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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Dec 09. 2020

<어쩌면, 기대하는 날> 내 안에 내가 있다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멈칫했다. 이렇게 불쑥 인체 해부도를 만날지 몰랐다. 뼈, 근육, 혈관 등 몸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흉측하고 기괴했다. 제목과 뒤표지에 있는 설명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준비를 했는데 진짜 내 몸속을 봤다. 실제 사진도 아니고, 세밀하고 자세하게 묘사한 것도 아니지만 이 그림은 충격이었다. 불특정 누군가의 몸이 아닌 나의 몸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나와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도, 계속 내 안에 살고 있었는데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도 이게 내 것이라는 게 한없이 낯설고 징그러웠다.


『내 안에 내가 있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물리적인 요소들을 생각하게 했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인체의 신비와 함께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나의 내면을 헤매게 했다.



내가 항상 나인 건 아니었다.

첫 문장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나를 통제할 수 없었던 날들, 내가 누구인지 몰라 헤매었던 시간들, 나를 부정하고 원망했던 그때가 이 짧은 문장에 담겨있었다. 앞표지를 넘기자마자 불시에 마주한 인체 해부도가 떠오르자 심장과 혈관이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안에서 나는 왕이 아니었다. 아직은,
내 안에는 적들이 있었다. 적들.
내 안은 밤이었다.

난 불가능한 것들을 결정하는 왕이 되고 싶었다.
난 사방에 새들이 있고, 불꽃놀이가 있길 바랐다.  


은유와 상징이 난무하는 이야기는 몇 번을 곱씹은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은 곳곳마다 기괴하고 우울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 주인공 '나'는 얼굴과 손을 제외한 몸을 검은색 망토와 신발로 감췄다. '나'의 꿈들인 나무는 손가락이 잘린 손처럼, 온전하게 자라지 못한 사람의 몸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신경세포처럼 보였다. 문장과 그림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요동치면서 나를 흔들었다. 난해하지만 이해가 가고, 이해하다가도 의문투성이인 그림은 나와 당신을 닮았다.


문제는 우리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우린 그냥 돌만 던졌다. 말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내 안에 항상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괴물의 입은 나 같은 어린아이들을 잡아먹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나 같은 아이의 입은 비밀로 닫힌 문이었다.  

(중략)

난 괴물 안은 다른 나라일 거라고 기대했다. 춥고 바람 불고, 눈 덮인 산과 어쩌면 꽃도 있는 그런 곳. 혹 꽃들이 피어 있다면 꽃의 얼굴에서 비밀을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똑같았다. 괴물 안은, 내 안이었다.
거기도 또 괴물이 있었다.
괴물, 나, 피의 강, 모두 똑같았다.

 

진짜 내가 되기 위해, 내 마음의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해, 내 안에 있는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주인공 '나'는 매일 저녁 피의 강가로 괴물을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나'와 괴물은 강물에 돌을 던져 누가 더 많이 돌을 튀어 오르게 하는지 겨룬다. 상대가 아닌 강물에 돌을 던지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치열하고 살벌한 대결이다. 둘의 싸움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매번 '나'는 물수제비로 괴물을 이기지만 그를 잡아먹지도, 피의 강물로 완벽하게 밀어 넣지도 못한다. 결국 '나'는 괴물에게 잡아먹히기로 한다. '나'에게는 없는 비밀이 괴물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괴물의 몸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나'는 괴물 안이 '나'의 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자 아이와 햇빛 아이는 우리의 자존감에 대한 은유다. 그림자 아이는 자존감의 약한 면과 문제가 있는 면을 상징하며, 햇빛 아이는 자존감의 건강한 면과 강한 면을 상징한다. 이때 그림자 아이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면서 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햇빛 아이 부분을 강화하고, 이 아이가 활동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을 보다 많이 선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멋지냐, 완벽하냐, 힘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자 아이와 햇빛 아이가 사랑으로 가득하고 안전한 고향을 많이 발견할수록 그만큼 내면은 편안해지며,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심과 호의를 가득 베풀고 마음을 열 수 있다. 왜냐하면 고향은 당신이 '스스로' 행동하고 살아가야 할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향은 친밀함, 보호, 안전을 의미한다. 고향은 내가 속해야 할 장소를 의미한다. 내가 스스로 내면에 정착하면, 나는 고향에 속하게 된다.  

- 내 안의 그림자 아이, 슈테파니 슈탈 지음, 오공훈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 -


진짜 나를 찾겠다며 고민하고 애썼지만 사실은 진짜 나를 피해 가는 과정이었다. 상냥하고, 유쾌하고, 야무지고, 능력 있고, 너그럽고, 현명한 모습만이 나였으면 했다. 그 반대편을 차지하고 있는 욕심, 우울, 불안, 열등감, 질투, 치졸함, 어리석음 등은 내가 아니었으면 했다. 주인공 '나'가 매번 괴물을 이겨놓고 그를 제압하지 못했듯이 나 역시 내 안의 괴물을 어쩌지 못했다. '나'가 괴물에게 침묵하면서 괴물과 자신을 별개로 여겼듯이 나도 괴물을 외면한 채 내 것이 아니라 부정했다.


책을 읽는 내내 감추고 싶었던 내가 몸속 장기를 툭툭 건드렸다. 네 안에 있는 나를 좀 봐달라고, 나 역시 너라고, 이제 그만 외면하라고 졸랐다. 소심하고 소극적이었지만 꽤 집요했다. 그 간절함을 계속 무시했다.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없는 나는, 괴물을 잡아먹지도 괴물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는 자기를 봐 달라고 요구하는 내 안의 내게 침묵했다. 어설프게 덮고 가린 채 나와 별개라고 시치미를 뗐다. 보기 싫을수록 마주하고, 통제하고 싶을수록 알아야 하는데 회피만 했다. 그래 놓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괴로워했다. 이 사실을 아는데 여전히 그러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검은 망토를 벗고 내 안의 무지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부끄럽고 보기 싫은 괴물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까, 나의 그림자 아이를 받아들이고 당신의 그림자 아이를 어루만져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여전히 어렵고 힘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믿기에 내 안에 있는 나를 깨울 준비를 한다.


어쩌면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걷는다
  숨어 있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
  내 허물은 얼마나 돼지처럼 뚱뚱했던가

  난 그걸 인정한다
  내 청춘 꿈과 죄밖에 걸칠 게 없었음을   

  어리석음과 성급함의 격정과 내 생애를
  낡은 구두처럼 까맣게 마르게 한 결점들을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나의 등잔이 타인을 못 비춘 한 시절을
  백수일 때 서점에서 책을 그냥 들고 나온 일이나  
  남이 애인 넘본 일이나
  어머니께 대들고 싸워 울게 한 일이나
  실컷 매 맞고 화난 주먹으로 유리창을 부순 일이나
  내게 잘못한 세 명 따귀 때린 일과 나를 아프게 한 자
  마음으로라도 수십 번 처형한 일들을

  나는 돌이켜 본다 TV 볼륨을 크게 틀던
  아래층에 폭탄을 던지고 싶던 때와
  돈 때문에 조바심치며 은행을 털고 싶던 때를
  정욕에 불타는 내 안의 여자가
  거리의 슬프고 멋진 사내를 데려와 잠자는 상상과
  징그러운 세상에 불 지르고 싶던 마음을 부끄러워한다

  거미줄 치듯 얽어온 허물과 욕망을 생각한다
  예전만큼 반성의 사냥개에 쫓기지도 않고
  가슴은 죄의식의 투견장도 못 된다
  인간의 원래 그런 것이라며 변명의 한숨을 토하고
  욕망의 흔적을 버린 옷가지처럼 바라볼 뿐이다

  고해함으로써 허물이 씻긴다 믿고 싶다
  고해함으로써 괴로움을 가볍게 하고 싶다
  사랑으로 뜨거운 그분의 발자국이
  내 진창길과 자주 무감각해지는 가슴을 쾅쾅 치도록

  나는 좀 더 희망한다
  그 발자국이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를 깨워 울게 하도록

                                              - 창, 신현림 -   

  

* 내 안에 내가 있다, 알렉스 쿠소 글, 키티 크라우더 그림, 신혜은 옮김, 바람의아이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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