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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Nov 25. 2020

<사랑이 어려운 날> 사랑이 뭐예요?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이 뭐예요? 안나 라우라 칸토네 그림, 다비드 칼리 글, 서소영 옮김, 키드엠 펴냄


언젠가 그녀가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미움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미움받을 용기도, 미워할 용기도 없었던 나는 안으로만 미움을 쌓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마음을 어떻게든 꺼내야 했기에 문장을 엮고 엮어 사건을 만들었다. 소설이라 포장했지만 사실은 그들을 향한 증오와 복수였다. 더불어 나에게 주는 형벌이었다. 대답을 들은 그녀는 가만히 내 얼굴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나랑 정말 다르구나. 난 사랑이 넘쳐서  마음을 풀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높은음이긴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유난스럽지 않았다. 미움이 넘친다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고, 사랑이 넘치는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 순간 사랑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늘 냉소적이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사랑이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내게는 없는 그녀만의 감성과 감정이, 내가 하지 못하는 친절과 베풂이, 그녀가 갖고 있는 글의 무게와 깊이가 사랑 때문은 아닌지 알고 싶었다. 그게 정말 사랑 때문이라면 나도 그 마음을 갖고 싶었다.


스물셋의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것을 비웃었고, 동시에 어떻게든 갖고 싶어 안달했다. 하찮고 쓸모없는 짓이라 회의를 품으면서도 너무 숭고하고 대단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면서 아는 듯 한 사랑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그때 읽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책이었다. 사랑을 쉽고 간단하게 규정하면서 연애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라 기대했는데 무거운 말들만 이어졌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는데 끝내 이 책은 물음표만 남겼다. 덕분에 사랑이 더더욱 어려워졌다. 사랑에 대한 확실한 정의와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사랑받고 싶었다는 간절함을 들은 후부터, 사랑 때문에 글을 쓴다는 또 다른 누군가의 글을 보면서, 사랑 때문에 절망했다가 사랑 때문에 웃는 당신을 보면서 대체 그게 뭔지 알고 싶어 졌다. 사랑을 믿지 않았고,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조를 부를 때에도 사랑이 뭔지 생각했다. 나를 변화시킨 게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랑에 무지했기에 실패했던 지난날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열심히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려 하고 개선법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이 활동을 포기할 것이다.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  


사랑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고작 이런 게 사랑인지 의심하기도 했고, 너무 거대해서 움츠러들기도 했다. 진부하고 뻔하다며 고개를 젓다가도 어느 순간 감탄했다. 그래도 '사랑은 ~이다'라고 결론 내릴 수 없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워지는 게 사랑이었다.


사랑이 뭐예요?』를 찾을 때에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딱 한 번 읽고 덮어버린 그림책이었다. 처음 읽었던 그 날, 별다른 감흥이 없었기에 그 후로 꺼내지 않았다.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딱히 더 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던 이 책을 다시 펼친 이유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랑이 궁금해서였다.



사랑이 뭘까,라고 엠마가 묻자  친구 아나타는 어른들만 아는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엠마는 어른인 가족들에게 사랑이 뭔지 묻는다. 화분에 꽃을 심고 있는 엄마는 봄에 피어나는 꽃처럼 천천히 피어나는 게 사랑이라 대답한다. 텔레비전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아빠는 축구 선수가 마지막 순간에 예상치 못한 골을 넣는 것처럼 갑자기 '펑'하고 찾아오는 게 사랑이라 한다.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할머니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게 사랑이라 하고, 장식장에 자동차 모형을 진열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잘 정비된 엔진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게 사랑이란다. 엠마는 사랑의 색과 모양과 맛도 궁금하다. 엠마의 질문에 이번에도 가족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맞춰 대답한다. 꽃에 물을 주는 엄마는 사랑은 꽃처럼 저마다 색깔이 다르다 하고, 축구공을 튀기는 아빠는 사랑은 둥글다 한다. 할머니는 오븐에서 케이크를 꺼내며 달콤하다 하고, 할아버지는 자동차 모형의 수를 세면서 사랑은 자동차 공장처럼 아주 거대하다고 말한다.


"믿을 수 없어요!
사랑이 색깔도 여러 가지고, 둥글고, 달콤하고, 거대한 거라니……."
엠마는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간단하고 명료할 줄 알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고 복잡하다. 사랑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고 제각각이어서 하나로 종합할 수가 없다. 기억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꽃도 선물해야 하고,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축구 경기도 봐야 하고,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도 나눠야 하고, 함께 드라이브도 가야 한다. 사랑에 대해 들을수록 물음만 커지는 엠마가 나와 똑같다. 다른 게 있다면 엠마는 순수한 호기심이고, 나는 이미 정해놓은 결론에 긍정을 더하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믿었지만 가족의 양육은 일관적이지도, 건강하지도 않았다. 사랑은 미움과 짝을 이뤘고, 불안과 불편을 동반했다. 미움, 불안, 거짓, 원망, 배신, 고독, 의심, 질투 등 부정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사랑인 줄 알았다. 그랬기에 연애를 할 때에도 사랑을 말하지 않았고, 사랑을 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이라도 나를 좋아해 주고 배려해주고 인정해주면 충분했다. 그 이상은 부담이었다.


"호호, 걱정하지 말렴.
한 번에 모든 걸 할 필요는 없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사랑은 저절로 찾아온단다."

사랑은 저절로 찾아오는 건지, 찾으려는 의지를 가져야 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에리히 프롬의 의견처럼 사랑을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이라는 말도, 나 자신을 찾아내고 나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하고 인간을 발견한다는 말도 이제는 알겠다. 스물세 살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문장들이 구구절절 다가오지만 과연 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이 뭐예요?』를 통해 사랑은 거대하지만은 않다는 것과 너무나 다양한 빛깔과 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사랑은 꽃처럼 다양한 색을 갖고 있고, 케이크를 굽고 있는 할머니에게 사랑은 달콤한 것처럼 모두의 사랑은 제각각이다. 꽃을 선물하는 것도 사랑이고, 같이 축구 경기장에 가는 것도 사랑이다. 한 조각밖에 없는 케이크를 나누는 것도, 아끼는 자동차 모형을 빌려주는 것도 사랑이다. 함께 할 식사를 고민하는 것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 서두르는 것도, 선물을 고르는 것도,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나에게 맞춰달라 요구하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은 시시하고 사소하다고 여긴 것들을 품고 있으며, 부정과 긍정을 아우르고 있다. 때로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치졸하기도 하고, 일방적이기도 하지만 나와 당신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려 노력한다면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완성이 아닌 과정이라는 것을,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배워야 하고 배우기 전에 이미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이 오면 저절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사랑이 있어 오늘도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랑은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고, 종합할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겠다.  

 

여기까지 쓰고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려는데 나의 사랑을 시험하는 일이 생겼다. 진정한 사랑은 어려움 앞에서 빛을 발한다는데 나의 사랑은 겨우 이 정도 일에 떨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사랑일까, 의문이 들지만 사랑하기에 겁을 먹고, 사랑하기에 걱정하고, 사랑하기에 불안하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러니 용기를 낼 수 있다고 최면을 거는 중이다.


정말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다.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


* 사랑이 뭐예요? 다비드 칼리 글, 안나 라우라 칸토네 그림, 서소영 옮김, 키즈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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