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 어리게 차렸던 스타트 업 회사를 접고 다시 취직을 하려 하니 아니! 이게 웬일! 세상이 달라졌더군요. 세상은 디지털에 지배당하고 있었고, 좀 더 어리고, 좀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 이 디지털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저보다 더 젊은 세대들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임원들 마저도…
처음에는 당황했고 현실을 부정했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언론은 경쟁이라도 하듯 30대 임원, 대표 등을 새로 등용했다는 대기업들의 인사 트렌드를 보여주는 기사를 연말과 연초에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인들과 선배들이 10살 이상 어린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강퇴 당 하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것 대세구나! 우리 시대는 이제 가고 있구나!”. 그러나 이내 드는 생각 “50대 초반에 은퇴라?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너무들 하는데!”
조직에는 다양성이 주는 혜택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런 의미에서 50대 이상의 매니저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곧 젊은 세대만 구성된 조직은 모럴 해저드 속에 빠져 허우적 될 것으로 나만의 어두운 예언을 하고 다녔죠. 그러나 이딴 독설로 장강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고 저는 <안 해! 치사하다고> 하는 마음으로 다른 시도를 해봤습니다.
“그래 마케팅 강의를 해보자. 컨설팅도 좋겠지.”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거기에는 오랫동안 터를 잡고 실력과 경험을 쌓아온 분들이 계셨고 나의 경력으로는 나의 가능성을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나 임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많이 겪게 되었어요.
은퇴해야 하나? 그러기에는 너무 피가 아직 뜨거운데???
60살 넘은 분들이 부러웠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은퇴하든, 생업을 계속하든 모두 받아들여지는 나이이고 헛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그런 나이가 되고 싶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54세라는 나이를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은 아무도 없는 광야에 혼자 버려진 힘없는 강아지 같았어요. 무서워서 짖지도 못하는….
그러다가 지난 4월에 링크드 인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디자인 대학의 뷰티 학과에서 면접을 보자는 제안이 왔고 6개월 동안 열심히 서류 제출과 면접에 집중했습니다. 한국의 미용학과와는 달리 브랜드, 디자인, 뷰티 산업에 대한 아카데미 접근과 실용적인 시도가 잘 융합된 커리큘럼이 돋보이는 학교였습니다. 그러나 채용 과정이 지지부진, 결국 채용연기로 마지막 희망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 이 나이에 혼자 미국에서 안 되는 영어 가지고 무슨 고생이야” 여우의 신포도 우화가 생각나는 스스로의 위로를 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우울한 나날을 보고 있던 와중에 뜻밖에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전문가와 중소기업 대표들을 이어주던 대행사의 새로운 프로젝트 공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제품 출시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프로젝트이었고, 해당 산업도 저에게 익숙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한 10명 정도 서류로 지원했고, 1차에 2명을 선발하여 기업의 대표님과 면접 후 최종 선발 된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1차 통과는 확신했고 2명 중에 한 명이 채용된다는 말을 듣고 더욱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어떡하지!” “아냐! 내가 적임자야”. 면접 당일 내가 적임자라는 것을 거만하게 어필하고 싶었으나 절실하게 내가 왜 적임자인지 읍소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10일 정도 지난 후, 혼자 쇼핑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너무 기뻤고 무엇인가 이 프로젝트로 나의 실력과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고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 앞 가름도 못하면서도 혼자서 회사를 잘 키워온 대표가 더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내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