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endant & Earring
대학에서 Jewellery/Metal Program을 전공하고 졸업할 때였다. 학교 측에서는 내가 Graduate Program에 진학하여 계속 학교에 남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이 작은 도시에서 홀로 공부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 이민생활 10년 동안 향수병에 걸렸고, 애들이 공부하기 위해서 타지방으로 가는 바람에 혼자가 되었던 것이다. 일단 고국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는 생각으로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였다. 집과 차와 모든 생활품을 정리하고 달랑 배낭 하나만 남겼다. 배낭을 메고 Halifax를 출발하여 캐나다 대륙을 가로질려 갔다. 두 아들이 있는 캐나다 중부 Saskatchewan주에 좀 머물다가 한국으로 건너갈 요랑이었다.
Fredericton – Moncton – Halifax – Quebec – Ottawa – Montreal –Toronto 경로로 배낭여행을 하고, 비행기로 Toronto에서 애들이 있는 Saskatchewan으로 갔다. 그곳에서 애들과 함께 2개월 지내다가 버스로 Calgary – Banff – Vancouver를 지나 비행기로 한국으로 왔다.
고국에 가면 오랜만에 형제들을 만날 것이다. 귀국 선물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배낭 1개만 달랑 메고 캐나다 대륙을 횡단해야 하는데 귀국 선물을 준비하기란 어려웠다. 물론 캐나다 마지막 도착지 Vancouver에서 선물을 준비하면 될 일이다. 한 두 개는 쉬우나 여러 명의 선물을 근사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내 특기를 이용하였다. 6월 초순에 나는 학교 허락 아래 Fredericton을 떠나기 3일 전부터 학교 작업실에서 일을 하였다. 귀국 선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꼬박 3일 동안 누님들, 여동생, 형수님에게 드릴 선물로 목걸이 혹은 귀걸이를 디자인하여 만들었다. 이 두 종류는 사이즈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틈만 나면 디자인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멍청해지기도 하고 허공에 시선을 두기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나의 형태가 나타났다. 작업을 시작하는 날 바로 목걸이와 귀걸이의 기본 디자인을 마치고 조금씩 변형을 가했다. 아무도 없는 3일이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모든 장비와 기구를 혼자 사용하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저녁 늦게 작업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형제를 위한 선물이다. 몰입 작업은 당연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의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니 더더욱 행복했다.
목걸이 하나와 귀걸이 네 개를 만들어 헝겊에 돌돌 말아 배낭 깊은 곳에 넣었다. 크기와 무게는 여행하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6월에 내가 살던 캐나다 동부 도시 Fredericton을 출발하여 캐나다 대륙을 휭단하고 그해 12월 초에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 며칠 후 고향인 경주로, 누님 댁의 서울로, 그리고 작은 누님 댁과 여동생 댁의 부산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막내 동생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가 이제 배낭 하나만 메고 돌아온 막내를 보니 딱하기도 했으리라. 작은 황남빵 한 박스와 내가 만든 귀걸이 혹은 목걸이 한 점을 선물로 내놓았다. 형제이니 이해했으리라. 흔해 빠진 빵이고, 고국에서는 쳐다보지도 않는 괴상한 은제 귀걸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번떡 떠오르는 단상으로 몰입해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걸이이고 귀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