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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31. 2020

<마음을 확인한 날> 마음이 아플까 봐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마음이 아플까봐, 올리버 제퍼스 지음, 이승숙 옮김, 아름다운 사람들 펴냄


열세 살 무렵이었다. 아빠가 신시사이저를 샀다. 바꿔야 할 물건이 수두룩하고, 필요한 물건조차 사지 않는 우리 집에 신시사이저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놓을 곳도 마땅찮은데 어느 날 그게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그것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 우리 집 형편에 안 될 게 뻔했기에 갖고 싶다는 욕구조차 품지 않았다. 사줄까,라고 했던 건 아빠였다. 나와 동생은 기대했지만 아빠는 사준다, 안 사준다를 되풀이하며 약을 올렸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게 우리 집에 왔다. 아빠는 언제나 그랬듯이 스스로를 '아버님'이라 높이고 우리를 '간나새끼'라 비하했다. "아버님께서 간나새끼들한테 큰돈을 쓰셨다"를 반복했지만 그 날은 새로운 기계에 흥분해서 아빠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신시사이저를 세팅하자 아빠가 내게 쳐보라고 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열 마디 정도는 외우고 있었기에 그 부분을 연주했다. 결코 잘 치지 않았다. 나는 그쪽에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건반을 만져본 적 없는 아빠에게는 딸이 베토벤의 명곡을 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었다. 아빠가 곡 제목을 말하면서 감탄사를 내뱉자 엄마가 물었다. 그 노래 제목이 뭐라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빠가 말했다.


 "야, 알려줄 필요 없어. 네 엄마는 무식해서 들어도 몰라."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웃음과 감탄이 한순간 멈췄다. 바뀐 공기의 흐름을 타고 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얼핏 본 엄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혹감을 숨기기 위해 입술을  다물었지만 부끄러움과 서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굳은 엄마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매번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모르는 척, 못 들은 척했다. 엄마의 편을 들어주지 못한 죄책감과 아빠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학교 종이 땡땡땡'을 쳤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언어폭력은 멍과 같은 증거가 남지 않을 뿐, 신체폭행과 다르지 않은 일종의 폭행이다. 언어폭력이 남기는 고통은 신체폭력만큼이나 크며, 회복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언어폭력의 피해자는 서서히 현실 판단력을 잃고 혼란에 빠진다.  

(중략)

  상대를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자주권을 빼앗는 말이나 태도를 보인다면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 언어폭력 (영혼을 파괴하는 폭력에 맞서는 법), 퍼트리샤 에반스 지음, 이강혜 옮김, 북바이북 펴냄 -

 


『마음이 아플까 봐』의 소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소녀의 머릿속은 밤하늘의 별과 바다에 대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소녀는 새로운 것을 아는 게 기쁘다. 할아버지의 빈 의자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할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마음이 아플까 봐 자신의 마음을 병에 넣는다. 그러자 마음이 아프지 않다. 마음은 안전한데 별과 바다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다. 소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날 내가 그랬다. 마음이 아플까 봐 마음을 감췄다. 사람을 질리게 하는 아빠의 소통방식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더는 다치고 싶지 않았다. 건반을 누르면서 불편한 기억과 감정도 함께 눌렀다. 마음이 더는 올라오지 않게 숨기고는 그것을 지켰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안전한 줄 알았던 마음은 곪을 대로 곪아 병든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마음이 아플까 봐 숨겼는데 더 큰 아픔과 마주했다.


건강하지 못한 인정 욕구는 사회생활뿐 아니라 연인관계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이 아닌 인정을 원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똑똑하다, 멋지다, 대단하다, 현명하다 등의 찬사를 듣고 싶었다. 애인과 있을 때 내가 알지 못하는 문제와 마주하면 무식이 드러날까 봐 화제를 돌렸고, 실수를 들키면 당황했다. 애인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멸감에 빠져 허우적댔다. 해결방법을 찾거나, 오해를 풀면 됐는데 위축된 마음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이별을 통보했다. 내게 상처 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관계를 차단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서울 정도로 매정했다.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면서 더 깊이 마음을 숨겼다. 돌아보면 그들은 내가 느낀 것만큼 나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았다. 서로의 관심사가 달랐고, 잠시 말이 통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얼굴이 벌게진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를 그렇게 만든 아빠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강박과 이별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애인을 사랑하는 순간에도 늘 헤어질 궁리를 했다. 자식 때문에 산다거나, 그 사람 없이 못 산다는 이유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그의 존재가 커지는 것을 막으면서 언제든 혼자가 될 준비를 했다. 소녀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막기 위해 마음을 가뒀고, 나는 아빠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마음을 숨겼다. 마음을 가둔 소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잊었고, 마음을 숨긴 나는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막았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마음일수록 드러내야 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분풀이를 할 때마다, 자식들을 얕잡아 부르며 비속어를 사용할 때마다, 별 것 아닌 일에 짜증을 내다가 갑자기 폭발할 때마다, 올바르지 않은 자신의 행동이 맞다고 고집을 피울 때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알려야 했다. 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때에도 나는 거침없이 내 진심을 보여야 했다.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따져야 했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화를 내야 했다. 거칠게라도 감정을 표현하면서 털어야 했는데 안으로 쌓기만 했다. 마음은 숨기고 감추고 가둔다고 편해지는 게 아니었다.  


엄마와는 어느 정도 풀었지만 아빠와는 모르겠다. 지금처럼 필요한 용건만 얘기하고, 숨기지 못 한  불편함을 드러내면서 데면데면하게 지낼 가능성이 높다. 아빠의 의견을 묵살하다가도 자식으로서 해야 할 건 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아빠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 무거운 불편과 부담을 견디면서까지 마음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다.


소녀처럼 유리병에 갇힌 마음을 꺼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오지 않아도 괜찮다. 감췄던 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발전했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려 한다. 이만큼 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내면에 깃든 생명력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상처받은 기분이야. 지금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을 인식하는 하나의 형태다. 하지만 감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감정에 따라 의식적, 창의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내면 깊은 곳의 생명력을 돌보고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 언어폭력 (영혼을 파괴하는 폭력에 맞서는 법), 퍼트리샤 에반스 지음, 이강혜 옮김, 북바이북 펴냄 -



* 마음이 아플까 봐, 올리버 제퍼스 지음, 아름다운 사람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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