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싶게 만드는 것들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인 E사에 입사하자마자 크게 실망한 기억이 난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충실한 알맹이 없는 조직 같아 보였다. 전략 없이 실행만, 분석 없이 매장 사진 같은 보여지는 것 만에만 집중했다. 사람들에도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한 목걸이에만 관심이 있었다. 또한 좋은 대학을 나온 똘똘한 직원들은 체계적인 교육 없이 방치되었다.
그런데 E 브랜드는 2023년 현재, 여전히 그 옛날 명성을 지키고 굳건히 백화점 1층의 가장 좋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도 샤넬과 디올 같은 경쟁사가 가지고 있는 패션 하우스의 후광효과 없이도 잘 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 시절 그곳에서 근무했던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Family Business의 가지고 있는 내공과 <좌뇌 DNA 수혈>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현재 E사의 CEO는 P&G 출신 Fabrizio Freda라는 분이다. 필자가 영국에서 MBA를 할 때, 그가 P&G 이탈리아 지사장으로 프링글스라는 감자 과자를 성공시킨 케이스 스터디로 공부를 한 적이 있다. P&G 소비재의 대표적인 회사이면서 펜틴, 헤드 앤 숄더 등 글로벌 브랜드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회사의 특성을 이야기하자면, 데이터, 특히 소비자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의사 결정하는 회사이다. E사는 직관으로만 이뤄진 의사결정을 찾아볼 수 없는 대표적인 회사이다. 이런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Fabrizio Freda를 CEO로 임용한 것은 내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좌뇌를 가진 외부 영입은 상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Wharton, Kellogg 같은 Top MBA를 졸업한 젊은 층이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수혈되었고 정식 직원 되었다. 필자가 마케팅 매니저였을 때 시장조사로 서울에 온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똑똑하고 열정 가득한 이들은 경쟁사의 매출 자료와 한국 소비자 트렌드를 항상 숙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재능과 새로운 사고방식은 회사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처럼 위아래 좌뇌형 DNA의 영입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은 기존 조직 내에 잘 스며들었고 이는 매출성장과 수익확대로 이어졌다. Fabrizio Freda는 E사를 코로나 상황에서 두 자리 성장을 이뤄낸 보기 드문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그의 리더십도 기인했지만 숨은 공신이 있다.
바로 E사의 Owner 家 일가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기까지는 E사의 오너들의 결단이 중요했다. 오너가 들은 창업가인 부모나 조모의 엄청한 유산을 가지고 그저 사교 생활을 하며 흥청망청 돈 만 쓰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Historical legacy를 잘 이해했고, 시대에 변화에 맞게 자신들과 브랜드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재벌들과 달리 본인들이 잘할 수 없는 일들을 잘 알았고 이러한 일들을 대신해줄 수 있는 인재들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노력했고 성공했다. 외부 인재 영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숫자로 만 판단할 수 없는 문화적, 미적 유산과 히스토리에 대해서는 강력히 지키려는 의지를 보였다.
사고 싶게 만드는 것들, 저자폴린 브라운출판
인트로가 너무 장황하고 길었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책은 폴린 브라운의 <사게 만들고 싶게 하는 비밀(Aesthetic Intelligence)>이다. E사의 성공 스토리와 연관된 책이다. 저자 폴린 브라운은 대표적인 <좌뇌 DNA 수혈> 멤버 중에 한 명이었다. 그녀도 MBA 졸업하고 BAIN& COMPANY를 거쳐 E브랜드 본사 전략담당으로 입사하였다.
책은 그녀가 입사 후 담당 브랜드의 내부운영방식을 관찰하면서 <Aesthetic Intelligence, 미적지능>이라는 다른 산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산을 발견한다. 이후 E사와 L사에서 근무하면서 깨닫게 되는 럭셔리 뷰티 시장에서 이 <Aesthetic Intelligence> 이 가지는 역할과 개인과 조직이 이 <Aesthetic Intelligence>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최신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폴린은 필자가 E사에서 근무하면서 배웠던 값진 교훈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소비자를 분석하지 말고 그들의 욕망과 꿈을 하려고 하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와 방법, 그리고 미적지능이 브랜드를 이해하는 것이 종국엔 고객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 미적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 두 가지를 사례를 통해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여러 명품 브랜드 회사에서 일하고 다양한 직급을 거쳐오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전통적으로 사업의 규모, 효율성, 혁신에 중점을 둔 기업들이 미학을 무시하고 오해하거나 미학에 투자하기를 게을리해서 그들의 금전적 가치와 소비자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Bain & Company 컨설팅에서 갈고닦은 분석능력으로 작성한 보고자료에 시큰둥한 반응 보였던 COO와의 미팅은 럭셔리 뷰티 시장에서 숫자와 그래프만 가지고 의사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객을 개별적인 주체로 보고 그들의 만나는 매장과 샵에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은 개인의 성찰을 병행해야 한다. 고객은 데이터 베이스의 정크 덩어리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먼저 분석 보고서, 숫자와 분석으로 이루어진 보고서는 실행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현장에서는 내일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게 된다.
미학의 가치는 리더들의 미적 지능을 토대로 꼭대기부터 시작되어 이에 맞는 조직문화를 세우고 지속시키려는 리더의 능력이 미학의 가치를 결정한다.
폴린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유럽의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본인들 만의 미적가치를 가지고 있고 이를 브랜드 코드들로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쩌면 오랜 전통과 유산을 느끼고 체험해 온 후손들이 브랜드의 미적가치를 가장 잘 이해할 것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적합한 브랜드 코드를 활용하고 어떤 것들을 버려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룹이다. 따라서 오너일가들은 실제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진들에게 이 미적가치를 잘 공유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앞에서 얘기했던 E 브랜드의 오너 일가는 이를 잘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 같은 종사원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미적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한다.
우리 동료나 선후배들은 이미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패션 뷰티 브랜드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들이 본인들의 브랜드와 다른 브랜드를 소비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월급을 생각하면 과하다고 생각도 하지만 이건 그저 각자 몸담고 있는 시장이나 카테고리의 미적 지능을 높이고 싶은 노력의 일환이다. 그래야 소비자들과 그 브랜드의 코드인 미학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가끔 사는 비싼 화장품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연히 고급스러운 포장이 필요하다, 특별한 샴페인에 맞는 잔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가끔 백화점의 럭셔리 뷰티 브랜드들이 화려한 비주얼과 브랜드의 명성만을 가지고 현재 위치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으로 빅 데이터와 디지털의 융합으로 분석결과가 비즈니스의 성공을 보증하는 수표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말하고 싶은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이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
요즘 빅 데이터나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을 얘기하는 IT회사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점은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정성적인 방법의 점검이 필요하다. 크로스 체크와 같은 기능이다. 기교과 기술로만 소비자 마음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