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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Aug 26. 2020

<반쪽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날> 마음샘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 논란이  종교단체에서 에니어그램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밝히자면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들의 신은 부정합니다. 에니어그램에 관심이 생겨 관련된 책을 읽고 그림책을 포함한 문학작품과 연계하는 모임을 시작했지만 코로나로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혹시라도 종교와 연관되었다고 오해를 받을까 봐 미리 남깁니다.

                                                                                                                                                                                                                                                                              




<반쪽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날> 마음샘


마음샘, 조수경 지음, 한솔수북 펴냄


사람의 성격을 9가지로 분류한 에니어그램에 관한 책모임 후 오랫동안 울었다. 알고 있었다. 1부터 9까지의 유형 그 무엇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각각 약점과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에니어그램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판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을 맹신해서는 안 되며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보지 않으려 했던 나의 반쪽이 다시 나를 공격했다. 이번에는 꽤 질기고 사나웠다. 덕분에 괜찮다고 여긴 다른 반쪽까지 엉망이 됐다. 남의 약점은 그럭저럭 괜찮거나 그것마저 매력적이었는데 나의 강점은 시시하고, 답답하고, 형편없었다.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열등감이 자랐다.


강한 사람이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매섭게 추진하고, 해야 할 일 앞에서는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성공에 대한 감각과 통찰력이 뛰어나길 바랐고, 호기심이 강해 모험을 즐겼으면 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이 넘치길, 세심하고 다정하게 당신을 대하길, 아름다운 감성과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넓어지고 단단해지길 갈망했다. 모임이 끝난 후 '내가 기대하고 꿈꾸는 나'가 '진짜 나'라고 우기고 싶었다. 그런 모습만 보이고 비치길 바랐다.


  정신 안에 있는 것은 전부 다 알맞은 자리가 있지만, 골치 아픈 방식으로 또는 부적절한 때에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해결의 열쇠는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어떤 식으로든 존중할수록 삶이 더 완전해지고 만족스러워진다. '내 안의 이 잘못된 것을 어떻게 없애지?'라는 질문으로는 그림자를 구원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질문은 '어째서 옳은 것이 잘못된 자리에 있지?'다. 

(중략)

  억압된 특징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용기를 내보자. 적절한 수준으로 쓰인다면, 그동안 억눌러왔던 면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
  '나쁜 쪽'을 살피고 그것도 자신의 일부이며 삶에서 맡은 역할이 있으리라 여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 욕망과 충동의 붕괴를 직시하려면 정직함과 겸손함이 필요하다. 한쪽은 '그래'라고 하는 것 같아도 다른 한쪽은 '안 돼'라며 격렬히 저항하기 마련이다.

  -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로버트 존슨 - 제리 룰 지음, 신선해 옮김, 가나문화콘텐츠 펴냄



 『마음샘』의 늑대도 그런 마음이었다. 뜻하지 않게 샘물에서 마주한 토끼를 어떻게든 없애야 했다. 용감한 늑대에게 토끼가 있다는 건 치욕이다. 다른 동물들에게 들키기 전에 토끼를 쫓아내야 하는데 번번이 실패다. 아무리 애를 써도 토끼는 늑대와 한 몸인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샘』은 정신분석가이자 심리학자인 융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자는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보기 싫은 것, 거부하고 싶은 것, 피하고 싶은 것들이 쌓여있다. 무의식 단계에 있지만 완벽하게 가두지 못해 불쑥 튀어나온다. 그림자를 억압하면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받아들이면 창조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한다. 그림자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많은 나의 반쪽이다.  


늑대 안에 토끼가 없다면 위험한 상황마다 무모한 짓을 할 것이다. 늑대에게 토끼가 있기에 다정하기도 하고, 순하기도 하고, 영리하기도 하다. 때로는 비겁하고, 별 것 아닌 일에 긴장하면서 자책도 하겠지만 늑대와 토끼가 공존하기에 늑대가 늑대다워질 수 있다.   



늑대가 토끼의 손을 잡고 받아들이는 장면을 보면서 내 그림자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졌다. 아직은 어렵지만 조금씩 다가가는 연습을 하면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조심스럽고 힘겹게, 나는 5번 날개를 쓰는 6유형이다. 불안이 높고 두려움이 강하다. 자존감은 형편없이 낮아 내가 잘할 수 있는지 늘 의심한다. 불안 때문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고, 완벽하지 못해 불안하다. 의심이 많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데 어이없는 순간에 무너진다. 대체로 순응하는 편인데 아니라고 생각하면 대항한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공적인 영역이라면 밝고 사교적이다. 가식은 아니다. 책임감으로 발동된 사교성이 스스럼없이 발현되는 듯하다. 낯을 많이 가릴 뿐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의 이유 없는 호의를 불편해하고, 마음은 있어도 상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자기 확신이 부족해서 권위자를 찾지만 회의주의 성향이 강해 그들의 말도 잘 믿지 않는다. 늘 두려움과 열등감에 시달리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지친다. 책임감에 압사될까 봐 책임지는 일을 맡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도 인정 욕구는 커서 덥석 문다. 준비만 하다가 실행하지 못 하기도 하지만 대책 없이 결정하기도 한다. 성실이 무기이지만 남들이 믿는 것만큼 성실하지 않다. 놀라울 정도로 게으르기까지 하다. 게으름을 부리면서 이러면 안 된다는 자책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다. 6유형이 다 이렇지는 않다. 같은 유형이라도 몇 번 날개를 쓰는지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화살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건강한 상태와 그렇지 않을 때 나오는 특징과 강도도 제각각이다. 살아온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에니어그램 유형에 맞춰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에니어그램은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런 고백을 시작으로 부정하고 싶은 내 반쪽을  받아들이려 한다. 다시 밀쳐내고  싶을 테고  내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날이 올 테지만 지금 현재 그림자를 인식했다는 게 중요하다. 불안이 덮칠 때면 그럴만한 근거가 있는지 따져보고, 불필요한 자책을 덜어내는 연습도 해야겠다.  


그림자 때문에 당신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이제는 내 그림자를 보여주면서 마음을 열고 싶다.



* 마음샘, 조수경 지음, 한솔수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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