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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Nov 11. 2020

<색깔을 찾기로 한 날> 사라진 색깔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라진 색깔,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 아킨 두자킨 그림, 정철우 옮김, 분홍고래 펴냄


결코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많이 웃었고, 웃음을 주기도 했고, 뜻하지 않게 기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좋았던 날보다 아팠던 날이 먼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은 날이 많았을 것 같은데 뚜렷하게 남아있는 기억 몇 가지를 제외하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그 빈약한 과거마저 온전히 기쁘지 않다. 상실감, 서운함,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 있다. 어린 시절은 행복한 날보다 아팠던 날이 더 많은 걸까. 아니면 기준이 너무 높아 웬만한 일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는 걸까. 혹은 내게 온 행복을 당연하다고 여겨 그것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걸까.  


『사라진 색깔』을 보면서 과거의 행복한 기억이 암울한 시간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 힘이 지금의 고통을 견디게 하고, 희망을 찾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게는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 최대한 많이 따뜻하고 밝은 색을 찾고 싶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마음의 기능이 아니다. 기억은 미래를 내다보는 마음의 기능이고 현재 상태를 재빠르게 간파하는 마음의 기능이다.  

- (과거를 바꾸고 미래를 만드는) 좋은 기억의 힘,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홍성민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사라진 색깔』 표지 한쪽은 화사하지만 다른 한쪽은 암울하다. 앞표지에서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뒤표지에서 남루한 옷차림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다. 소녀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고양이와 눈을 맞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은 고양이는 윤기를 잃은 모습이다. 소녀가 붙잡고 있지만 두 발로 서 있는 고양이는 어딘지 불편하고 위태롭다. 바람에 살랑이던 오트밀 색상의 커튼은 갈기갈기 찢겨 바람에 휘날린다. 초록색 나무와 노란빛 하늘은 어디에도 없다. 표지를 넘기면 온통 검은색 면지가 보인다. 흑백의 속표지를 지나면 고통과 두려움에 얼어있는 엄마와 아이가 나온다. 절망이 담긴 눈동자에 희망은 없어 보인다. 모녀를 둘러싼 부서지고 무너진 외부환경이 그녀들의 내면 같다.  



벽을 타고 흐르는 물이 바닥에 고인다. 모녀는 아직 젖지 않은 곳에 있지만 추위를 피하지는 못한다. 아이는 엄마에게 꼭 안겨 새 이야기를 해달라 부탁한다.


밤이 되면 산에서 커다란 검은 새가 내려올 거야.
지붕 위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우리를 지켜 줄 거란다.
우리가 잠든 동안,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색깔이 사라진 이유는 전쟁 때문이다. 전투기가 날아오고, 폭탄이 떨어진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었다. 무너진 도시처럼 아이의 마음도 허물어진 상태다.


모두 잊어버린 거니? 새가 물었어요.
무엇을요?
옛날에 행복했던 일들…….
나는 눈을 감고 옛날을 떠올려 보았어요.
모든 색깔도요.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어요.
깜깜할 뿐이에요.


새의 질문을 통해 아이는 새로 산 빨간 원피스를 입었던 그 날을 기억한다. 활짝 웃는 아빠와 자신을, 하늘을 물들인 노란빛을, 춤을 추는 사람들을, 시장에 가득과 과일과 꽃들을, 엄마가 만든 담요를, 자신을 기다리던 단짝 친구와 예쁜 라일락 나무 등을 생각한. 깜깜했던 과거가 색깔로 되살아나고 있다. 새가 강조한 '혼자'가 아닌 '함께'를 기억하면서 아이는 용기를 낸다. 그들에게 색이 돌아오고 있다.



일곱 살 혹은 여덟 살 때였다. 동생 없이 엄마와 단 둘이 시장에 갔다. 외동딸이라고 상상하면서 그 시간을 즐겼다. 색색의 핀을 고를 때는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듯했다.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고 생각하니 우월감마저 들었다.


열 살 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고모가 상자 안에 든 마론인형을 사 왔다. 비닐로 포장한 인형과 확실히 달랐다. 고급스러운 얼굴에 비율도 완벽했고, 머리숱도 많았다. 분홍색 드레스는 반짝였고, 신발과 가방과 빗까지 있었다. 인형의 이름은 수지였다. 매일 밤마다 수지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지금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꿈꿨다.


할머니 몰래 엄마가 치킨을 사줬을 때도, 친구들과 집에서 과자를 먹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을 때도, 책 속 이야기에 빠져있던 순간에도 화사하고 포근한 색이 있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받은 상장도,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먹던 떡볶이도 모두 색색의 빛을 품고 있다.


안타깝게도 밝지만은 않다. 외동딸이라고 상상하는 그 순간에도 동생을 만나야 하는 현실을 놓을 수 없었다. 엄마와 단 둘이 하는 외출이 다시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에 시간이 가는 게 아쉬웠다. 동시에 엄마가 언제 어떻게 돌변해서 나를 다그칠지 몰라 둘만 있는 순간이 불안하고 부담스러웠다. 간절하게 원하던 인형을 손에 쥔 순간 가질 수 없는 인형도 생겼다. 분명 내가 선택했고, 동생과 원만하게 합의를 봤으면서 동생의 인형에 자꾸 눈이 갔다. 연한 갈색을 띤 노르스름한 치킨은 맛있었지만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서 집에 남자(아빠)가 없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야단칠 것만 같았다. 육즙과 기름이 입 안에서 터질 때마다 할머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가 그러면 안 된다고 꾸짖었다.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토라지거나 과하게 집착하거나 서먹서먹했기에 우리의 즐거웠던 한 때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또 그럴 텐데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행복한 순간에도 일이 잘못될까 봐 걱정했고, 기쁘다가도 허전했다. 가졌는데도 상실감이 들었고, 상대를 미워하면서 미안해했다. 감정에 감정을 덧붙여 양가감정을 만들었기에 있는 그대로의 색을 보지 못했다. 내 어린 시절은 행복한 날보다 아팠던 날이 많았던 게 아니었다. 기준이 너무 높아 웬만한 일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내게 온 행복을 당연하다고 여긴 적도 없었다. 해소하지 못한 감정을 계속 끌고 가면서 '지금-여기'에 집중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좋았던 날보다 아팠던 날이 먼저 떠올랐고, 행복한 순간에도 온전한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치유는 '통합'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벌어진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통합한다는 뜻이다. 이와 더불어서 새로운 좋은 경험을 만들어서 옛 상처가 더는 지금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통합하기 위해서는 지금 주어진 대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즉, 여기서 말하는 통합이란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유대감을 만드는 것이다.

-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동양북스 펴냄 -


내 색깔은 사라진 것보다 묻힌 게 더 많을 것이다. 우울과 불안에 덮여 제 빛깔을 잃은 기억을 완벽하게 재생할 수는 없지만 잿빛은 잿빛으로, 붉은색은 붉은색으로, 노란색은 노란색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감정에 감정을 섞지 않으려 한다. 억압하고 부정했던 과거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기억에 걸려 넘어지고 넘어졌다가 그대로 쓰러지는 것보다는 낫다. 넘어지더라도 좋은 경험을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색깔이 내일의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소녀처럼 용기를 내려한다.  


무지개는 하늘에 다리를 만들어서
언제나 길이 있다고 말하지.
혼자보다는 함께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는 걸 기억하렴.

다행히 '혼자'가 아닌 '함께'다.


당신에게 나 역시 그중 하나다.


우리의 기억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다.



* 사라진 색깔, 아킨 두자킨 그림,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 정철우 옮김, 분홍고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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