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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쟝쟝 Sep 11. 2021

생애 첫 음독후감

닉 혼비, 어바웃 어 보이

술을 마신다. 취한다. 지금의 나는 대책없이 낙천적이다. 술 먹으면 언제나 걱정이 사라진다. 술을 먹는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것은 음주중의 독후감이다. 음독후감(?) 이상하다. 아무튼. 그러고 싶은 날이고 그래도 상관없는 날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과 초조는 영혼을 잠식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무언가를 시작할 때 딸려오는 당연한 불안이다. 문제는, 지금의 나는 이 당연한 불안함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거다. 그건 뭐냐면, 지금까지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기댈 곳이 있었다. 뒤바꿔 말하면 반발 걸쳐있는 느낌의 선택이었다. 혹은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의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최악은 아닌 차악의 선택, 적어도 스스로에게 변명할 거리는 되는 선택들로 인한 시작 말이다. 


이번의 시작은 조금 다르다. 여느 때처럼의 잘 모르는 것들에게 나를 던지는 미지의 시작임은 맞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등떠밀려서의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고 그리고 선택의 결과가 결국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다르며,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내가 혼자이고 이 불안함을 시시콜콜하게 나누던 익숙한 관계들이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내겐 아무도 없으니까, 훠이 훠어이- 불안함- 외로움이여, 떠나가버렷!!! 팔로 휘적휘적하다가 좀 대책이 없는 날엔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취해있으면 불안이 조금은 사라졌거든. 그런데 또 술을 신나게 퍼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불안으로부터 도망칠래? 응!!!!! 그러고 싶지만 그 댓가가 또 다른 형태의 중독인 건 싫어. 그럼 도망치지 말자. 그냥 이 불안을, 불안을 나눌 수 없음을, 그로인해 딸려오는 외로움을 쓰자. 불안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불안을 상기시키는 술을 마시자. 하고 아주아주 맛있는 칵테일(보드카:토닉워터:주스)을 만들어서 마시면서 앉아서 이걸 쓴다. 술을 마시면서 불안을 집중검토하며 글을 쓰면 불안을 술로 잊어버리는 건 아니게 되잖아? 내일 일어나서 지우지 않길 바라며. 혈중 알콜농도는 체온은 1도 정도 상승한 느낌이며 눈이 뻑뻑하나 글씨가 읽히고 글을 쓸 수 있는 수준. 


“(358) 삶은, 결국 공기 같았다. 윌은 이제 더 이상 그 사실에 일말의 회의도 없었다. 들어오지 못하게 막거나, 거리를 둘 수도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걸 숨 쉬며 사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렇게 건더기다 많은 걸 폐로 흡입하면서도 질식해 죽지 않는지 미스터리였지만, 이 공기는 서걱서걱 씹히다시피 했다.”


사실 나는 괜찮다. 그 어느 때 보다 괜찮다. 20대 내내 심각하게 매달렸던 관계중독에서도 벗어났고, 나를 들들 볶아대며 끊임없이 고나리질 하던 전 직장에서도 벗어났으며, 언제나 무언가를 나누기엔 대화가 너무 부족했던 가족으로부터도 벗어났고 (사실 아직 남은 여분의 기대를 완전 철회하기 위해 노력중이며),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던 연애에서도 가까스로 탈출했다. 


지금 내 집 구석구석에는 자유, 자유에 대한 열망들이 이곳 저곳에 옹골차게 붙어있는 데,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게 자유였다는 건 동시에 내가 얼마나 자유롭지 않고 속박당하기를 (자처했을 수도) 익숙해 했던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괜찮지 않던 때도 나는 스스로를 괜찮다고 다독였고, 정말로 괜찮아졌을 때는 정말 더 괜찮다고 떠들어왔으며, 상대적으로 요즘의 나는 가장 괜찮지만, 앞으로 더 괜찮아진다면 지금의 나를 생각했을 때, 그 때 안괜찮았구나 싶겠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는 괜찮음이란 이것은 내가 느끼는 나만의 고유한 어떤 상태이고 상황이므로, 나는 괜찮다. 


저절로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괜찮아지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그리고 그건 잘했어!라고 나한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상태에서 나의 괜찮음은 레알 팩트 진심 찐. 그런데 나를 상대화해 보면 나의 고유함을 배제하면, (사실 나는 나 자신의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 무덤덤해지길 원하는 편이다) 나는 엄살쟁이다. 엄살쟁이일 것 같다. 엄살쟁이인가? 아 몰라. 그러니까. 내 인생의 스크래치 정도로는 말짱해야 정상인 것처럼 느낀다. 골절이 아니라 스크래치고, 설령 골절이라고 해도 뼈 다 붙은 만큼의 시간이 흐른 거다. 그래서 세상이 뒤틀리고 기이해보일 때가 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렇게 건더기가 많은 걸 흡입하면서도 질식해 죽지 않는지 미스터리다” 


윌은 직업이 없고 부양가족 없고 부양애인도 없고 부양묘도 없는데 부양 아파트는 있다. 유명 캐롤송을 작곡한 아버지 덕에 부유하지 않지만은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인세 수입이 있다. 기본소득이랄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삶이랄까. 어쨌든 세상에나 그런 경제적 상황에서, 뭐 아주 대단한 인간이 될 법도 한 시간과 공간의 풍요 속에서 살면서 대단해지지 않고 무사하게 살아간다. 인생이 심심해서 로맨스를 꿈꾸긴 하나 그것이 잘 안되는 인간이다. 그의 인생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은 아주 쿨하고, 하지만 너무 쿨내나서 귀찮을 거리를 만들지 않고, 그에 딸려오는 외로움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섹스도 좀 필요하고 그래서 귀찮지 않을 로맨스와 섹스를 제공해줄 여성을 찾는 그런 상태의 도시남이다. 또 다른 주인공 마커스는… 마커스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데 슬슬 취기가 글을 쓰기 피곤해질 올라와서 좀 지친다. 아무튼. 내가 소설을 통틀어서 가장 감동받은 마지막 부분을 적고 잠을 자야겠다. 


음.. 쓸까했는데 너무 스포같아서 안되겠다. 아무리 취했어도 소설의 핵심을 알려주는 일을 할 수는 없다. 비슷한 페이지로 대체한다. 


“(378) 아빠, 상관 없어요. 정말이에요. 상황이 나빠지면, 아빠를 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중략) 정말 저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철 덜든 백수 도시남과 너무 일찍 철든 것도 같아보이는 왕따 소년의 우정 이야기다. 그리고 사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그렇게 대단한 일(커트코 베인의 자살?)은 소소하게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일어나더라도 금새 소소해지거 마는 것이다. 해프닝, 해프닝.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을 수 밖에 없는 문체(이걸 영국식 유머라고 하나), 혼자서는 결국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하찮음과 그 하찮은 사람들이 인연으로 엮이는 과정, 정말로 소중했던 것들이 소중하지만 유일하지는 않게 된다는, 그러니까, 언제나 소중한 것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유일해서 소중한 것은 아니며 변할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 바뀌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의지해서 살아갈 것이라는 다소 서늘한 소년의 통찰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사람과 존재들이 소중하다. 그러나 이것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고 소중해서 변하지 않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나 조차도 변할 것이니까. 다만 나는 배울 수 있는 사람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들을 배우고 그들의 흔적을 내게 남기겠지만 그들을 내 마음속에 박제시키고 나와 그들의 변화를 막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거야. 나를 망쳐온 것이 그 유일, 영원에 대한 고지식함임이란 걸 이제는 좀 알아졌거든. 계절의 변화처럼 관계의 변화 역시 그냥. 받아들일 거야. 받아들인다고 해서 지금의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변하냐, 그건 또 아니야. 소중, 유일, 영원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기. 


뭘썼는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써보는 것도 괜찮은 걸? ㅎㅎㅎ 음주독후감 끗. 혈중알콜농도가 잠을 부르옵니다.  


(371)
“나와 좀….. 그렇게 다르지 않은 여자요.” 마커스가 외교적으로 말했다.
“글쎄다. 행운을 빈다.” 카트리나가 말했다. “우리 중 절반은 평생을 우리와 좀 그렇게 다르지 않은 사람을 찾아 헤매고도 아직도 못찾았단다.”
“그렇게 어려워요?” 마커스가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지.” 마커스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진심 어린 말투로 피오나가 말했다.
“안 그러면 우리가 왜 다 독신이겠니?” 카트리나가 말했다.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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