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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04. 2020

<아파서 오해를 쌓았던 날> 이파라파냐무냐무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엄마가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자식이 예쁜지 몰랐다고, 너무 고통스럽고 답답해서 그랬다고, 그때는 엄마가 철이 없었다고, 너무 부족한 엄마여서 미안하다고 진심을 담았다.




이번에도 엄마는 아빠에 대한 서운함과 이해할 수 없는 아빠의 태도에 대해 말했다. 네 아빠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살아야 한다며 누구와도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엄마는 딸 셋이 거기에 동조하자 아빠와 산 세월을 신나게 얘기했다. 그래 놓고 아빠가 있어서 이만큼 살았다면서 고맙단다. 늙어가는 아빠가 너무 안쓰럽다면서 아빠에게 잘 좀 하라고도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얘기도 중간중간 잊지 않았다. 시어머니에 대한 야속함과 속상함을 풀어놓고는 결국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맙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에게 수고 많았고 감사했다는 말을 남겼는데 그게 엄마에게는 위안이었나 보다. 엄마는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게 할머니가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생이 할머니는 죽어서도 엄마한테 사죄해야 한다고 하자 엄마는 뭘, 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좋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고모에 대해서도 야속해하다가 자기가 신경을 쓰지 못한다면 미안해하다가 이번 명절에 고기를 보내줬다며 잘 살아줘 고맙다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어리석어 그렇게 살았던 거라고 결론을 지었다.


평상시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몇 편 쓴 이후로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아빠에 대해서도, 할머니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에게 기어코 한 마디 했다.


"엄마, 그냥 하나만 해. 밉다 아니면 고맙다, 둘 중에 하나만 얘기하라고. 아니면 그냥 짧게 해. 그때는 날 힘들게 해서 미웠는데 지금은 고맙다, 그냥 거기에서만 끝내라고. 그리고 제발 엄마가 모자라서 그랬다고 자책 좀 하지 마."


엄마는 서운한 표정으로 딸한테 이런 얘길 하지 누구에게 하느냐고 했다. 둘째 동생도 자기가 못나서 그랬다는 전제가 깔리면 세상에 나쁜 사람이 없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건 진정한 이해와 화해가 아니라면서 이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의 나는 엄마가 왜 그러는지 알겠는데 엄마는 이 말을 내가 너무 어렸을 때부터 했어.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뭘 알겠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가 날 얼마나 헷갈리고 힘들게 했는지 모르지?"


둘째 동생이 내 편을 들었다. K-장녀는 엄마의 감정을 다 받아들이며 자라기 때문에 언니가 무척 힘들었을 거라면서 장녀의 비애를 엄마에게 설명했다. 대가 끊겼다며 엄마에게 불평과 구박을 하는 할머니와 여기에 합세하는 고모와 엄마에게 상처만 주는 아빠를 가졌기에 특히 더 그랬을 거라며 사춘기 이후부터 친밀도가 떨어진 둘째 동생이 나를 두둔했다. 혹시 얘가 내가 쓴 글을 봤나, 의심이 들었다. 살짝 걱정됐지만 동생의 비호 아래 그동안 하지 못한 얘기를 하나씩 꺼냈다. 나이 차이 나는 남자는 절대로 만나지 말아라, 결혼은 스물일곱 살 이전에 하면 안 된다, 그래도 요즈음 남자들은 옛날 같지 않아 다 잘한다 등등을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얘기했다. 징그러울 정도로 지겹게 반복해서 이번 가족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가족을 만드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엄마는 내가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단다. 언니보다 먼저 결혼하는 동생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자책도 했단다. 동생은 언니가 순종적이지 않은 아이라 대부분의 장녀처럼 살지 않았어도 예민해서 더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동생에게 이해받기는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간에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지금도 자식 버리고 간 여자들을 욕하지 않는다고. 오죽 힘들면 그랬을지 이해가 간다고. 그러면서 보름 동안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간 일을 짧게 언급했다. 의외였다. 엄마가 자식을 버리고 간 여자를 감싸고 이해하는 것도, 우리를 버리고 집을 나간 것도 너무 뜻밖이어서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빠와 이혼을 했다면 자식들을 두고 나온 죄책감에 제대로 못 살았다는 부분에서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다급하게 당연히 엄마를 따라갈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자식을 데리고 가냐고 했다. 동생이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능력이 있다고 하자 엄마는 그 당시 빚이 있었다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을 얘기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해서 "따로따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던 내 기대가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내 바람대로 둘이 갈라섰다면 지금 나와 동생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하기 싫었다. 배빗 콜의 그림책처럼 각자 행복하기 위해서는 역시 돈이 필수였다. 어린 나는 그것을 몰랐다. 처음으로 진짜 진짜 진심으로 아빠와 헤어지지 않은 엄마에게 고마웠다.


엄마는 작년에 내가 했던 질문, 왜 그렇게 나를 때렸느냐는 문장을 계속 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네가 예쁜지 몰랐다고, 할머니랑 고모가 너를 너무 물고 빨아서 굳이 엄마가 하지 않아도 됐다고, 엄마가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철이 들었다고 고백하더니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잠깐 놀랐고 곧 울컥했지만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어색해서 재빠르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살 조카는 자기 엄마와 외할머니와 이모 둘이 식탁에서 목소리를 높이다가, 깔깔대며 웃다가, 한숨을 쉬다가, 다시 또 웃는 동안 거실 소파에 앉아 만화영화 주제가를 연달아 불렀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 흥에 빠져 있더니 대화가 끝나자 언제 그림책을 읽느냐며 물었다. 약속대로 조카가 갖고 온 그림책 『이파라파냐무냐무』를 읽기로 했다. 조카가 제목의 뜻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모르겠다고 하자 책을 다 읽으면 알게 된다고 했다. 아이는 답을  알려주고 싶지만 참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된다는 표정이었다. 이모에게 빨리 읽어주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이 재미를 천천히 즐기고 싶어 했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몸이 들썩였다. 등장인물인 마시멜롱을 그렸다며 자신의 그림을 자랑하고는 "이파라파냐무냐무"를 읽을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목에 잔뜩 힘을 크게 외쳤다. 털숭숭이라면 정말 그렇게 부르짖을 것 같았다.



마시멜롱들이 사는 마을은 무척 평화롭다.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어느 날, 이 행복한 마을에 시커먼 털숭숭이의 천둥 같은 외침이 들려온다. "이파라파냐무냐무" 마시멜롱들은 이것을 '마시멜롱들을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싸울 준비를 한다. 나무 열매를 던지기도 하고, 털숭숭이의 몸을 꽁꽁 묶기도 하지만 다 실패다. 마지막으로 불을 던져 공격하는데 단 하나의 마시멜롱만이 의심을 한다.


"저기요.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털숭숭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조카는 캐릭터에 맞게 목소리를 변조하면서 익살스럽게 읽었다. 나와 동생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1인 다역을 맡은 조카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털숭숭이가 공격을 받을 때, 문득 '이파라파'의 뜻이 무엇인지 예상이 갔다. 조카의 귓속에 속삭이니 맞단다. '냐무냐무'는 모르겠다는 나를 보며 조카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다 읽으면 알 수 있다며 어른처럼 설명하기도 했다. 이 책을 알지 못하는 이모를 보는 게 즐거운지 아이는 책을 읽는 내내 웃음과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저 나이 때는 어땠는지 자꾸만 기억을 더듬었다.


엄마의 시간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와 나의 마음을 알기에는 너무 아픈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털숭숭이처럼 "이파라파냐무냐무"라는 오해에 오해를 쌓을 수밖에 없는 고함을 질렀고,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기에 언젠가부터 싸울 준비를 했다. 엄마가 저 말을 내가 성인이 된 후에 외쳤다면 나는 그 마시멜롱처럼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했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으로 돌리고는 억울함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파라파냐무냐무"라 울부짖었던 까. 지금 우리는 서로가 표현한 "이파라파냐무냐무"를 얼마나 알게 된 걸까.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 했고, 나는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속마음과 사연들을 알게 됐다. 납득할 수 없었던 빈 공간이 조금씩 채워지면서 팽팽하던 줄 하나가 갑자기 느슨해졌다. 감정이 격하게 움직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하다. 엄마가 안쓰럽지도, 나의 지난날이 서럽지도 않다.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고, 아무렇지  않다. 다만 이혼했다면 너를 두고 나와야 했다는 엄마의 말과 엄마를 따라갈 거라고 외쳤절박한 마음이 계속 남는다. 이제는 두 분이 이혼할 일이 없다. 혹 그렇다 해도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결혼까지 해서 나름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다급하게 엄마를 따라갈 거라고 했는지 자꾸만 이상하다. 한 번도 엄마에게 버림받을 거라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럴 수도 있었다는 게 충격이었는지, 내가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 어딘가에는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 순간 가장 강하게 느꼈다. 오랫동안 보기 싫어 방치하던 아이였다. 겨우 손을 내밀고도 잡아주지 않았었. 그동안 아이가 외치는 "이파라파냐무냐무"를 듣기 싫어 귀를 막은 채 제대로 말하지 않을 거면 입 닥치라고 윽박질렀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아이에게 이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어떻게든 표현해도 된다고 다독여줄 수 있을 것 다.


결국 "이파라파냐무냐무"는 내 속에서 외치던 아픔이었다. 내가 들어주지 않아 쌓고 쌓였던 오해였고, 귀기울여야 하는 목소리였다.



*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지음, 사계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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