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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30. 2020

<각자의 삶을 바랐던 날> 따로따로 행복하게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따로 따로 행복하게, 배빗 콜 지음, 고정아 옮김, 보림 펴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꽤 오랫동안 부모의 이혼을 간절하게 바랐. 아빠가 싫어질 때면 아빠와 결혼 한 엄마를 원망했다. 자식들 때문에 아빠랑 산다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으면서, 더 나아가 불행하면서 왜 같이 사는지 의문이었다.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 하면서 왜 자식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진다면 두 팔 벌려 축하할 수 있었다. 같이 살아 불행하다면 따로따로 행복하게 사는 게 옳았다.


한 번은 엄마에게 진심을 전했다. 엄마는 화를 냈다. 어린 게 뭘 안 다고 그러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혼하면 별 거 있는 줄 아느냐, 부모가 이혼하면 자식들이 불행하다 등등을 늘어놓더니 네 아빠 같이 성실한 사람 없다, 자기한테는 돈 한 푼 안 쓰면서 자식들한테는 아니다, 나는 네 아빠 없이는 못 산다, 로 마무리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나름 화목했다고 한다. 아빠의 집안은 그 일대의 땅 80%를 소유한 부자였다. 이건 돌아가신 할머니의 증언이기에 80%의 숫자에 신뢰가 떨어지긴 하지만 엄청난 부자였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만 할아버지가 재산 싸움이 싫다며 형제들과 갈라서는 바람에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가난한 삶을 살았다. 아빠의 친척들은 부자였고, 우리 집은 가난했기에 아빠의 열등감과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을 대부분 엄마에게 풀었다. 엄마의 고향이 전라도인 것도, 엄마가 많이 배우지 못한 것도, 엄마가 문화적 소양과 예술적 지식이 없는 것도 다 무시해야 할 이유였고, 무시해도 되는 사항이었다. 아빠는 자식들 앞에서 엄마를 깔보면서 자신을 높이고 싶어 했지만 내 눈에는 그런 아빠가 더 형편없었다. 아빠도 내가 자기를 멀리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도 아빠가 집에 있으면 자식들이 다 부자연스러워진다. 많이 안타깝고 안쓰럽다.


엄마에게 자주 맞았고, 울분을 키우긴 했지만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내게 필요했고, 좋을 때가 많았다. 아빠에게 무시를 당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다. 아빠는 없는 게 편했다. 일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었기에 아빠와도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빠는 자상한 남편도, 다정한 아빠도 아니었다. 아빠의 소통방식은 짜증을 유발했고, 언제 분노가 터질지 몰라 불안했다. 절약이 아닌 궁상을 자랑스러워하면서 강요하는 것도 싫었고, 성실과 과묵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집은 큰소리로 싸우거나, 엄청난 폭력을 휘두르거나, 쌍욕이 난무하지는 않았다. 거친 말은 아빠의 입에서만 나왔다. 전반적으로 평온한 듯했지만 가족들은 각자의 불만을 키우면서 분노를 누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화가 났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말투에는 신경질과 짜증과 퉁명스러움이 기본으로 깔렸다. 차라리 화끈하게 한 번 터지고 시원하게 화해하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린 나는 늘 조마조마했다. 열 살 때 아빠에게 연속으로 뺨을 맞은 이후로 또 그런 날이 올까 봐 가슴 졸였다.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심장이 심하게 아팠다.


엄마는 사랑이 넘쳤지만 서러움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식 때문에 참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엄마가 힘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도 화가 났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최면을 의식과 무의식에 형성한다. 부모의 가치와 신념을 무조건 믿으며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산다. 부모의 명령과 수많은 무의식적인 암시들, 즉 예를 들면 '너는 공부에 소질이 없어.' '너는 언니보다 못해.' '무조건 일찍 들어와.'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이런 관념들은 깨어질 때까지 절대적 최면으로 작용한다. 최면은 부모와 자녀 사이, 부부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최면 상태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 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지음, 부키 펴냄 - 



『따로 따로 행복하게』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의 쿨함과 당돌함에 박수를 쳤다. 제목부터 멋졌다. 이혼에 민감할 필요도, 죄의식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줬다. 현실은 궁상맞고 고단한데 그림책은 가볍고 유쾌해서 좋았다.   


서로 마주칠 때마다 으르렁거리고 못 살게 굴고 복수를 하는 부모 때문에 폴라와 드미트리어스는 속상하고 슬프다. 둘은 엄마 아빠 때문에 골치 아픈 친구들을 모은다.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내린 결론은 부모의 불화가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침내 둘은 엄마 아빠의 끝혼식을 준비하고 진행한다. 따로따로가 된 이들 가족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


이 책을 본 L이 물었다. 이렇게 부자라면 이혼도 쉬울까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가진 게 많은데 굳이 뭐하러 이혼하겠어요. 각자 능력이 있으면 서로 부딪칠 일도 많이 없고 연대하기도 쉽고 보는 눈도 많을 텐데요, 했다가 다시 고쳤다. 가진 게 많으면 굳이 싫은 사람이랑 살 필요가 없겠네요. 그러다가 결론은 모르겠다,였다. 내 부모도 그렇고, 알다가도 모를 다른 부부도 그렇고 부부 사이는 그 둘의 문제이기에 절대로 알 수 없다로 마무리했다.


요즈음 엄마는 지금까지 잘 참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자랑이다. 자식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고, 살아보니 남편이 최고라는 것을 느꼈단다. 나이가 들면서 아빠는 여전히 가족을 피곤하게 하지만 전보다 엄마의 말을 잘 듣는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활기차고 강해졌다.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듣지 못했지만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그리고 결론이 났지요.
엄마 아빠가 다섯 살배기 어린애처럼 구는 게
아이들 잘못은 아니라고 말이에요.
 

엄마는 꾹 참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자랑스럽겠지만 내게 부모의 냉전과 무시와 서러움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 트라우마였다. 엄마가 가볍게 혹은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해 어린 자식에게 하소연해야만 했던 '자식 때문에', '너 때문에'라는 말은 어린 내게 죄책감과 동시에 부모를 원망하게 했다. 이번 가족은 어쩔 수 없지만 또 다른 가족을 만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어린 시절부터 다짐했다. 내게 가족은 사랑이라는 이름이 주는 구속이었고, 부담이었다.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로 내게 강요된 것들과 무겁게 버티고만 있는 가족들의 인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찌어찌 도저히 이 친구와 헤어질 수 없어 조와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다짐은 확고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그래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만약 조와 헤어져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아이가 발목을 잡게 할 수 없었다. 결혼이 나를 압박하고 짓누른다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어야 했다. 모순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 부모처럼 할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이혼을 찬성하고 옹호했다. 단, 어렸을 때에는 무조건이었지만 지금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이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쩔 수 없이 산다는 말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도 알겠다. 헤어지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게 낫다면 그 선택을 존중한다.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중요한 건 이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가 아닌,라고. 지독한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자신과 자식의 행복을 위해 고단함을 이기고 있는 당신은 누구보다 대단하다. 지금이 더 편하고 행복하다면 그 선택이 옳다. 그러니 부디 자책과 죄책을 덜고 더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길 바란다.

 

혹시라도 이 글을 우리 가족이 본다면, 상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거리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린 날의 내가 이랬다는 것을 알고만 있길 바란다. 지금이 아닌 그때의 감정이다. 이제 다 지난 일이고, 그 영향이 아직 남아있지만 두 분의 노력과 사랑 덕에 잘 살고 있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낸 두 분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쉽게 저절로 얻어지는 평화나 가쁨, 행복은 없다.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을 때는 마냥 편한 것을 원할지도 모르나 건강한 가족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욕구의 유예, 고통과 불편함의 인내 모두가 필요하다. 가정은 단지 서로를 보듬어 주는 최후의 보루이자 따뜻한 둥지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둥지를 떠나 세상을 향해 날개짓 할 힘을 길러 주는 곳 역시 우리의 가정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가족이다. 

  - 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지음, 부키 펴냄 -



* 따로 따로 행복하게, 배빗 콜 지음, 고정아 옮김, 보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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