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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Nov 17. 2020

걷기,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는 길

f. 하정우의「걷는 사람」

 항상 바쁜 현대인들, 특히 한국인들에게 걷기는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1분 1초라도 아껴서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치스러운 시간이 참 좋다. 아마 작가도 어쩌면 사치스러울 수 있는 그 시간을 나보다 훨씬 좋아하는 듯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에게 몇 시간이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것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하루에 일정 시간(최소 하루의 1/3)을 회사에서 보내야만 하는 나 같은 직장인에게 몇 시간씩 걷는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걸 알기에. 작가처럼 몇 시간을 걸어서 영화사 사무실로 출근을 하거나,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린 지친 몸을 이끌고 몇 시간 걸어서 퇴근하는 것도 말이 쉽지 실천은 참 어렵다.    


 하지만 꼭 필요하지만 핑계대기 쉬운 분야라는 그의 말마따나 걷기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를 대자면 끝도 없는 것다. 결국 어떤 일에 시간을 낼지 말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렸다. 뭔가를 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나 스스로도 많이 대지만, 결국 그만큼 할 마음이 없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 것을 안다. '너무 바빠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라고 다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운동과 독서를 위한 시간을 낼 정도의 마음이나 열정이 없다는 뜻이다. 꼭 필요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들이 어찌 운동과 독서뿐이겠냐만은 그럼에도 걷기는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 건강도 지키면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그 시간은 다른 어떤 것이 주지 못하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고서 선뜻 내용을 예측하지 못했던 이 책은 그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걷기를 시작으로 파생되는 작가의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들을 읽으면서, 엄청 유려한 문체로 글을 쓰지 않더라도 담담하고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한다면 좋은 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이미지처럼 투박한 그의 글은 쉽게 읽히면서도 공감 가는 글귀가 많았다.


 특히, 장거리 걷기를 할 때에는 특히나 쉬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와 다음 생에도 많이 먹고 많이 걷는 쪽을 택하겠다는 결정.

 예전의 나는 항상 '남들은 운동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모든 걸 척척 해내는데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몸은 쉬어도 마음은 쉬지 못했던 것 같다. 몸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어도 뇌가 쉬지 못하면 피로 회복이 안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도 자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제는 안다. 걷기 위해서는 쉬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쉴 때 제대로 쉴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하는 데에도 노력을 하자. 그래야 다음 걷기를 위한 추진력을 얻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조금 연비가 떨어지고 덜 효율적이어도 많이 먹고 많이 걷는 인생을 살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좀 더 움직이는 게 나쁜 선택은 아니지 않은가.  


 이미 연기라는 한 분야에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남들에게 공감을 얻는 글까지 쓴 그는 덧붙여 그림과 연출에서도 그의 다재다능함을 뽐내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이 있는 그가 참 부러우면서도 그가 쌓아온 시간들을 보면 쉽게 이뤄지는 것은 없다는 그 진리를 한 번 더 깨닫는다.

 가끔은 이미 많은 것들을 이뤄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뭐했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그만큼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내가 부러워할 만큼의 어떤 것을 이뤄낸 것이다. 아직 내가 걸어갈 길은 끝나지  않았으며,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 진부한 말이지만 걷기는 그런 의미에서 인생과 닮았다. 목적지가 명확하고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어있다면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으리. 작가도 많은 시간을 매일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몸과 마음이 단단해진 게 아닐까.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all can do it!



[공감이 가는 글귀 몇 자락 남겨놓고 싶다]


p58.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일과 휴식을 어중간하게 뒤섞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휴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일이 바쁠 때 '나중에 몰아서 쉬어야지' 같은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지 않는 것.


p62. 나는 바퀴 달린 것이나 내 몸을 자동으로 옮겨놓는 탈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한 거리는 내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게 좋다.


p77. 장거리를 걸을 때는 지치기 쉽다. 판단력도 흐려진다. 그러므로 걷는 시간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쉬는 시간'이다. 평소보다 많이 걸을 때는 운동화 속의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가 발바닥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면 잘 참고 걸어왔던 그간의 시간도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쉬는 시간에는 지쳤다고 숨만 훅훅 몰아쉴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동화 속과 두 발의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다음 오십 분을 준비해야 한다. 지쳤다고 그냥 늘어진 채 목구멍에 물만 들이부으면 영락없이 탈이 난다. 누구도 쉬지 않고 계속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p115. 나도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지만 새벽까지 진탕 술을 마시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신과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결단이냐 하면 그건 아니고, 사실 나 같은 경우는 그냥 '졸려서'다.  

매일 틈만 나면 걸어서인지 나는 한없이 반갑고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도 자정 무렵이면 너무 졸리다. 더 있고 싶지만 "난 틀렸어..."라는 말을 남기고 귀가한다. 이러다 보니 '신데렐라'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p118.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걷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체중이 150킬로그램은 족히 넘었을 것 같다. 차태현 형은 보통 사람들 같으면 좀 덜 먹고 덜 걸을 텐데 너 참 특이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다음 생에도 많이 먹고 많이 걷는 쪽을 택하겠다.

세상의 이 무수한 맛있는 음식들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더 많이 먹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열심히 걸을 테다.


p201.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p223. 우리는 실패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타인의 평가가 내 기대에 털끝만큼도 못 미쳐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길게 갈 일'이라고. 그리고 끝내 어떤 식으로든 잘될 것이라고. 나는 아직 감독의 삶이라는 긴 도정의 초입에 서 있다. 중간 지점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넘어지거나 꽃다발을 받거나 하는 일들은 어쩌면 크게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일희일비 전전긍긍하며 휘둘리기보다는 우직하게 걸어서 끝끝내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에 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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