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메모장
최근 조금 급한 일정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누가 내쫓은 것도 아닌데, 발등에 불 떨어진 듯한 모양새로 어찌어찌 다음 세입자와 새로 이사할 집을 구했다.
문제는 어마어마한 짐.
시골에서 조금 더 나은 도시로 이사한다고, 올린 보증금에 비해 집 크기가 조금 아쉬웠다. 2인 짐이 3-4인 짐 뺨치는 집이라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나 둘 다 짐을 줄여야 했다.
엄마는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난 아직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틈나는 대로 나의 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상상 속 난 이삿짐센터가 아닌 내 손을 거쳐야만 하는 짐들을 정리한다. 내 아이돌의 앨범들을 가지고 있는 에어캡으로 포장해 따로 박스에 담고, 굿즈들은 실 사용 여부를 구분하여 쓰지 않을 것들은 쓰레기통에, 쓸 것들은 작은 상자에.
아, 근데 이건 너무 예쁜데.
아쉬움이 남는 건 보류로 또 모아둔다. 이렇게 해선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엔 옷장을 연다. 몇 년 전 친구 결혼식 이후 꺼낸 적 없는 바지. 매해 그 옷을 입을 계절이 되면 내년엔 살 빼서 입어야지 한 게 여태 서랍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건 버리고, 올해 한 번도 안 꺼낸 옷도 내년에 입으리란 보장에 없으니, 그것도 버려야지. 양말도 오래된 건 버리고, 잠옷도 낡은 건 이제 보내주자.
지난 연애 때, 데이트 하는 날 입으려고 샀던 옷들은 입기도 전 쓸모가 없어졌다. 아까워서 뒀는데 그새 유행이 많이 지나 입을 일이 없으니, 이것도 보내주고, 가방도 샀는데 무거워서 방치된 것들도 정리해야 한다.
지난 덕질의 흔적으로 남은 액자들도 버려야 하는데, 동생한테 폐기해 달라고 해보고 안 되면 인터넷으로 대형 폐기물 접수해야겠다.
4단 서랍은 버리고 갈 예정이라 5단 서랍과 4단 서랍의 내용물을 5단 서랍에 다 수납해야 한다. 정말 곤란하네. 뭘 샀다 하면 대량으로 사는 편이라 다 실 사용할 물건들이다. 그래도 구석에 박혀 잊혔던 것들은 꺼내서 보내줘야지.
침대가 수납형인데 매트리스 들치기 귀찮아서 텅 비어 있다. 여기에 어떤 물건을 채울지 정해야 하는데, 계절 지난 옷들을 한 칸에 몰아두고, 남은 한 칸엔 이불을 넣으면 좋을 것 같다.
스툴과 책상은 일단 보류. 입주 청소 날 가서 방 크기 체크하고 최종으로 함께 할 가구를 정해야 한다. 책상 없이는 곤란하단 말입니다.
전 직장에서 퇴사하고 남은 건 탁상형 액자뿐인데, 이것도 참 곤란하다. 버리자니 새것고, 거치하자니 자리가 없네. 이사할 집엔 벽에 꽂꼬핀이라도 꽂아 걸어야겠다.
제일 곤란한 건 미니 책꽂이에 있는 것들인데, 그거야말로 난감하다.
이젠 읽지 않는 책들과, 탭을 사기 전 출력했던 교안들. 전공과목이야 그중에서도 다시 들춰볼 일이 있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버려야 하는데, 이것 또한 아깝다. 이미 다 읽어 펼치지 않은 지 몇 년 된 책은 그 책을 읽었던 그 시절의 내 취향으로 남아 있고, 교안은 보내줄 순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버리자니 아깝고 이면지로 쓰면 좋겠단 말이지. 문제는 내가 이면지 쓸 일이 없다는 거고.
이런 식이면 다시 도돌이표다. 버릴 수 있는 과감함. 그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