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와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딱 5년 전 이맘때인 2015년 12월에 휴가차 스페인에 갔었다. 일정이 길지 않아서 많은 도시를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그중에서도 바르셀로나는 여타 유럽의 도시와는 구별되는 바르셀로나만의 매력이 있었다. 독특한 매력의 대부분의 지분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 쨍쨍한 날씨가 차지하는 듯하다. 도시 곳곳이 가우디의 독창적인 건축물로 가득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방문하는 데만도 며칠이 필요할 정도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최고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꼽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구엘 공원과 산 파우 병원도 좋았다. 어떻게 그렇게 유일무이하면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이 독창적일 수 있는지 감탄의 연속이었다.
제목만 봐도 다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티켓을 끊게 만드는 영화인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Bicky Christina Barcelona)>는 미국인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바르셀로나에 가서 만난 후안이라는 한 남자가 그들의 삶에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들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우디 앨런 감독의 다른 작품인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나 <로마 위드 러브(To Rome with Love)>도 참 재미있게 봤는데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도 내 취향을 저격하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유쾌한 블랙코미디도 좋지만, 각 배경이 되는 도시의 아름다움도 함께 담아내 미장센 그 자체만으로도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와 근교의 도시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랑에 대해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의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 완벽한 사랑의 모습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비키와 크리스티나는 낯선 도시에서 만난 후안이라는 화가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고,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진 크리스타나와 달리 보수적인 연애관에 약혼자까지 있는 비키는 이 일탈 때문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후안은 그 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두 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후안에게는 동네방네 시끄럽게 싸우고 헤어진 불안정한 전처, 마리아까지 있다. 열렬하게 사랑에 빠진 크리스티나와 후안은 함께 지내기로 하는데 결국 후안은 아프다는 마리아를 모른체할 수 없다며 마리아까지 데려오고, 이렇게 셋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던 중 크리스티나는 친구들을 만나 남자친구의 전처인 마리아한테 매력을 느끼고 키스를 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마도 정체모를 괴상한 한국어 제목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여기서 시작된 것 같다.) 앞어 말했듯이 정말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 "If you enjoyed it, would you say that you are a bisexual?"
(크리스티나) "I see no reason to label everything. I am me."
이 장면이 나에게는 꽤나 인상 깊어서 이번 글의 제목으로까지 쓰게 되었는데, 여자랑 키스한 게 좋았으면 너는 양성애자인거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그냥 나일뿐이고 굳이 모든 것을 규정할 필요는 없다는 그 말이 나의 머리를 강타했다. 양성애자냐 이성애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적어도 나는 예를 들어 독서모임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전까지는 나의 이름과 직업, 다니는 회사 등을 말하며 나를 소개했었다. 그런데 그런 단편적인 정보들보다는 적어도 독서모임에서는 내가 살면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혹은 하다못해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로 나를 소개하는 게 나를 표현하기에는 더 정확하지 않았을까? 어느 회사, 어느 부서에서 일한다는 것보다는 무엇을 좋아하고 주말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이야기하는 게 나를 더욱 잘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단순히 바르셀로나를 그리워하며 가우디의 작품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찾아본 이 영화로 나는 더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았다. 굳이 나를 어느 카테고리에 속하게 만들어서 나를 규정지을 필요가 없다. 나는 그냥 나이니까. I am me.
그런 의미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만큼 추앙받는 걸작은 아니지만 나의 취향에는 더 좋았고 나에게는 더 매력적이었던 산 파우 병원을 찍은 사진을 공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