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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Dec 22. 2020

<무거움도 필요한 날> 내겐 너무 무거운

- 너무 무겁지 않게 해주세요.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내겐 너무 무거운, 노에미 볼라 지음, 홍한결 옮김, 단추 펴냄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 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리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치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 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 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비망록, 김경미 -           


그 무엇에도 무게 두지 않고 가볍게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에 살까지 찌자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일정하지 않았던 점심 식사 때면 제대로 씹지 못한 채 음식을 삼켰고, 오늘도 집에 가기를 포기하면서 먹은 저녁밥은 다음날까지 소화가 되지 않았다.


살을 빼면 조금은 나아지려나 했지만 입사한 지   만에 5kg이나 찐 살은 거기에 2kg을 얹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 거냐,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거냐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살이 붙은 나를 걱정하는 건지, 비난하는 건지 모를 목소리도 있었다. 외모에 대한 평가를 아무렇지 않게 했던 에게 쏘아야 할 화살을 매번 내게로 돌렸다.  


"내가 무거워야 세상이 가벼워지지. 괜찮으니까 더 살쪄도 돼요."


당시에 믿고 의지하던 분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는 왜 이렇게 다 무겁게 받아들일까요, 라며 애써 웃었다. 살 때문에 더 그런가 봐요,라고 하자 그분은 농담인 듯 아닌 듯 한 말투로 살을 더 찌우라고 했다. 그래야 상대적으로 세상이 가벼워진다며 자신을 더 무겁게 만들라고 했다. 이건 대체 무슨  논리인가, 했는데 마음이 힘들 때면 그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주 가볍고 낭랑한 목소리였다. 그 어느 것에도 무게 두지 않으면서 세상 그 무엇도 심각하지 않은 그분에게 존경과 서운함이 교차했다. 나는 왜 그러지 못하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그곳을 나오면 가벼울 줄 알았다. 그 일에서 벗어나면 매일매일 웃을 줄 알았다. 그들에게서 떨어지면 편할 줄 알았다. 당연히 몸에 붙은 살도 빠질 줄 알았다. 퇴사 행복이 이런 거구나, 느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무거움은 그곳을 나온다 해서, 그 사람들과 헤어진다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이 자주 저지르는 착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외부 조건을 바꿈으로써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이것만 살 수 있으면 더욱 행복할 텐데'의 덫에 빠진 상태다. 새 핸드폰이 있다면, 이 신발을 살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돈을 벌어 집을 산다면,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가 없다면, 배우자가 더 다정하다면, 얼굴의 주름이 사라진다면…….

  두 번째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가 되어야만 행복해진다는 착각이다. '내가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난 더 행복해질 거야.' 지금 회사가 아니라 카페에 앉아 있다면, 만약 지금이 더 따뜻한 여름이라면, 내가 더 젊다면, 내가 좀 더 나이 들었더라면……. 우리의 마음은 결코 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 내 감정이 버거운 나에게, 안드레아스 크누프 지음, 이덕임 옮김, 북클라우드 펴냄 -


모두들 어깨 위에
곰 한 마리씩은 얹고 살지 않나요?
허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아무리 내쫓으려고 해도
찰싹 달라붙어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그런 곰 말이에요.

처음에는 피식, 웃으면서 봤던 『내겐 너무 무거운』을 다시 읽었을 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올해가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다가, 올해 나는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다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 게 서글펐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며 최소한의 목표마저 세우지 않았으면서, 실패가 두려워 도망만 다녔으면서, 뭘 하겠다는 각오나 열정도 없었으면서 왜 상실감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배를 누르고 있는 곰이 곱절이나 무거웠다. (『내겐 너무 무거운』의 이탈리아어 제목은 『Un orso sullo stomaco』다. 번역기를 돌리니 '뱃속에 곰'이라고 나온다. '배에 있는 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무조건 와서 같이 살자는 곰을 막을 방법은 없다. 좋은 말로 해도, 나쁜 말로 해도, 도망을 가도, 지구를 떠나도 소용없다. '나'를 잡아먹어 달라고 애원해도 곰은 들어주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포악하고, 고약하고, 짜증스럽고, 불쾌하고 무례하고, 뜬금없고, 까다롭고, 비호감에 무식쟁이에 겁쟁이인 엉망진창 곰과 헤어질 방법은 아무래도 없어 보인다.


하긴 곰이 무슨 말을 하겠어요!
곰이 원래 그렇죠 뭐.

늘 그랬다. 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만 배에서 내려와 달라고 해도,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해도, 이제 그만 좀 꺼져달라 해도 곰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 요청이든, 요구든 곰이 아닌 나에게 해야 했다. 나를 망치는 건 그 어떤 사건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데 그 무서운 진실을 가리고 싶어 곰에게만 소리쳤다.


나는 방금 어떤 감정을 느꼈는데 이를 멀리하거나 피하지 않고, 또 붙잡거나 연장하려 들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마주하려 한다.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상처를 받거나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떠한 감정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감정이란 왔다가 사라지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이 감정도 사라질 것이고 나는 이 감정의 파도에 몸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감정이 새롭고 낯설지만 그래도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감정에 내 자신을 열어둘 것이다.

- 내 감정이 버거운 나에게, 안드레아스 크누프 지음, 이덕임 옮김, 북클라우드 펴냄 -

  

잠깐 울다가 나를 돌아봤다. 나의 못난 마음과 감정과 행동이 선명해졌다. 절벽 가까이 몰린 기분이었다. 계속 피할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그러려니 하고 곰을 바라보려 한다.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무게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믿어보려 한다. 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곰의 무게만큼만 무거워하고, 곰의 까탈스러움만큼만 힘들어하고, 곰의 고약함만큼만 불쾌하면 된다. 그 이상을 느끼지도, 별 것 아니라고 뭉개지도 않을 것이다. 제대로 곰을 마주한다면 불편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버거움 속에서 보람을 발견할 수 있다. 괜찮은 녀석이라고 소개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결국 그분이 옳았다. 세상의 무거움을 받아들이고 견디려면 내가 무거워져야 다. 육체가 아닌 마음의 근육과 정신의 무게를 키워야 다. 곰이 내 어깨 위에서 쿵쿵거려도, 내 등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아도, 내 배 위에서 춤을 춰도 그러려니 하기 위해서는 내가 곰보다 무거워져야 한다.


2021년에는 적당히 무겁고 묵직해져야겠다. 이 정도는 괜찮다며 삶의 무게를 툭툭 털어낼 수 있게, 곰을 짊어지고 걸으면서도 당신에게 농담을 건넬 수 있게, 조금이라도 우리의 곰이 가벼워질 수 있게 마음을 굳세게 만들어야겠다. 


이제 실패도 많이 해야겠다. 진정 가벼워지기 위해 그 무게를 견뎌보려 한다. 무거운 날이 있었기에 가벼울 수 있었다. 무게를 견뎠기에 또 다른 무게를 짊어지고 걸어갈 수 있었다. 한없이 우울하고 두려웠던 순간에도 나와 당신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잘 지내보자,

엉망진창 나의 곰아.



* 내겐 너무 무거운, 노에미 볼라 지음, 홍한결 옮김, 단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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