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맞는 삶은 '지금-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집』 X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by 꿈의 떨림




늘 버리고 싶었던 지금의 나



자주 가던 카페는 2층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았고, 감미로운 연주음악이 흘러나왔지요. 저는 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책 읽기가 목적이었지만 책보다는 창밖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로 사람들을 봤어요.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음껏 훔쳐봤지요.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 즐거워했고, 누군가는 연인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 누군가는 세련된 외모에 근사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큰 키에 다부진 몸을 갖고 있었죠. 어떤 불안도, 걱정도 없다는 듯 당당하고 유쾌한 사람들을 보면 그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몸을 버리고 저들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자유롭게 영혼을 옮겨 다닐 수 있다면, 그러다가 그의 삶이 피곤하고 힘겨워지면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요.


불가능의 시작과 끝에는 늘 저에 대한 미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 행동이 후회될수록, 지금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수록 저를 버리고 싶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을 때면 과거에 대한 집착도 강해졌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결과를 만들지 않을 텐데 후회하고 원망했습니다. 악착같이 지난날을 붙잡으며 저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잘못한 건 상대였고, 미운 건 그였는데 마무리는 저에 대한 혐오로 끝났죠.


그럴 때면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진짜 잘 살 자신이 있었죠. 대신 조건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이 기억과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해야 하고, 뇌는 신선해야 하며, 겁쟁이 쫄보는 아니어야 하죠. 무엇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국가에서 태어나야 하고, 모국어는 영어여야 하며, 전문직을 가진 교양 있고 상냥한 부모를 둬야 합니다. 어차피 안 될 일인데도 구체적으로 조건을 제시하고 추가하면서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게 어렵다면 그때 그 선택을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상대에게 퍼붓고 싶었지만 목구멍 안으로 꿀꺽 삼키키만 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기를, 정작 사과해야 할 때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 거라 자신하면서요.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을 아무 때나 적용하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면 혹시 그날로 돌아간 건 아닌지 기대했습니다. 그러다 오늘은 아파했던 어제의 내일이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하루라는 걸 확인하고는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죠.


후회를 지우기 위한 선택



생각해보면 –요즘에는 점점 더 그랬다– 노라는 자신이 되지 못한 사람, 이루지 못한 일들의 관점으로만 자신을 보았다. 정말이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후회가 끝없이 반복되었다.
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어. 빙하학자가 되지 못했어. 댄의 아내가 되지 못했어. 엄마가 되지 못했어. 라비린스의 리드 보컬도 되지 못했어. 정말로 좋은 사람 혹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어. 볼테르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어.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제대로 죽지도 못했다. 그녀가 허비한 그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니 정말로 한심했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 시드 역시 지난날에 대한 후회로 삶이 고통스럽습니다. 수영을 포기한 게, 아빠와 말다툼한 게, 오빠 조를 실망시킨 게, 라비린스 밴드를 탈퇴한 게, 이지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지 않은 게, 댄과 결혼을 하지 않은 게, 환경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하지 못한 게,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게, 그 외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잡지 않은 게 다 후회됩니다. 그녀는 19년 전에도, 19년이 흐른 지금도 죽기로 결심합니다. 반려묘인 볼테르가 죽고, 악기 가게에서는 잘리고, 피아노 레슨을 받는 유일한 아이는 그만두고, 옆집에 사는 배너지 씨의 약을 약국에서 받는 일을 더는 할 수가 없고, SNS에는 찾아주는 사람도 없으니 더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죠. 노라는 유서를 쓰고, 약을 먹습니다. 그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정의 도서관이 펼쳐집니다. 노라가 다니던 학교 도서관 사서인 엘름 부인이 나타나 노라에게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죽을 수 없음을 깨닫자 노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삶을 살아보기로 합니다. 그 삶에서 실망이 느껴지면 다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올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곳에 남아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무척 환상적이지요.



“모든 삶에는 수백만 개의 결정이 수반된단다. 중요한 결정도 있고, 사소한 결정도 있지.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결과는 달라져.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생기고 이는 더 많은 변화로 이어지지. 이 책들은 네가 살았을 수도 있는 모든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뭐라고요?”
“너에겐 선택의 경우만큼이나 많은 삶이 있어. 네가 다른 선택을 한 삶들이 있지. 그리고 그 선택은 다른 결과로 이어져. 하나만 달라져도 인생사가 달라진단다. 자정의 도서관에는 그런 인생들이 모두 존재해. 너의 이번 삶만큼이나 실재하지.”
“평행 인생인가요?”
“꼭 평행은 아냐. 평행이라기보다는…… 직각에 가깝지. 네가 살 수도 있었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니? 뭔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 바꿔보고 싶은 게 있니? 잘못한 게 있어?”
이건 쉬운 질문이었다. “네. 전부 다요.”
(중략)
“하나만 달라져도 종종 전부가 달라지는 셈이란다. 인생을 사는 동안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한번 한 행동을 되돌릴 수 없어……. 하지만 넌 이제 인생 안에 있지 않아. 밖으로 튕겨 나왔어. 이건 네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볼 수 있는 기회야, 노라.”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딱 맞는 집을 찾기 위한 여정





'바닷가 집은 나하고 맞지 않아!'

나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그마한 어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
뭐 특별할 게 없는 집이었어.
짠 내 나는 바다 바로 앞에 있는 허름한 집이었거든.

'바닷가 집은 나하고 맞지 않아!'
나는 생각했어.
모든 게 비좁아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 살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꿈꿨어.

- 나의 집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노라가 그릇된 선택을 돌리고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아다닌다면 『나의 집』의 '나'는 자기에게 딱 맞는 집을 찾으려 합니다.


『나의 집』의 '나'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나'는 바닷가 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집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늘 다른 도시에서 살기를 꿈꾸지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나'는 열여덟 살이 되자 배낭에 그림 도구만 챙겨서 조금 큰 이웃 마을로 이사를 갑니다. 지붕 아래 좁은 다락방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이 아름답지만 작은 도시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나'는 큰 도시 파리로 갑니다. 마침내 '나한테 딱 맞는 집'을 찾았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변화가 필요합니다.



20년쯤 흘렀어.

나는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었고,
큰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열었어.
모든 일이 나에게 미소 지으며 술술 잘 풀렸어.
마치 왕자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이 충분했어.
그런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마치 내 삶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멈춰 버린 것 같았어.
늘 가는 카페, 늘 만나는 사람들, 늘 똑같은 파티.
나는 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 나의 집 -


아니라는 것만 확인한 시간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에 집을 정한 '나'는 지하철에서 나오는 사람들, 거리의 음악가, 개를 그리며 하루를 보냅니다. 이곳의 생활은 무척 마음에 듭니다. 드디어 '나한테 딱 맞는 집'을 찾았으니까요.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는 인정받는 예술가가 됩니다. 모든 일은 술술 잘 풀리고 모든 것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삶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멈춰 버린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긴 '나'는 지금 있는 곳보다 훨씬 큰, 진짜 대도시로 떠납니다. 테라스가 있는 19층 아파트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예술적 영감이 떠오릅니다. 정말 '진짜 나의 집'을 찾은 거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환상도 사라집니다. 대도시는 더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삭막한 생활에 염증도 느껴지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도시와 멀어지기로 하죠.



'이게 정말 내가 꿈꿔 왔던 집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큰 빌라에 사는 게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수영장엔 항상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 모르는 사람들뿐이었어.
멋진 골프장? 나는 골프도 즐기지 않는데, 뭘.

- 나의 집 -



자정의 도서관은 노라의 책으로 가득합니다. 노라가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책을 펼치면 그 인생으로 들어가죠. 노라의 후회로 가득 찬 《후회의 책》맨 끝에 있는 가장 긴 장은 주로 댄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시골에서 복고풍의 작은 펍을 운영하고 싶다던 댄을 떠올리자 노라는 결혼을 앞두고 그와 헤어진 게 무척 후회스럽습니다. 그래서 노라는 댄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곳에서 노라는 댄과 결혼을 해서 펍을 운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다릅니다. 원하던 꿈을 이뤘지만 댄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을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시죠. 노라는 댄과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고, 결국 다른 삶을 찾습니다. 신기록을 보유한 수영선수, 유명한 록밴드 보컬, 지구를 구하기 위해 북극에서 일하는 빙하학자 등등 노라는 자신이 원하는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정착할 수 있다고 믿지만 예기치 못한 불행을 만납니다. 친구와 가족의 죽음을 접하기도 하고, 아빠가 바람이 나서 엄마와 이혼을 하기도 하고, 원래의 삶에서는 음악에 두각을 드러낸 아이가 경찰서를 드나드는 문제아가 되기도 하죠. 이렇듯 노라의 선택은 자신뿐 아니라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까지 변화시킵니다. 만족스러운 줄 알았던 삶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노라는 실망과 죄책감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노라는 이 인생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 원하던 꿈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한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고, 같이 가지 못한 후회는 자신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 단짝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노라가 어릴 때 북극에 관심이 있었고, 빙하학자가 되고 싶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 꿈마저도 학교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과 나눈 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라비린스는 늘 오빠의 꿈이었다.
어쩌면 그녀를 위한 완벽한 삶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에 틀림없이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이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을 발견하려면 더 큰 그물을 던져야 한다는 걸 노라는 깨달았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뻔한 결말이 주는 위로





『나의 집』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에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보였습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제 예상이 맞기를 바랐죠.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면 했습니다. 다행히 두 이야기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뻔한 결말이 주는 식상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위로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딱 맞는 집을 찾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 수 있는 마법은 절대로 오지 않을 테니 현실을 살아야 하는 제게는 최고의 결말인 거죠. 결국 행복은 '지금-여기'에 있으니 이곳에서 삶의 의미와 만족을 찾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을,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상기했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면서 환경을 비롯한 성격과 능력에 대한 조건을 열거하는 저를 보면서 친한 언니가 피식 웃더군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냐면서요. 그때는 너무 절박해서 혹시,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요. 어쩌다가 다시 태어났는데 지금보다 못한 환경을 만나면 안 되니 필수사항이 점점 추가되었지요. 괜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현재를 어떻게 잘 살지 고민하라던 언니의 말이 그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근데 모든 걸 다 기억하고 다시 태어나면 정말 행복할까? 여기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다시 태어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내가 변하지 않았는데 뭐가 달라지겠어. 마냥 좋은 삶은 없잖아. 분명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살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거야. 무엇보다 친구라고 하는 애들이랑 말도 안 통하고 얼마나 답답하겠니. 난 그 애들이랑 같이 유치원이랑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말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또렷해집니다. 언니의 말대로 다시 태어난다 해도 완벽하게 행복할 수는 없을 거예요. 예전의 삶과 비교하면서 더 절망할 수도 있고, 작은 문제에도 불만을 키우느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새로 태어난 삶에서도 선택은 반복될 테고, 다양한 변수는 끊이지 않을 테니 거기에서도 후회와 미련이 생기겠죠. 완벽한 줄 알았던 삶에서 균열을 발견하고, 고통과 실망을 느낀 노라처럼 저 역시 이런 삶을 원했던 게 아니라고 하겠죠. 상상했던 것과 다르다며 원망과 분노를 키우다가 지금보다 더 못나고 한심한 인간이 될지도 몰라요.


아, 그리고 다시 유치원과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지루해지네요.


결국은 '지금-여기'에서의 삶



우리는 가끔,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기도 하는 것 같아.

- 나의 집 -


그렇게 죽고 싶어 했지만 노라가 진정 원했던 건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삶을 살면서 노라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이번 생이 싫어 다른 삶으로 태어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제가 정말 원했던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간절하게 바랐던 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게 충족되지 않았기에 비현실을 꿈꾸면서 현실에서 도망치려 한 거죠. 현재를 살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말이에요. 결국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고, 현재를 살지 못하면 다른 삶도 없습니다.


『나의 집』의 '나'는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노라는 수많은 인생을 겪으면서 진짜 자기의 삶을 찾았고요. 이들은 선택을 하고, 후회를 하고, 다시 선택을 하면서 결국 뭐가 진짜 자기의 것인지 깨달은 듯합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집』의 화자가 이곳이 진짜 나의 집인지 모르겠다며 물음표를 남긴 것처럼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한 노라도 언젠가는 물음표와 말줄임표를 남기며 예전과 똑같다고 할지 모릅니다. '지금-여기'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글을 쓰는 저도 또다시 현실을 부정하면서 다른 세상의 다른 삶을 꿈꿀지도 모르고요.


그렇긴 해도 다시 돌아올 겁니다. 몇 번을 헤맸으니 이제는 어떤 곳이 지름길인지도 알겠죠. 후회하면서 되돌리고 싶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지금-여기'의 삶을 선택할 겁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그게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이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바로 그곳임을 깨닫는 것은 꽤 충격적이다. 감옥은 장소가 아니라 관점이었다. 노라에게 가장 이상했던 사실은 지금까지 경험한 극도로 다양한 자신의 모습 중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는 예전과 똑같은 삶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녀가 시작했다가 끝냈던 삶.
가장 심오하면서도 큰 변화는 더 부자가 되거나, 더 성공하거나, 더 유명해지거나, 스발바르의 빙하와 북극곰들 사이에 있어야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낡은 소파와 유카 화분, 조그만 선인장 화분과 서가, 아직 따라 해보지 않은 요가책이 있는, 어제와 똑같이 지저분한 아파트에서 어제와 똑같은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일어났다.
어제와 똑같은 디지털 피아노와 책이 있었다. 반려묘가 사라진 슬픔과 실직의 고통도 그대로였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모든 게 달라졌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하루 종일 풀밭에 누워서 구름이나 볼까?
내일. 오늘은 청소 마저 하고.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오늘이야. 다 놔두고 가자.
어디로?

몰라. 그냥 숨이 찰 때까지 달려서 강물에 뛰어들자. 그리고 소리칠 거야. 당신을 사랑한다고.
대체 왜?

일일이 이유가 필요해?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나랑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
내 인생은 이미 여기 있는 걸.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지금도 흘러가고 있잖아. 가자!
알겠어. 그런데 지금은 말고, 내일!

아니, 오늘이야.


- 인생은 지금, 다비드 칼리 글, 세실리아 페리 그림, 정원정 박서영 옮김, 오후의 소묘 펴냄 -

* 나의 집, 다비드 칼리 글, 세바스티앙 무랭 그림, 바람숲아이 옮김, 봄개울 펴냄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