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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Dec 04. 2020

<오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날> 중요한 문제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소위 '인생의 목적'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뭘 해야 할지'모르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뭘 포기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갤리온 펴냄 -


해야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해야 할 일 때문에 며칠 마음이 무거웠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놓지 못하겠고, 부담만 느끼다가 정작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거나 빠르게 처리하지 못했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면서 흥분했다가 곧 안 될 확률을 가늠하면서 좌절하기도 했고, 미리미리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마음에 자잘한 돌덩어리 여러 개가 굴러다니는 기분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지만 미루고 미룬 결과는 무기력과 후회를 안겨주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며 어떻게든 끌어안으려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을 결과를 예상하니 의욕이 사라졌다. 그래서 또 시간만 보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가, 굳이 해야 하나 하는 자포자기가 생겼고, 이러면 안 된다고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여러 개를 동시에 건드렸지만(건드렸기에)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다. 


그나마 예전만큼 일에 허덕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대체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했는지 놀라다가 정말 그 정도로 일이 많았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모든 문제를 다 끌어안고 부담만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봤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놓친 채 다른 것에 시간을 낭비했던 건 아닌지 생각하자 그러네, 라는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몇 년 전, 『중요한 문제』와  『신경 끄기의 기술』을  동시에 읽으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정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의 네모 씨처럼 다시 한번 결정을 내려야 했다. 



네모 씨에게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문제가 생겼다. 그의 머리카락이 그 크기만큼 빠지는 중이다. 깍지를 낀 두 손을 코 밑에 대고 의사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티셔츠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쓴 네모 씨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어떤 처방도 열심히 따르기로 마음먹는다.


"통풍이 중요하니 우선 모자부터 벗으세요."
"당분간 땀이 나는 격렬한 운동은 하지 마세요."
"뜨거운 목욕도 삼가세요. 두피에 좋지 않습니다."
"동물의 털도 탈모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채소와 해조류 위주로 식사하시고 특히 검은콩 ……."


의사의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검은콩과 검은 쌀 같은 검은색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지만 커피와 초콜릿은 안 된단다. 제시간에 맞춰 약을 복용하고, 두피 마사지를 하고, 침도 맞아야 한단다. 무엇보다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네모 씨는 의사의 말대로 모자를 벗고, 새벽 달리기와 등산을 그만둔다. 땀이 나면 안 되기에 자전거로 하는 출퇴근도 중단한다. 평소처럼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뒤 시원한 맥주를 마시지 못하고, 동물의 털 때문에 키우고 있는 개와 함께 잠을 잘 수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느라 점점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네모 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영강사인 네모 씨는 회원들이 웃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고, 아이들마저 귀엽지 않다. 그렇게 네모 씨는 웃음을 잃어간다. 



여기서 내가 전하는 말의 골자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자기 생각에 집중해서 우선순위를 매길 것인가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정교하게 다듬은 개인적 가치관에 기초해 자신에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할 것인가를 전하는 거다. 이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평생을 연습하고 단련해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게다가 실패를 밥 먹듯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해볼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쟁이자 유일한 투쟁일 것이다.   

-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갤리온 펴냄 -


머리숱이 많은 의사에게 네모 씨의 탈모는 심각한 일이다. 병원에 다녀온 네모 씨 역시 동전만 하던 고민이 무척 중요해진다. 그래서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기할 건 포기하고, 챙겨야 할 건 꼬박꼬박 챙긴다. 그런 중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을 하지 못하면서 네모 씨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네모 씨에게서 당시의 내가 보인다.


이것도 붙잡아야 하고, 저것도 해결해야 하고, 모든 일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할 수 없는 일까지 끌어안고 부담만 키우다가 할 수 있는 일까지 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처리했지만 정작 내게 중요한 것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네모 씨가 의사의 말에 심각해지고 탈모를 매우 중요한 일로 받아들였듯이 내게 중요한 문제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고 만들어졌다. 중요하다고 여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아쉬움과 상실감은 자꾸만 커졌다.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어.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해 왔던 것들. 


여유가 생긴 지금, 오롯이 내게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하고 좋은지 생각했다. 당장 이번 주에 해야 할 일을 적으면서,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했다. 


1. 하기는 싫지만 이번 주 내에 꼭 해야 할 일

2. 좋아하지만 정해진 기간이 없어 자꾸만 미루는 일

3.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 끌어안고 있는 일


제일 먼저 하기는 싫지만 이번 주 내에 꼭 해야 하는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열흘 정도 머릿속에만 담아두었던 일을 세 시간 만에 끝냈다. 고민한 시간이 아까웠지만 완료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그다음은 하고 싶지만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미루고 미뤘던 일을 했다.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모르지만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부담이 줄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버리기로 했다. 따져보니 시간만 잡아먹는 사소한 일이었다. 네모 씨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머리숱에 미련을 갖지 않듯이 나 역시 나머지 일에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어느 정도 손해는 있겠지만 그런다고 큰일이 나지 않으니 선택한 것에 집중하려 한다. 


지금까지 끌어안았던 문제와 고민 대부분은 안 해도 될 것들이었다. 별 것 아닌 일에 신경 쓰느라 정말 중요한 문제를 잊고 있었다. 앞으로는 적당하게 무시하고, 적절하게 묵살하면서 진짜 '중요한 문제'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몇 년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이 아닌,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해 "꺼져"라고 말한다. 진짜로 중요한 것에 쓰기 위한 신경을 따로 남겨 놓는다. 

-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갤리온 펴냄 -

 


* 중요한 문제, 조원희 지음, 이야기꽃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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