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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Aug 22. 2020

<머릿속이 복잡한 날> 복잡하지 않아요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날> 복잡하지 않아요


복잡하지 않아요, 사뮈엘 뤼베롱 지음, 박정연 옮김, 나무생각 펴냄


오랫동안 갈고닦은 나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 단순한 문제마저 복잡하고 어렵고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 기대에서 조금만 벗어나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감정과 이성이 뒤엉킨다. 차근차근 정리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미 걱정과 불안을 잔뜩 움켜쥐고 있으니 '차근차근 정리'라는 명령어가 입력될 리 없다. 오히려 이것까지 완수해야 하는 업무 중 하나가 되어버려 무거움에 무거움이 더해진다.


대체 단순하게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려면 무엇을 하면 되는지  공식이나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그렇게 하라면 그게 될까. 주어진 상황은 호의적이지 않고 해결해야 할 과제는 계속 생기는데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는 언제 생기며, 머릿속을 비울 시간은 언제 확보가 되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떠안은 일을 덜어주지도 않으면서  쉽게 말하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다.


처음 『복잡하지 않아요』를 읽었던 몇 년 전에  콧방귀를 뀌었다. 복잡하지 않긴, 개뿔. 머릿속을 정리한다는 게,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데 귀여운 소년을 내세워 아주아주 쉽다고 얘기하는 이 책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때 나는 새로운 조직과 사람에 적응하는 중이었고,  인정 욕구가 발동되어 초조했으며, 잘 풀리지 않는 일에 화가 났다가 주눅이 들었다가 했다. 오랜 관계에서도 지쳐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엉킨 실타래를 푸는 대신 싹둑 잘라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미련을 갖지 않으려 했다. 잘라버리는 건 비교적 잘했는데 그 뒤가 문제였다.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한 실들이 주변에 어지럽게 놓였다. 자르면 자를수록 처리해야 할 일이 늘었다.


그런데 참 웃긴 게  나만큼 무겁고 복잡한 사람을 보면 내가 들었던 그 무책임한 말을 똑같이 한다. 네 마음속의 진실을 잘 들여다본 후에 차근차근 정리하면 된다는 꿈같은 소리를 내뱉고는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내가 비웃었던 그 말이  진리였음을,  무시한 줄 알았지만 결국 인정하고 있었음을, 너무 당연한 해결책을 외면하려 했음을  알아버렸다.


그렇긴 해도 모든 상황에 이 사실을 적용하고 싶지는 않다. 당신에게 머릿속에 있는 불필요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잘 들여다보라는 얘기를 던지고는 후회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안 되는 문제를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단정 짓지 않았는지 반성했다.  머릿속을 정리한다는 게,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당신을 앞에 두고 몰아붙인 건 아닌지 미안했다. 사실 당신이 어느 날의 나 같아서 화가 났다.



세상에는 차근차근 정리하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너무 정교하게 짜여있어 단순하다고 속은 채 낑낑대는 문제도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도 많다. 또 나에게는 별것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거대한 두려움인 문제도 있다. 세상이 얼마나 혼잡하고 무서운지 알게 된 지금, 인간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예민하고 다양한지 알게 된 지금,  모든 상황에 '복잡하지 않아요'를 내밀지 않으려 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상황을 어렵게 보지도 않으려 한다. 자신을 들여다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외부와 협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깔끔하게 포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을 살펴야 한다. 내 머릿속을 살피고, 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나를 슬프게 하는 것과 내가 행복한 순간을 파악해야 한다. 어렵긴 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이다. 뻔뻔한 위로를 건네자면 당신이 느끼는 것만큼 복잡하지 않다. 설령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순간만 넘기면 된다. 그다음은 예전보다 수월할 것이다. 실의 엉킨 처음을 찾지 않으면 꼬이는 일이 더 많아진다.


당신을 빌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 복잡하지 않아요, 사뮈엘 베롱 지음, 박정연 옮김, 나무생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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