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블록 조립하기

너구리 블록 조립하고 후기 써달래서 쓴 후기

by 영찬

1단계
기반이 되는 받침대에서부터 모양대로 쌓아 올린다.

2단계
계속 쌓아 올린다.

3단계
팬케이크를 쌓아 올리듯 쌓아 올린다.

4단계
아 이게 너구리 앞다리구나 대충 목표의 윤곽이 보인다. 계속 쌓아 올렸다.

5단계
갑자기 어려워진다. 둥그런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조금은 깎아진 블록을 밑에서 위로고정시켜야 한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할만한 수준이다. 한고비를 넘기고 나니 재미가 들린다.
라고 생각했었다.

6단계
조금은 아슬아슬했던 기반을 딛고 층계참을 놔준 기분이다. 검은색 블록을 위로 쌓아 눈동자를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8단계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뭔가 이상했다. 왼쪽눈 오른쪽눈 각각 3개씩 6개의 검은 블록이 필요한데 5개는 정상이지만 1개의 블록이 철(凸뻑큐 아니고 요철凹凸할 때 철凸)이 없다… 부품을 잃어버린 건가? 아니다. 역시 중국산이다. 일단 어느 정도 조립하고 나중에 본드로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9단계
이런..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흰색 ㄱ자 블록이 3d프린터에서 인쇄가 덜된 듯 구멍이 송송 뚫려있어 요철에 맞춰 고정도 안될뿐더러 너구리얼굴에 구멍이 뚫렸다. 내가 이블록을 안 쌓았으면 안 쌓았지 이런 건 절대 그냥은 못본다.

다시 6단계
눈동자도 다시 조립할 겸 블록을 어느 정도 큼지막하게 떼어내었다..
과정을 역행하니까 땀이 났다. 일단 선풍기를 내 자리 가까이 가져오자.

다시 3단계
구멍이 나서 미관상 안 좋은 부품을 안 보이는 곳에 배치하려고 안쪽을 좀 더 뜯어냈다.
처음부터 블록 개수와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조립했더라면..
좀 더 체계적으로 생각하며 조립했더라면..
어쩌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쉽게 쌓았던 3단계도 돌아보니 어지러웠다. 선풍기가 아니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6단계
어느 정도 해결했다. 눈동자블록문제는 본드로 붙일까 하다가 어떤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 철(凸) 이 없는 블록을 가장 밑에다 쌓고 고정이 되지 않은 채로 검정블록 2개를 올렸다.

10단계
내 예상이 맞았다. 고정이 되지 않는 눈동자블록들은 추후에 눈꺼풀처럼 커다란 블록으로 한번 더 고정될 예정이었기에 한 개 정도는 철이 없어도 무방했다.

15단계
진땀을 뺐더니 그 뒤론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어느덧 다 와가는 건지 모아둔 블록더미에서 내가 원하는 블록을 찾기도 훨씬 쉬워졌다.

20단계
흰색블록을 툭 튀어나오도록 조립했다. 알고 보니 구름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너무 여유로웠다.

27단계


나는 90분에 걸쳐 이 너구리블록을 완성시켰다. 퇴근하고 바로조립한 거라 매우 피곤했지만, 짧은 순간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시작하기 전 나의 피로도는 어느 정도인지, 내가 가진 블록들의 개수는 맞는지, 하자는 없는지 체크하는 일처럼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스펙을 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기반을 다지는 과정은 매우 쉽고 매우 중요했지만 깨닫지 못했다. 어느 정도 쌓아 올린 뒤, 잘못된 기반을 수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내가 지금 눈동자를 맞추는 건지 꼬리를 만드는 건지 귀를 만드는 건지.. 내가 지금 하는 작업이 어떤 작업인지 무슨 과정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무의식적으로 실천한 행동이었다.

무언가를 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90분에 걸쳐 이 너구리 블록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경험을 쌓는 것과 추억을 쌓는 것. 지식을 쌓는 것과 커리어를 쌓는 것 그리고 실력을 쌓는 것과 신뢰를 쌓는 것은 90분 만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우리는 이것들을 인생전반에 걸쳐 차근차근 올려야 할 텐데 나는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를 되묻고 싶다.

너구리는 자신을 만들어준 보답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제부터 잘하면 되지!




+추가)

이걸 왜 써달라고 했나 싶었는데 뭐 학교에서 하는 도박문제예방활동단 활동 중에 하나라카더라.


"도박 대신 건전한 취미를 갖자!!"

라고 말해달라고 했다.


전 하스스톤 유저로서 적절하고 건전한 gambling은 삶의 재미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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