귄을 보면서  그림책이 폭력적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조각낸 엄마에게 의지해야 하는 게, 상처를 준 이와 웃음과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는 게 잔혹했다. 너를 아프게 한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네 상처를 치유하고 안아주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결론은 너무 뻔뻔하고 무례했다. 엄마 역시 고통스럽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권력은 엄마에게 있, 힘 있는 자의 되풀이되는 사과는 진정성이 기에 그 편에 서고 싶지  않았다. 엄마도, 나도 각자의 상처를 감당하는 건 똑같았다.


그렇기에 엄마를 이해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옹호하면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고함을 지를 때마다 잘려 나간 내 마음에 대해 쓰고 싶었다. 상처 주고 미안하다며 우는 엄마가 얼마나 버겁고 무서웠는지, 엄마 펭귄이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했는알리고 싶었다.


『고함쟁이 엄마』에 대해 쓴 글을 읽는 내내 인상을 찌푸렸다.  비문과 재미없는 문장과 부자연스러운 연결이 문제라며 글을 수정하고 수정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억압된 본심이었다. 포장은 했는데 자꾸만 뭔가를 들킨 기분이었다. 최대한 담담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려 했지만 흔들리며 분출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과거의 엄마를 소환한다 해서 존재를 부정하거나 부정당하는 게 아닌데 눈치를 봤다. 엄마를 이해해야만 나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 강박에 몸이 굳었다. 자기 연민의 눈물마저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라 착각했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 그런 척 한 이율배반이 내 글도, 내 마음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날 회를 먹으면서 왜 그렇게 날 때렸느냐고 물었던 건 갑자기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억울함과 서러움이었다. 서로가 편한 상태에서 어린 내가 느꼈던 엄마의 무게를 털어놓고 싶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때의 엄마가 나를 압박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못했다. 미웠던 젊은 날의 엄마를 보듬었고, 보듬겠다는 어린 내게 죄책감을 얹었다. 오랫동안 굳어버린 착한 척의 습관과 속 깊은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이 진심을 가렸다. 내게 고함을 지른 엄마와 제대로 싸우지 못했기에  엄마도, 나도 용서하지 못했다.


내가 맨 처음 풀어야 할 상대는 당신이 아닌 엄마였다. 그것을 자각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래서 다시 또 『고함쟁이 엄마』에 대해  쓴다. 이 글은 완성하지 못한 채 남을 것이다. 솔직해지는 것도, 후회를 최소화하는 것도, 그날의 엄마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기에 여기에 다 담을 수 없다. 굳이 애쓰지 않겠다. 오늘은 여기까지고, 이만큼 온 내게 고개를 끄덕인다. 시작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지음, 이현정 옮김, 비룡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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