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의 기저귀 코너.
일주일에도 몇 번씩 이런저런 것들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갔지만, 기저귀 코너를 간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10분이 넘도록 뚫어져라 보고 있는 기저귀는 아기용이 아니라 성인용. 실버, 시니어 같은 외래어 표기로 순화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모두가 나이가 들어 이런 기저귀를 차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성인용 기저귀들이 이렇게나 다양한 걸 보면, 이것들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증거일게다.
그러니... 이런 일을 당하는 건 나뿐이 아니라는 얘기.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일.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쉰 후, 크기와 용도, 가격을 비교했다.
장거리 여행이 될 거다. 아빠는 병원에서 힘을 내야 하고, 나는 바깥 일을 잘 꾸려내야만 한다.
종류도 사이즈도 가격도 천차만별인 성인용 기저귀에 대해 설명서를 읽고 가격을 비교하면서 들었다 놨다 한참을 하다가 가장 저렴한 기저귀 4개를 골라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 위에 산처럼 쌓인 기저귀를 보며 사람들은 의아한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9월. 입추가 지난 지 한참이지만 더위는 가을에게 자리를 내줄 생각이 영 없는 것 같았다. 땀에 절어 등짝에 쩍 달라붙은 티셔츠. 언제 빗었는지 모를 만큼 엉클어진 머리카락. 당시 내 모습을 누가 본다면 반쯤은 정신 나간 여자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할 틈이 없었다.
보름 전. 아빠는 잦은 두통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외래진료를 받으러 가셨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뇌파검사를 받고 나오셔서 외래를 기다리시는 중에 갑자기 “나 어떻게, 나 어떻게.” 소리치며 바닥으로 주저앉으셨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CT촬영결과 뇌출혈이 발생했다고 했고,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섬망으로 팔다리를 몹시 휘저으셨기에 안전을 위해 아빠의 팔다리는 꽁꽁 묶였다. 곧 아빠의 팔다리는 시뻘겋게 멍들어갔다.
아빠는 다시 예전의 아빠로 돌아오실 수 있을까?
당시 내 머릿 속에는 반쪽의 희망과 반쪽의 절망이 들어앉아 있었다. 앞으로 아빠의 상태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신...일텐데... 나는 신을 잘 몰랐고, 이제야 신을 찾기엔 염치가 너무 없었다.
그나마 머리가 복잡할 때 외우던 소리가 떠올랐다.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어려운 이들의 소리를 무조건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는 쉬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