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예술에 '광기'를 잃는 것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옥변」

by 영찬

나생문에 이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지옥변」을 읽었다

나는 「지옥변」을 다 읽고 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다.

뭔가 서사는 훌륭한데, 그다음이 없다. 어디 둘레길을 걸으면서 바람도 느끼고 경치도 구경하려고 했는데 길이 끊기면서 '이게 끝이야?' 하는 느낌이었다.


내용은 '지옥변'이라는 병풍에 얽힌 이야기이다.



원숭이

작중 원숭이는 요시히데의 별명이다. 별명은 별개로 진짜 원숭이도 등장한다. 당연하겠지만 원숭이는 요시히데의 분신이다.

인간인 요시히데가 가진 이미지로 인해 보여줄 수 없는 모습들이나 행동들을 동물인 원숭이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후반부에서 불타는 가마 속으로 원숭이가 뛰어들어 요시히데의 딸과 함께 불타 죽는다. 아마 마지막으로 남은 요시히데의 인격의 죽음을 비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광기

영주는 요시히데에게 '지옥'을 그려오면 딸을 돌려주겠다 제안했다.

문제는 요시히데는 눈으로 본 것만을 그리는 화가였는데, 그 과정에서 하인들을 고문하고 가마에 탄 딸이 불에 타 죽고 있는데도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며 희열을 느낀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공포를 넘은 경외심에서 비롯된 희열을 느낀다.

유명 미술의 거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은은히 스며든 광기를 느낄 수 있는데, 그 느낌을 요시히데를 보며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작가 또한 '비상한 작품을 완성하기 의해선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끝?

지옥변을 완성한 요시히데는 다음날 목매달아 자살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끝. 허무하게도

나는 류노스케의 작품은 나생문밖에 안 읽어봐서 그의 작품이 전체적으로 이런 침침한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생문」과는 달리 「지옥변」은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


예술가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쳐야만 예술을 할 수 있다?

광기 어린 예술은 숭고하다?

예술가의 본분을 다하는 요시히데는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뒷부분 스토리가 없는 것이 좀 아쉽다.

정말 예술에 대한 예찬을 하고 싶었던 거라면, 조금 납득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몰라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조차 의도된 예술이라고 한다면 인정이다.


가 류노스케 또한 젊은 나이에 자살을 선택했는데, 요시히데 또한 류노스케의 분신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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