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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Nov 15. 2020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진리

빈(Wien)과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과 영화 <우먼 인 골드> 사이의 공통점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는 점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골랐는데 도시와 영화 모두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줬고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는 점에서 둘을 엮어서 이야기하기에는 딱인 듯하다.

 5년 전에 짧게 방문했던 빈은 가기 전에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크리스마스 마켓과 쇤부른 궁전, 오페라 극장 정도에 대해서만 기대하고 갔었는데 생각보다 오래된 전통을 가진, 아름다움을 보유한 도시였다. 이와 비슷하게 <우먼 인 골드>도 대충의 줄거리만 파악하고 보기 시작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훌륭한 영화였다. 우먼 인 골드는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돌아왔던 빈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내가 보고 왔던, 아니 훑고 왔던 빈은 진정한 빈이 아니었던 것이다.

직접 찍은 벨베데레 궁전과 영화에서 등장한 장면. 매우 아름다운 곳.


 영화 <우먼 인 골드>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는 오스트리아의 국민화가이자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를 즐겨 썼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어떤 그림이다. 그 그림은 바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으로, '키스', '유디트'와 함께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로 꼽힌다.

 클림트의 그림이 주요 소재이긴 하나 <우먼 인 골드>는 해당 그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거나, 그의 작품 세계를 말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한 사람이 나치에게 빼앗겼던 가족의 추억을 되찾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영화이다. 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나 과거의 아픔(일제 치하나 한국전쟁) 등을 기반으로 한 한국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억지 신파가 없어 보기에 부담이 없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은 지금은 미국에 정착했지만 원래는 오스트리아에 살던 유태인이다. 행복했던 그녀의 가족에게 예고도 없이 불행이 닥친 것은 오스트리아가 나치에게 함락되면서부터이다. 예술을 사랑했던 그녀의 가족들은 그들이 향유했던 그림, 보석, 악기 등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나치에게 속절없이 빼앗겼고 그녀는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연로한 부모님을 뒤로한 채 오스트리아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그녀는 오스트리아 땅을 다시 밟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를 유독 아껴주었던 숙모인 아델레의 초상화를 되찾기 위해 용기를 내어 오스트리아 땅을 다시 밟는다.

 그녀에게도 그렇지만 오스트리아에게도 그 그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환수를 해주면 불법적으로 뺏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그 그림이 오스트리아에서 전시되지 못하게 될 테니 말이다. 또한 그녀에게는 숙모의 초상화지만 오스트리아에게는 국민 화가의 작품이자 개인의 초상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역시나 숙모의 초상화를 쉬이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 또한 포기하지 않았고 나치에게 부당하게 빼앗긴 숙모의 초상화를 끝내 되찾았다. 영화는 두 시간이지만 그 모든 과정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영겁의 시간이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그동안 히틀러와 나치, 홀로코스트에 대해 너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매우 뜨거워졌다. 왜 오스트리아에는 그런 아픈 역사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왜 주변 나라에는 다 있는 그 흔적을 오스트리아에서만은 생각도 못했는지. 오스트리아가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서 그랬다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해본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볼 수 있는 클림트의 그림 Kiss

 <쉰들러 리스트>나 <안네의 일기>, <피아니스트>와 같이 당시 상황을 그린 작품들을 봤으면서도 그러한 상황이 유럽 전역에 퍼진 것이라고 사고를 확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일본에게 희생당한 국가가 우리나라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필리핀, 중국 등 많은 주변 국가들이 일본에게 침략과 약탈을 당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독일인이라고 생각하는 히틀러도 사실은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그 당시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인들보다 더 처참하게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는 그러한 과거를 인정하고 나치 금지법을 제정하는 한편 빈 시내에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건립했다. 잘츠부르크와 함께 다루려고 생각하고 있는 알프스 배경의 유명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또한 나치의 오스트리아 병합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빈에 가서 나는 궁전, 미술관, 성당, 크리스마스 마켓, 카페와 호텔 등 예쁘다는 곳만 다녀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어찌나 참으로 진리인지. 다음에 빈에 가게 된다면 꼭 추모비에 다녀와야겠다. 앞으로는 소수의 이기심 때문에 다수에게 상처가 되는 이런 비극은 더 이상 없길, 또 얼른 남은 이들의 상처가 아물기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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