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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03. 2020

<귀 기울이고 싶은 날>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안 에르보 지음, 이경혜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나는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사려면 몇 번이나 포기와 결심을 해야 했고,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


속마음을 표현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겨우 용기를 냈는데 결론이 뭐냐는 물음에 기가 죽어 입을 다문 적이 많았다. 나는 야무지게 말하지 못하는 아이, 답답한 아이, 한심한 아이가 되었다. 가족은 걱정했고, 타인은 빈정대거나 무시했다. 그래서 입을 더 다물었다. 수많은 문장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속으로만 외쳤다. 바쁜 그들이 참을성 있게 나를 기다려주지 못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의 브루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내 욕구와 감정을 말하지 못한 채 다른 이의 요구를 따르려 했던 어린 날의 내가 브루의 모습과 겹친다.



브루는 슬프다. 고양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카우보이도, 할머니도 브루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묻지만 브루의 아픔에 공감하기는커녕 그깟 일이라 치부한다. 그들에게 고양이가 없어진 건 아무것도 아니다. 까마귀는 코가 깨진 데다가 발에는 자갈이 박혔다. 누군가는 마을이 몽땅 물에 휩쓸려 고향이 사라졌다. 식인귀는 배가 고파 화가 나고, 바쁜 선장에게 고양이는 흔하디 흔한 동물이다. 브루는 그들이 자신보다 더 슬프고 심각한 일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미안할수록 위축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아픔이 작아지거나 사라지는 건 아니다. 브루는 여전히 슬프고 힘들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한 브루는 개가 다가와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미안함과 위로받지 못한 경험 때문에 더는 솔직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개가 다시 물어요.

"사실은 슬퍼. 고양이가 사라졌거든.
길고양이라 길들여지진 않았지만
내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오곤 했는데……."

"응. 그렇구나." 개가 말해요.
"하지만 세상에는 훨씬 더 많은 슬픈 일들이 많아."   


금방이라도 울 듯한 브루를 보니 내 눈썹도 아래로 내려간다. 잔뜩 위축된 브루의 모습이 어느 날의 나 같다. 언어 대신 표정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내게 과거의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면 표정관리 좀 하라고.



어린 시절의 나는 브루였다면 지금의 나는 브루에게 훈계한 이들이다. 브루였던 시절을 잊고 당신의 슬픔에 핀잔 섞인 설교를 늘어놓다가 한숨을 쉰다. 당신의 말을 끊고, 당신의 침묵을 기다리지 않는다. 당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살을 찌푸린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굳이 이해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다. 표정관리를 하라고 했던 그를 원망하고 미워했으면서 내게 나타나는 그의 얼굴과 언어를 막지 못한다.


솔직히 그들이 왜 그러는지,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간다. 브루의 사연이 안타깝겠지만 그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몸이 망가지고, 고향을 잃고, 먹을 게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비하면 브루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문제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그들이 브루에게 마음을 내주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게 아직은 어렵고 낯설다. 자신의 감정을 무시당하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처지를 내세우고 주장하는지 모른다. 그들 역시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길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브루는 여백을 갖고 있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잃어버린 물건과 자신을 아프게 한 자갈 등등이 널려 있다. 타인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렇긴 해도 그들은 여리고 순하다. 슬퍼하는 브루에게 다가가 왜 그런지 물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경험을 가진다면 그들에게도 타인을 위한 공간이 생기리라 기대한다


잊고 있었는데 당신은 줄곧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 고민에 공감하고, 내 아픔을 위로했다. 그런 당신을 나는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차례다. 당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없지만 가만히 들을  수는 있다. 당신에게 화를 내고, 이제 그만 하라고 강요하는 순간에도 내 마음과 귀는 당신을 향해 열려있도록 하겠다. 이제는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당신의 슬픔만 생각하고, 느끼면서 옆에 있고 싶다



*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안 에르보 지음, 이경혜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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