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 소속은 게임 회사 Finance Division 내 Accounting Department의 Tax Team.
2014년에 첫 회사를 입사한 후 회사에서 내가 속한 부서는 이직을 하더라도 소소하게 부서를 지칭하는 이름(팀, 실, 그룹 등)만 바뀌었을 뿐 재무팀, 재무그룹, Acconting Dept. 등 큰 변화가 없었다. 첫 회사에서 신입사원 부서 배치를 받을 때. 내가 입사 지원을 하면서 하고 싶어 했던 일과는 매우 다른 재무/회계부서에 배치가 되었는데 이 배치가 그 이후 내 인생에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상사라는 Trading Company에 지원하는 사람들 중에는 지원부서에 가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전 세계를 누비는 '상사맨'이 되고 싶어서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입사 동기들도 대부분이 그런 케이스였고, 나 역시도 그런 입사지원자 중 한 명이었다. 회계, 금융이나 인사 등은 상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가서도 할 수 있지만, 상사의 해외 영업은 상사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한 업무 형태이기 때문이다. 상사에 입사했으나 결국 해외영업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고 이직한 나는 여러 업계의 재무팀을 경험해 볼 기회만 가졌다.
상대 출신이 아니면 보통 경제든 경영이든 다 동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상대 출신에게는 경영학과와 경제학과는 매우 다른 전공이다. (내게 공대는 다 같은 공대인 것처럼) 그중에 나는 회계를 배우는 경영이 아니라 경제학과 출신이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취준이라는 것에 대해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경영학과 수업이나 회계 수업을 들을 생각도 전혀 못했고. 그렇기에 처음 재무부서에 배치되었을 당시의 나는 회계의 기본 중에 기본인 차대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회계를 기업의 언어라고 하는데 그 언어를 알아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회사에서 끊어준 인터넷 강의를 보며 공부도 하고 간단한 실무를 하면서 점차 회계 지식을 익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 회사도 직급 호칭이 통일되었지만 내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호칭 및 진급 체계가 '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임원' 이렇게 있었고 난 주임이었다. 신입사원 때는 책임을 져야 할 일도 많지 않고 회사에서 거는 기대도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연차가 찰수록 일도 많아지고 책임도 커진다. 나도 점점 연차가 쌓이고 맡은 일이 많아지고 어려워지면서, 신입사원 때 들었던 인터넷 강의와 실무 경험만 가지고 일하기에는 한계가 느껴졌다. 그리고 영어를 잘하든지, 엑셀을 잘하든지, 회계를 잘하든지, 보고서를 잘 쓰든지, 하다못해 오락부장이라도 되든지 뭐가 되었든 하나 잘하는 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특출 난 것 없이 뭐든 다 애매하게 하는 것 같은 데다 회사 생활도 너무 힘들었고, 회계사들이랑 말도 안 통한다고 느끼던 즈음에 입사 동기 중에 한 명이 같이 AICPA를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뭐? 일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공부까지 하라고? 그럼 난 언제 쉬고 언제 놀아?ㅜㅜ"
처음에는 위와 같이 생각했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오히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드니까 이거라도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직장인이 AICPA 합격하는데 2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그동안은 딴생각(=퇴사 생각) 안 하고 오히려 그냥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다.아침에는회사에 일찍 가서 일 시작 전에 공부하고, 점심시간에도 도시락 먹고 공부, 퇴근하고서는 집 근처 독서실 가서 공부.평일에는 하루 2시간, 주말에는 하루 6시간. 이렇게 일주일에 공부할 시간을 정해놓고 평일에 못 채우면 주말에 더 해서 채우는 방식으로 했다. 일주일에 최소 2일은 밤 11~12시까지 야근을 했었기 때문에 평일 시간을 채우기 쉽지 않아 주말에 더 채울 수밖에 없었다. 시작할 때부터 무조건 2년 안에 끝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 이상을 바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 결국 목표했던 2년 만에 AICAP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에서 정식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까지 얻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내가 미국 가서 살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할까 싶어서 자격 취득까지는 안 했다.
전 회사를 좋아했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결국 나를 위해서는 이직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고,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했던 회계나 세무 업무라는 게 어떤 실적을 내세울 수 있는 프로젝트 성 업무를 하는 성격의 직군과 다르게 그런 식으로 정리해서 보여줄 수 있는 성격이 아닌 업무다. 매월 결산을 제대로 했고 신고도 오류 없이 했다. 이런 일들을 했지만 이력서에 이렇게만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류 없이 하는 건 기본이고, 그 이상의 알파가 요구되는 직군이니. 2018년 12월에 마지막 시험에 합격했고, 2020년 3월에 이직했으니 약 1년 정도 이직을 고민하고 또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기에 연차도 높아졌고(6년 차) 또 상사가 실무를 넘기는 타입이라 회사의 굵직한 투자 건들의 세무 검토를 내가 맡아했다.
일하는 틈틈이 이력서를 냈는데 별도 결산, 연결 결산 그리고 세무까지 거치면서 회계 및 세무팀에서 거쳐야 하는 업무들을 웬만큼 다 해봤고, AICPA도 합격했고, 굵직한 투자 검토 경험까지 더해져 서류는 매번 합격했다. 물론 첫 직장이 S사의 큰 회사라는 것도 큰 작용을 했겠지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것(관련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음)은 이직 전 했던 굵직한 세무 검토들, 그리고 시스템이나 업무 방식의 개선 아이디어를 냈던 사례들이다. 면접을 보러 가면 항상 AICPA 관련된 질문을 받았었는데 '어떤 도움이 됐는지',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병행을 했는지' 등 회계 지식이 있는지 자체가 주안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자격증 그 자체보다는 그렇게 야근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시험공부를 했고 끝까지 마쳤다는 성실성을 인정받은 것 같다. 결론적으로 커리어를 계발하고 쌓을 때, 자격증은 필수가 아니라 실무 경험이다. 보통 일머리는 따로 있다는 말로 표현을 하는데 학벌이나 머리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하지는 않는다. 자격증과 지식이 있어도 실무에 쓰지 못하면 의미가 없고, 결국에는 자격증이 아니라 실력으로 본인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