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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Nov 28. 2020

<그래도 맞서고 싶은 날> 갈색 아침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휴먼어린이 펴냄


순하고 무던한 조는 불의를 참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불법과 반칙도 지나치지 않는다. 알고 지낸 지 1년, 그 후 2년 남짓 연애를 하는 동안 조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 웃는 모습이 너무 착해서 나만큼 물렁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결혼 초에는 나처럼 겁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고, 마냥 순하지 않아 좋았고, 용감해서 멋있었다. 결혼 6년 차가 된 지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옳은 행동이었다. 조는 신호를 무시하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 배달원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헬멧까지 쓰지 않았다. 조는 휴대폰으로 배달원과 오토바이 번호판을 찍었다. 조의 행동을 눈치챈 배달원이 뭐 하는 거냐고 묻자 조는 헬멧을 쓰지 않았으니 신고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배달원이 자기도 신고를 하겠다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대체 뭘 신고하겠다는 건지 의아했지만 조는 경찰이 오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기다렸다. 그런데 배달원의 통화는 자기의 예상과 달랐다. 그 남자는 계속 통화를 했고, 조는 그 앞에서 계속 기다렸다.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자 조는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 상황을 내게 설명했다. 어이없다는 말투와 표정을 내비쳤지만 전반적으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해맑았다. 재미있는 사연을 소개하는 것처럼 약간 흥분하기도 했다. 나는 조에게 그 사람이 누구와 통화했고, 어떤 내용이었냐고 물었다. 조는 잘 모르겠지만 경찰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내용의 통화였는지. 대답은 똑같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불분명한 대답을 듣자 불안을 숨길 수 없었다. 그 사람이 해코지를 하면 어떻게 해? 자기들 패거리한테 알리는 거면 어떻게 하냐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그랬으면 어디에 사는지도 대충 알잖아. 남편이랑 나한테 나쁜 짓 하면 어떻게 해.


조는 그 사람이 우리 집을 어떻게 아냐, 알더라도 너는 모르지 않냐, 너한테 나쁜 짓을 하면 내가 가만히 있겠냐 등등 내 걱정에 대해 그럴 일 없다고 했다. 내가 안심하지 않자 나가서 해결하겠다며 벗었던 점퍼를 입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허리를 잡고, 다리를 붙잡고 나가면 안 된다고 애원했다. 조가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웠다. 동시에 나까지 위험해질까 봐 겁이 났다.


조는 베란다 창문으로 배달원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더니 그 자식이 다시 왔다며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나와의 실랑이가 또 시작됐다. 조가 화를 참는 게 느껴졌다. 나는 조에게 나가지 말라고 매달리면서 미안해,를 반복했다. 겁이 많아서, 불안을 참지 못해서, 옳은 행동을 하는 너를 말려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너무 비굴한 건 아닌지, 내가 정말 잘못하는 건지, 이렇게 사과를 남발해도 되는 건지 속상했지만 우리 사이가 틀어지는 걸 막고 싶었다.


"너는 내가 잘못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지만 넘어갈 수 있는 건 그냥 넘어가면 좋겠어. 아니면 너무 대놓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넘어갈 수 있는 건 대체 뭔데? 이렇게라도 해야 그 사람들이 조심할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 목소리는 자꾸만 작아졌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싫었다. 신호를 위반하고 속도를 높이는 그들 때문에 횡단보도 앞에서 매번 긴장했다. 제발 누군가가 저들을 어떻게 해주길 바랐다. 그 누군가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나에 대한 혐오감이 들자 더는 조를 말릴 수 없었다. 어차피 조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을 듣는다 해도 우리 사이에 갈등이 시작될 것이다. 나의 죄책감도 커질 것이다. 같이 나가자는 나를 이번에는 조가 안 된다고 했다.


옷을 챙겨 입는 동안 현관문이 열리고 닫혔다. 조가 나갔지만 서두를 수가 없었다. 몸이 자꾸만 아래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손이 너무 무거워 패딩 소매에 팔을 넣는 게 힘겨웠다. 나가는 게 맞는지, 집에 있는 게 좋은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나간다면 같이 싸우는 게 아니라 그만 하라고 조를 말릴 것이다. 그에게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는 역할만 할 게 뻔했다. 그렇다고 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했다. 불안이 만들어내는 상상은 점점 끔찍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는데 맞은편에서 조가 걸어왔다. 자기가 잘못 봤다면서 그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배달원의 오토바이 불빛이 워낙 강해서 트럭 불빛과 헷갈렸단다. 집으로 들어온 조는 그 자식 때문에 우리가 이러는 게 화가 난다고 했고, 나는 또 미안하다고 했다. 네가 왜 미안하냐는 조에게 불안이 많아서, 겁이 많아서 미안하다고 또 사과했다. 조는 그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게 아니라고 했다. 잘했다고 말한 뒤에 다음에는 조심하라고 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자기가 한 행동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 같았단다. 충분히 알아서 할 텐데 자기를 믿지 못하는 반응에 서운했다고도 했다. 나는 너는 믿는데 그 사람을 믿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세상이 워낙 험하잖아. 뉴스 보면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이 너를 신고하겠다고 전화했다면서. 일당을 부르는 걸까 봐 너무 무서웠어. 내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너잖아. 그런 네가 다치면 나는 어떻게 해.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떨어졌다.


조가 나를 달랬다. 그가 애쓰는 게 느껴졌다. 나는 또다시 미안하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너를 걱정하는 내 마음을 왜 모르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조는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나갔고 다시 들어왔을 때에는 나를 웃겨주려 했다. 내가 좀 더 용기를 내겠다고, 너 말고 다른 사람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겠다고 약속했지만 나에 대한 믿음은 조금도 없었다. 조는 내일 신고할지 말지 내게 물었고, 나는 망설이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조가 신고를 해도,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무서운 상상은 다시 또 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건 망상이라고 속으로 외치며 고개를 저었다.


나름 평온하고 조용하게 소란이 지나갔다. 우리는 평상시처럼 농담을 주고받았고, 뉴스를 보면서 의견을 교환했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내 마음은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조의 다리를 붙잡으며 절박하게 애원하던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배달원이 해코지를 할까 봐 무서우면서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길까 봐 불안했던 감정도 남아있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느라 몸에 힘은 빠지는데 머릿속은 야단법석이었다. 불안이 과하다고 다독였지만 소용없었다. 생활보다 생각이 무서운 시간이 다시 또 시작됐다. 너는 내가 잘못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좋겠어? 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가 비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웬만하면 참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같은 크기로 싸웠다.


내가 말려도 조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하철을 탄 사람에게 마스크를 주면서 한 마디 할 테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향해 다른 사람 인생 망치지 말고 조심히 건너라고 큰소리로 외칠 것이다. 빈약한 논리와 잘못된 정보로 억지를 부리는 이들을 참지 않을 것이고, 경비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언제든 나설 준비를 할 것이다. 그날도 나는 조에게 한 마디 했다. 온몸에 문신이 새겨졌다면서. 같은 동에 사는데 그 사람을 자극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조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더니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나이 드신 분께 행패를 부리는데 그럼 그냥 모르는 척 해? 그가 옳아서 할 말이 없었다.


몇 년 전, 영화 <밀정>을 보고 나오면서 조가 물었다. 저 시대를 살고 있다면 부인은 독립운동을 했을 거야? 나는 한숨을 쉬면서 잠깐 망설였다. 고문 장면이 나올 때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었다. 영화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약한 지식인들처럼 자책만 하고 있었을 거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서 총 맞고 바로 죽는 거면 괜찮은데 끌려가는 건 무서워. 남편은?"

 내 질문에 조는 망설이지 않았다. 가만히는 못 있지. 비굴하게 산다면 참을 수 없을 거야. 근데 나도 고문당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잡히는 순간 바로 목숨을 끊을 수 있게 약을 갖고 다녀야지.


그 날 영화관 앞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자 습관처럼 극한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반칙과 불법을 모르는 척 넘어간다면, 다시 제국주의 시대가 온다면, 세상을 온통 갈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처럼 겁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끔찍하게 변한 세상을 상상하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어느 화창한 오후, '나'는 단짝 친구 샤를리와 카페에 앉아 햇볕을 쬐며 향긋한 차를 마신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샤를리가 키우던 개를 안락사시켰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갈색이 아닌 개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법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갈색이 아닌 고양이를 없애야 했다. 그래서 '나'도 기르던 고양이를 보냈다. 고양이가 죽었을 때,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금세 잊었다. 하지만 갈색이 아닌 개를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 아픔이 다시 되살아난다.


하지만 샤를리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어요.
어쩌면 샤를리의 태도가 옳을지도 모릅니다.
키우던 개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든다고 해도,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잖아요.
샤를리와 나는 한참 동안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딱히 할 말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가, 꼭 해야만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어요.  

 

며칠 뒤에 다시 만난 샤를리는 '나'에게 《거리 일보》가 폐간되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갈색 개에 관한 법이 나쁘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신문은 《갈색 신문》밖에 없다. 정부를 지지하는 《갈색 신문》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카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에 반대하던 출판사들이 하나둘씩 소송에 휘말려 재판을 받게 된다. 그 출판사에서 낸 책에는 '개'나 '고양이'라는 단어가 한 번씩은 꼭 나왔지만 '갈색'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법을 어겨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지.
그런데 정부와 쫓고 쫓기는 고양이와 생쥐 게임을 하다니!"
이렇게 말한 샤를리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러더니 "내가 말하는 쥐는 '갈색' 쥐야, '갈색' 쥐."라고 재빨리 덧붙였어요.
우리는 혹시 누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다음부터 우리는 언제나 말을 할 때 '갈색'이란 단어를 붙였어요.
처음에는 장난 삼아 "갈색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모든 말에 '갈색'이라는 말을 붙였어요.
그래야 무조건 법을 따르는 착한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그 덕분에 우리는 폐간된 《거리 일보》나 소송에 휘말린 출판사들과는 다르게 조용히 살아갈 수 있었어요.


걱정과 두려움은 곧 사라진다. 경마에서 갈색 말에 돈을 걸어 우승을 하자 갈색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좋은 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샤를리와 '나'는 각각 갈색 고양이와 갈색 개를 키우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재미있고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법에 순응하는 자신들을 정부에서 칭찬이라도 해 줄 것 같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대로 순순히 따르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군인이 샤를리를 잡아간다. 예전에 키우던 개가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에 키우던 고양이가 갈색이 아니었기에 군인들이 잡아갈 것이다. 심지어 부모, 형제, 친척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갈색이 아닌 다른 색의 동물을 기른 적이 있다면 가족들 모두 벌을 받는단다.



지금 우리에게 갈색 법이 적용되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한숨을 쉰다. 사소한 시비조차 피하고 싶은 내가 거대한 힘에 맞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부당함에 맞서 주길 바라지만 그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아니길 바랄지 모른다. 조를 붙잡고 나가지 말라고 애원했던 밤처럼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 있다.


우리가 어리석었어요. 그들이 처음 갈색 법을 만들었을 때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챘어야 해요.
우리 모두 아무 말도 못 하고 법을 따르기만 했어요.
그때 그들에게 맞서야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요? 모든 것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고 있는데…….
해야 할 일도 많고, 걱정거리도 산더미 같은데…….
나만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살겠다고 그저 보기만 하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자꾸만 비겁해지는 내가 싫어 변명이 늘어난다. 어떻게 그들에게 맞서냐고, 나만 침묵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한 주인공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린다. 갈색 법에 불안하고 의심이 가지만 곧 잊어버리는 '나'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 같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묵인하고 넘어갔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외면하며 지나칠까. '나'의 주변에 갈색 법의 부당함을 알리고 정부에 맞서자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마르틴 니묄러의 참회처럼 나치의 만행을 침묵한 결과가 언젠가는 내게로 온다는 것을 안다. 불의에 순응하고 무관심한 결과가 어떤지도 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반칙과 불법들이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지도, 지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외면한 작은 일들이 일상을 파괴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잔혹한 진실을 모르고 싶다.

용기를 낼 수 없다면

순진하게 세상을 믿으며 살고 싶다.


어디선가 미리 걱정하면서 웅크리는 것부터 그만두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쥐새끼처럼 치사하게 살고 싶어요   
  시 같은 것이야 뉘 집 개아들이 물어가도 상관 안 하고
  살고 싶네요 불온하지 않게
  양처럼 쥐처럼 온순하고 고상하게  

  고급 향수 같은 불란서 영화 같은
  곱고도 아련한 시 쓰고 싶어요 천진무구하고 싶어요 환장하겠어요

  낙골 판자촌 날라리 공동 변호에 똥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치고 싶어요
  싹 없애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만 살다가  
  쥐새끼처럼 밟혀 죽고 싶어요   

   - 시를 쓰며 1, 김사인 -



  * 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펴냄, 휴먼어린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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