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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Nov 22. 2020

모두가 좋아하는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파리(Paris)와 물랑루즈, 미드나잇 인 파리

 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가 어디일지 물어보면 누구나 자신 있게 대답할 만한 도시가 바로 파리가 아닐까. 이렇게 파리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파리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만,  <물랑루즈>와 <미드나잇 인 파리>, 이 두 영화면 다른 많은 영화들을 다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르세 미술관과 파리의 거리 어딘가


 <물랑루즈>를 본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깊게 남은 인상은 '새틴(니콜 키드먼) 미친 듯이 예쁘네'가 아닐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아니 왜 이렇게 예뻐요 언니? 의심할 나위 없이 <물랑루즈>를 찍었을 때가 니콜 키드먼 최고의 리즈 시절이었으리라. 벌써 개봉한 지 20년 가까이 된 <물랑루즈>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시각적으로도 매우 화려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수록곡들이 귀까지도 즐겁게 해 주는 훌륭한 영화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당연하게도 파리의 풍경이 떠오르는 것과 달리 사실 <물랑루즈>를 끝까지 봐도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영화에서 파리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나는 왜 <물랑루즈>를 보는 내내 파리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을까.


  빨간 풍차라는 뜻을 가진 물랑루즈, Moulin Rouge. 물론 파리 여행 때 들렀던 이 카바레(Cabaret)에서 공연을 관람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물랑루즈>가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파리의 낭만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티앙'과 '새틴'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영화를 관통하는 보헤미안의 Spirit. 보헤미안 정신이 뭔데? 보헤미안이란 프랑스인들이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많이 살던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했으며 영화의 배경이 되던 시대에 이르러서는 기존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예술가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두산백과)


 너무나도 순수한 '크리스티앙'은 보헤미안의 가치를 좇기 위해 파리로 떠나 온 영국 출신의 작가이다. 그가 최고로 여기는 가치는 단연코 사랑. 그는 '새틴'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안 반하는 사람이 있겠냐만) 열렬히 구애하고 또 구애한다. 실제로 '크리스티앙' 캐릭터는 영화 내내 너무 한결같이 순수한 모습만을 보여줘서 내 기준에서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에 반해 첫 등장부터 여자의 베스트 프렌드는 다이아몬드라고 외치는 '새틴'은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그녀는 카바레에서 쇼를 하는 배우가 아닌, 진정한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티앙'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도 '크리스티앙'을 따라 현실적인 선택이 아닌, 보헤미안(?) 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새틴'은 심순애처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사랑 때문에, 혹은 사랑 덕분에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둘이 서로 사랑을 확인했지만 결국은 전형적인 happily ever after로 끝나지 않았기에 더 길게 여운을 남긴 영화, <물랑루즈>. 파리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꼭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닐는지.


 <물랑루즈>에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전시회가 열렸던 화가인 툴루즈 로트렉이 등장해서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에 실존 인물이 등장하면 실존 인물의 모습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파리에서 활동했던 화가들과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엿보는 것도 파리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포인트들보다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나름의 깨달음이다.  

 파리의 거리를 배회하던 작가 ‘길’은 우연히 1920년대로 가게 되고 본인이 동경하던 작가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토론을 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본인이 항상 동경하던 시대의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시대의 예술가들은 또 다시 그 이전 시대를 동경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누구나 본인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가지면서 살아가더라는 것.

 역시나 정답은 없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해답을 찾을 뿐. 이 영화가 내게 준 나름의 깨달음이다.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낭만을 충분히 채워주면서도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끼라고 말해주는 <미드나잇 인 파리>. 현실이 팍팍할 때,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영화이다.

에펠탑의 낮과 밤



 파리는 단순히 크레페와 쇼핑의 도시로 남기에는 그보다 훨씬 가치가 큰 곳이다. 프랑스 시민혁명이 추구했던 평등과 자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 치열하게 예술을 고민하던 사람들. 누군가는 그렇게 이런 파리의 정신을 이어갈 것이기에 파리는 시간이 흘러도 자유와 평등, 사랑과 낭만,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추구했던 보헤미안과 예술가들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 감히 단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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