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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Nov 19. 2020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날> 누가 진짜 나일까?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가 진짜 나일까? 다비드 칼리 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나선희 옮김, 책빛 펴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안심했던 나는 권위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갈망했다. 그들이 원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느라 내가 원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에는 그들이 원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잘했어, 라는 말을 듣기 위해 하루를 살았고, 상대가 실망하거나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면 살고 싶지 않았다. 칭찬을 받고, 성과가 좋아도 행복지수와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그 순간은 기뻤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저 다행이었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아 다행이었고, 질책을 받지 않아 다행이었다. 매번 인정을 받는 일은 고되고 지쳤지만 그들의 기대에 맞출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이용했다.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그랬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그랬고, 애인이라 믿었던 그가 그랬다. 나는 기꺼이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췄. 힘겨웠지만 끊을 수 없었다.


『누가 진짜 나일까?』의 '나' 역시 사장에게 이용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사장이 자신을 아주 좋아한다고 믿었다. 자기가 회사를 떠나면 사장이 힘들어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나도 그랬다. 나 하나 나간다고 그곳이 무너질 리 없었다. 내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그와 그녀는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런데도 간절한 그들의 목소리를, 내게 실망했다는 그들의 태도를 넘기지 못했다.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고, 나를 나쁜 사람이라 여기지 않길 바랐다. 내 선택자신이 없었기에 거절을 전달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가스라이팅은 쉽게 말해 정서적으로 누군가를 조종하려는 행위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에는 항상 두 사람이 존재한다. 혼란과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가해자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각력을 기꺼이 의심하는 피해자다. 가해자들은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하여 그 사람이 자신의 현실감과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가해자는 남성 또는 여성, 배우자 또는 연인, 상사 또는 동료, 부모 또는 형제자매일 수 있다. 한편 피해자는 자신의 행동과 외부의 자극을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거나 자신이 오해 또는 오인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해 취약하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에 공동 책임을 진다. 이것이 가스라이팅의 본질이다. 가스라이팅은 단순한 정서 학대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관계다. 나는 이것을 가스등 탱고라 부르는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가스라이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해자가 상황이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피해자가 자신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가스라이팅의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피해자 역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가해자가 봐주기를 바라고 그의 인정을 얻으려고 애쓴다. 또 가해자를 이상화하거나 그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



"멈추지 말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자!"

『누가 진짜 나일까?』의 '나'는 큰 공장에서 일한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부품의 수량을 계산하는 일이다. 무슨 부품을 만드는지 알지 못한 채 '나'와 직원들은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일한다. 피곤은 쌓이는데 집에 가지도 못한다.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수족관 속 물고기가 다 죽어 있다. 물고기에게 밥을 줄 시간도, 친구를 만날 시간도, 영화관에 갈 시간도 없다. 심지어 엄마에게 안부를 물을 잠깐의 여유조차 없다. 당장 사표를 내고 싶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사장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그만 두면 사장은 분명 힘들 것이다. 어렵게 '나'가 사장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를 설명하자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쪽지를 건넨다. 이 주소로 찾아가면 그들이 필요한 조치를 해줄 거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사장이 준 쪽지에 적힌 곳에 간 '나'는 더운물이 가득 찬 욕조에 맨몸으로 들어가 있다. 따뜻한 물 덕에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든다. 잠에서 깬 '나'는 기분이 좋다. 사장에게 할 말을 다시 생각했다가 결국 사장을 힘들게 하지 않기로 한다. 욕조에서 나온 '나'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놀란다. 완벽한 복제 인간이 그곳에 있다.


다음 날, 샤르도네 사장이 나를 사장실로 불렀다.
"자비에, 이제 자네에게 복제 인간이 생겼으니, 회사를 관둘 필요가 없어졌지? 그렇지 않나? (중략) 가끔은 복제 인간이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할 수도 있을 거야. 만약 자네가 약혼할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자네의 복제 인간이 자네를 대신해 약혼도 해 줄 수 있겠지."

나는 사장에게 물었다.
"그들이 뭐든 다 잘할 수 있다면, 왜 우리를 대신해 일을 시키지 않지요?

사장을 한숨을 쉬더니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들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네. 당장은 간단한 몇 가지 일만 할 줄 안다네. 자네들이 가진 능력을 다 갖고 있진 않아. 우리 회사에는 절대적으로 자네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해."


'나'는 그 후에도 회사를 다닌다. 자신의 집에 있는 복제 인간을 보고 놀라 공원으로 달아났으면서도 아침이 오면 출근을 한다. 공장의 이익을 위해 집에 가지 말고 계속 일해 달라는 사장의 요구를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한다. '나'는 그가 복제 인간인지, 자신이 복제 인간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읽는 내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을 볼 때마다 헉, 소리가 나왔다. 직원들은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없다. 살아있는 자의 얼굴로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가 얼굴 전체를 가려 감정을 볼 수 없는가 하면, 입술이 견출지로 가려져 있기도 하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여자들은 웃고 있지만 인위적인 표정 때문에 기괴하다. 눈을 내리 깔고 한참 아래에 있는 '나'를 쳐다보는 사장과 고개를 들어 사장에게 얼굴을 보이지만 눈을 맞추지 못하는 '나'를 통해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쓰러져 톱니바퀴 장치까지 끌려가는 공장 직원의 몸과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는 사장의 구두는 압권이다. 내 몸이 눌리고 찢기는 건 아닌지 두렵기까지 하다. 무엇을 생산하는지도 모른 채 강요당하는 그들이, 사장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그들이, 나는 대체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그들이 남 같지

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의 부정적인 말에 나를 가두고 왜곡된 시선을 키웠다. 야무지지 못하다는 말에 모든 면에서 멍청하다고 생각했고, 뚱뚱하다는 놀림에 실제보다 훨씬 거대하게 내 몸을 바라봤다. 귀엽고 예쁘다는 말을 믿지 않았고, 그토록 갈망했던 칭찬 앞에서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기 바빴다. 내게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을 부담스러워하며 멀리 하기도 했다. 반대로 내게 훈계하거나 지적하는 사람들을 힘들어하면서 신뢰했다. 부족한 나를 깨우쳐준다며 고마워했고, 그들에게 배울 게 많다며 존경하고 동경했다.  


자신이 이미 좋은 사람이고 유능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므로 상대방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아 정체감을 가질 때, 우리는 자유를 향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자아 정체감이 타인의 인정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면, 가스라이팅을 끝낼 의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사랑을 받고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수 있다. 그러한 자세는 한발 물러서서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할 수 있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혹독한 비난과 완벽에 대한 요구 그리고 교묘한 술책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하는 데도 필요한 수단이다.

-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


내가 틀렸다는 생각과 그들이 옳다는 믿음이 결합되어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의 판단에 안도와 절망을 반복하면서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잘나고 멋진 사람이 아니었듯이 비난을 받는다고 형편없이 못난 사람도 아니었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나 역시 어떤 부분은 미숙하고, 어떤 부분은 그럭저럭 괜찮고, 어떤 부분은 꽤 잘한다. '어떤 일을 꽤 잘하는 나'를 긍정하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그날 밤이 되기 전에 나는 도망쳤다.  

사장의 뜻대로 살았던 '나'는 모자와 외투를 그대로 둔 채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사장을 의심하는 순간, 더는 그와 함께 할 수 없다. '나'는 도망이라 표현했지만 그는 도망이 아닌 제 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오히려 타자의 욕망에 맞춰 살았던 지난날이 자신의 행복에서 도망친 날이었다. 그는 복제 인간과 사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선택하면서 선택할 수 없었던 지난날과 작별했다. 무엇을 만드는지 몰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건지 의심하기도 하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기도 하겠지만 '나'의 삶은 분명 이전과 다를 것이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그는 '도망만 치는 비겁자'라며 나를 비난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는 오랫동안 나를 짓눌렀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의 말에 동조하면서 두고두고 자책하고 자학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도망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가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살겠다고 단호하면서 정중하게 알릴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분명 다를 것이다.


더는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만큼 감정이 격해지지도 않는다. 위축되고 작아지기만 했던 그때의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진짜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중에 겪은 시행착오였기에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확실한 건 그 순간에도 나는 복제 인간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 누가 진짜 나일까? 다비드 칼리 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나선희 옮김, 책빛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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