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비문학

「언어의 정원」 &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by 영찬

언제부턴가 장마시즌이 오면 어떤 곳은 침수가 됐느니 피해가 심각하다며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곳 주변은 비에 의한 피해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 가끔 소나기가 오면 양산을 우산 삼아 쓰고 다니면 되는 정도이다.

그래도 혹시 갑자기 가을장마가 덮칠까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보며 집을 나선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신카이마코토의「언어의 정원」이라는 작품과 마유즈키 준의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이라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 두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는데, 최근에 원작소설과 만화책을 다시 보며 비슷하면서 다른 이 두 작품을 같이 비교 감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공통된 소재들 비, 사랑 그리고 문학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내 맘대로 정리해 본다.




일반적으로 비는 슬픔과 관련된 비유로 쓰이는데, 두 작품에서 비는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함과 동시에 때로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도 하며 인물의 감정을 빗대어 표현하는 장치로서 역할한다.


「언어의 정원」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타카오와 유키노는 공원에서 만난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는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한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두 사람은 만날 수 없다. 이처럼 비는 두 사람을 이어줌과 동시에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다.

신주쿠 공원에서의 첫만남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서 비는 좀 더 추상적인데, 첫사랑의 싱숭생숭함과 슬픔, 시련, 상처와 치유, 편안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불안정하고 격렬한 청춘의 감정에 대한 은유로 상징된다. 어쩔 때는 피하고 싶고, 어쩔 때는 흠뻑 맞고 싶고, 어쩔 때는 그치길 바라지만 이대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타치바나씨는 항상 비오는 날에 불쑥 나타나더라?"


눈은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포근하고 차분한 성격을 지닌 장치이다. 두 작품 모두 비가 오는 여름을 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덕에 작품 구성에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의 정원」 결말에서 눈이 내리는 공원은 격정적이었던 클라이맥스를 지나 정리된 감정과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타카오는 유키노가 보낸 편지를 읽고 그녀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서는 작품 클라이맥스에 눈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 해의 첫눈은 조용하고 포근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의 꿈을 가로막음을 아는 콘도는 그녀에게 현실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 순간 눈이 비로 변하는 연출은 한 청춘의 눈물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젊음이란 때로는 난폭하고 흉포한 법이야. 그래도 그때 느끼는 감정은 언젠가 둘도 없이 소중한 자산이 되지. 지금은 잘 모르더라도

작품에서 눈을 활용하는 법이 다른 것은 두 작품에서 다루는 '사랑'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


두 작품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연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타카오와 유키노는 각각 15살, 27살

타치바나와 콘도는 각각 17살, 45살

종종 이런 나이차가 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보통의 연애라고 하는 나이차이는 아닐 것이다. 이에 선입견을 가지고 혐오감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는데, 그것이야 말로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전히 잘못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차이가 많은 로맨스이기 때문에 단순히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15살의 나는 그저 어린애일 뿐일것이다." / "27살의 나는 15살의 나보다 조금도 현명하지 않아."

작품에서 15살의 타카오는 가정불화 속에서 자란 탓에 굉장히 어른스럽게 묘사된다. 동시에 외로움과 싸우며 자신의 세계에 갇힌 어리숙한 고등학생이다.

27살의 유키노는 과거 안 좋은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미각도 잃어버릴 만큼 상처받은 어른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타카오와는 달리, 과거의 상처에 무력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공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나이, 지위를 떠나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타카오에게 유키노는 자신의 꿈을 응원하는 유일한 어른이 되었고 유키노에게 타카오는 사회에서 순수하게 자신을 인정해 주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공원에서의 설렘도 잠시, 미성년자와 성인, 학생과 선생님이라는 입장에서 사랑은 그 자체로 현실의 벽이 되어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타카오의 울부짖음에 사랑의 상실과는 별개로 자신의 꿈을 부정당하는듯한 분노 또한 담겨있다.

내가 아무리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동경한들 그 꿈에 도달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이룰 수 없을 거라는 걸 당신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의 말대로 감정에 솔직했던 쪽은 타카오였고 유키노는 자기 얘기 하나 없이 남얘기만 캐묻고 솔직하고 소중한 얘기 하나 하지 못했지만, 그런 유키노가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갔을 때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맞서 현실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언어의 정원」에서 사랑은 서로를 통해 안식과 용기를 얻고 성장하는 것이다.




17살의 타치바나는 학교에서 육상부 에이스였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육상부활동을 못하게 된 여고생.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기고 표현하려 한다.

충동적인 사랑은 열정적이고 진실하지만, 지속적임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은 깊은 이유보다 외로움과 동경의 감정과 가깝다.


45살의 콘도는 어릴 적 소설가의 꿈을 미뤄둔 채 지금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장을 맡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이다.

잘못하면 영포티엔딩이 날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현실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의식하고 깊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랑은 열정보다 상대방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책임감에 중점을 둔다. 그의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어떤 사랑이 좋은 사랑이고 어떤 사랑이 나쁜 사랑인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를 잃어버린 콘도에게 타치바나는 지난날의 꿈과 열정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가 다시 펜을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자신이 설 곳을 잃어버린 타치바나에게 콘도는 편히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 그녀가 비를 피하게 해 주었다.


"내 무심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타치바나의 주변사람들은 점점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작품 후반부 제비에 대한 비유는

둥지에 홀로 남아 하늘만 바라보는 제비처럼, 꿈을 동경하지만 지친 것인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인지 하늘만 바라보는 타치바나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연출

포기한 꿈은 미련으로 남음을 아는 콘도는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며 그녀가 다시 한번 뛸 수 있도록 그녀에게 우산 대신 양산을 선물해주며 앞길을 축복해준다.


"만약.. 만약 다 함께 날아가지 못했으면 그 제비는 어떻게 됐을까요?"

"날아가지 못했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었을지도 몰라.
다른 제비들에 대해서도 다 잊고...
하지만 그 제비가 날아가지 않은 이유가 단지 날기를 포기한 것 때문이었다면, 분명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겠지. 쭉... 영원히..."

제목에서 말하듯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서 사랑은 을 꾸는 사람들의 성장과정이다.


문학


두 작품모두 작품 내에서 문학작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스토리가 전개된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유키노가 고전문학교사로 등장해 만엽집의 단가를 읊고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서는 작품 자체가 순문학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문학적, 시적인 표현이 많이 나온다. 작중 콘도가 순문학을 좋아해 「라쇼몽」, 「도련님」, 「금각사」, 「설녀 」등등 많은 문학작품이 언급된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면
그대를 붙잡으련만

우렛소리 희미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 마라 하시면

「언어의 정원」하면 가장 유명한 단가.

~내리면, ~하련만, ~하시면 같은

수동적인 태도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애잔함이 느껴지게 한다.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너무나도 경박한 짓이다.
그래도 지금 그녀가 안고 있는 불안을 떨치게 해주고 싶다. 위안을 주고 싶다.
설령 내게 그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이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도 경박한 짓이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서 콘도의 레이션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문학작품에 가깝다.

특히 만화를 보다 보면 둘이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이런 문학적인 표현들이 어떤 금기시되는 사랑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만화를 리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애정하는 만큼 글을 쓰는 시간도 좀 많이 걸린 것 같다.

나도 비 오는 날 포스팅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비 오면 움직이기가 싫어져서 미루고 미루다 어느새 가을이 돼버렸다.


「언어의 정원」은 짧아서 뭔가 글로 쓰기에 부족했고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너무 길어서 더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좀 아쉬운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나중에 필 꽂혀 재탕할 때쯤 다시 수정보완하든 해야겠다.


넘어지면 어떡해야 하냐고?
그야 일어서면 되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구리 블록 조립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