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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Oct 15. 2020

<벽을 넘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날> 빨간 벽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빨간 벽,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봄봄 펴냄


끊임없이 성장을 강요당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끝났다 싶으면 더 큰 게 기다렸다. 매일매일 한계를 넘으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조직에서는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도구였다. 덕분에 성장하긴 했다. 트라우마가 덤으로 얹어졌지만 더는 어리숙하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책도, 영화도, 광고도, 드라마도, 대중음악도 나를 가두는 벽을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하고, 저 너머 세상에는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한단다. 멋있는 문구로 현혹하고, 자극하고, 응원하지만 결국 이래야 한다는 압박이다. 그 논리로 보면 안전을 꿈꾸면서 그냥 이대로 평온하게 살고 싶어 하는 나는 도전과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도태된 생물체에 가깝다. 그들처럼 모험을 좋아하는 척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자기 개발서와 도전정신이 투철한 이들의 책을 읽으면서 변화를 꿈꿨지만 그럴 수 없는 내가 또렷해졌다.


『빨간 벽』을 읽으면서 왜 꼭 벽을 넘어야 하는데, 라는 반발심이 생겼다. 벽을 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에게 왜 그곳을 넘으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벽 안에서도 행복하다면 굳이 어렵게 용기를 낼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왜 벽 너머의 세상은 형형색색이고, 그 안의 세상은 단조로운 건데!!



빨간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생쥐와 고양이와 곰과 여우와 사자가 살고 있다. 벽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벽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벽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꼬마 생쥐는 궁금하다. 겁 많은 고양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벽이 있는 거라며 바깥쪽은 위험하다고 한다. 늙은 곰은 벽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삶의 일부라고 한다. 벽이 왜 세워졌는지 궁금하지 않냐는 생쥐의 질문에 궁금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행복한 여우는 벽 뒤에 뭐가 있든 상관없다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으르렁 소리를 잃어버린 사자는 벽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커다랗고 시커먼 없음만 있다고 한다. 꼬마 생쥐는 그래도 궁금하다. 어느 날, 벽 너머에서 날아온 파랑새에게 꼬마 생쥐가 부탁한다. "파랑새야, 날 벽 너머로 데려가 줄 수 있니?"


벽을 넘지 않아도 행복한 여우가 있고, 벽이 있어 안전을 느끼는 고양이가 있다. 벽이 왜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지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늙어가는 곰도 있고, 벽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자도 있다. 이들은 다른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없어도 별 불편 없이 살고 있다. 벽 안에서의 삶이 완벽하지 않겠지만 그 안에서 그들은 괜찮아 보인다. 왜 생쥐처럼 거대한 벽 너머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그곳을 넘어야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본 풍경을 친구들에게 알리겠다고 하자 그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타이르는 파랑새에게도 마찬가지다. 점잖게 얘기했지만 파랑새는 생쥐의 친구들을 낮게 평가한 것이다. 벽을 뛰어넘지 않았을 뿐 그들도 자신의 한계를 넘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텐데 말이다.



안다. 사실 좀 꼬여있었다. 호기심이 강하고, 용기가 넘치고, 잘난 척하지 않고, 순수하게 친구들을 위하는 생쥐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생쥐처럼 거대한 벽을 넘어야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보여 불편했다. 모두가 벽을 통과하고 있을 때 저만치 떨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자에게 감정이 이입되자 더 거스르고 싶었다. 두려움이 많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벽에 갇혀 시시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지, 이유와 필요를 몰라도 남들이 하니까 나도 벽을 넘어야 하는 건지, 세상은 생쥐 같은 사람들에게만 색색의 빛깔을 보여준다는 건지 속상했다.

 

그 친구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봐서 그래.  
너는 궁금해하면서 봤잖아. 넌 정말 용감했어.
진실을 스스로 찾아 나설 정도로 말이야.

꼬마 생쥐야,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네 스스로 만들게 돼.

하지만 네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벽들은 하나씩 사라질 거야.

그리고 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할 수 있을 테고.

생쥐는 친구들에게 꼭 벽을 넘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본 아름다운 세상을 얘기했을 뿐이다. 생쥐의 말을 듣고 친구들이 벽을 통과했다. 사자 역시 자기 스스로 벽을 넘었다. 그림은 더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데 나에게 이 이야기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벽 안의 세상에 균열이 가고, 그곳을 탈출해야 할 위기가 닥쳤다면 당연히 벽을 넘는 친구들을 응원했다. 생쥐의 친구들이 평상시에도 벽을 넘고 싶은데 두려움 때문에 넘지 못했다면 파랑새의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벽 너머의 세상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자기들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다. 색색의 나무를 보지 못했기에 자기들이 보는 나무와 다른 나무를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두려움은 벽을 넘을 때 보였다. 사자는 자발적으로 벽을 통과했지만 자신의 의지보다는 무언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났지만 그중에는 이 정도로 만족하는 친구가 있을 테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을 테고, 처음 그곳으로 되돌아가 더는 나아가지 않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다시 또 길을 떠나는 생쥐와 그 위를 날고 있는 파랑새를 보면서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 정답은 소수만 누리는 특권 같아서 씁쓸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과 모험을 강요하는 이 사회가 피곤하다.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고, 유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논리가 언짢다.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이미 나와 당신은 벽을 넘으면서 살고 있다. 나머지 벽은 이유와 필요를 느낄 때 넘어도 된다.


이젠 그들이 만든 벽까지 내 것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려 한다.


만약 사회가, 세상이
당신에게 어떤 정답을 강요한다면 당신은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합당하지 않은 정답에 채점되어 굴복하지 말아야 하며 그 정답들에 주눅 들어 스스로의 가치를 절하해서는 안 된다.  

좋은 학생에는 여러 정의가 있고
잘 사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답을 가질 권리가 있다.
우리는 오답이 아닌, 각기 다른 답이다.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지음, 마음의숲 펴냄 -

 


* 빨간 벽,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봄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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