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봉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로맨틱 홀리데이>, 원제는 The Holiday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죠! 혹시 다들 보셨나요? 먼저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볼게요.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예고편 제작회사 사장인 아만다(카메론 디아즈)는 좋은 집에 화려한 외모, 커리어까지 모두 갖춘 골드 미스입니다. 그에게 유일한 문제는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연애 문제입니다. 영국에서 웨딩 컬럼니스트로 일하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는 눈이 많이 오는 시골의 작은 오두막에 살고있어요. 아이리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남자친구라 여겼던 사람이 자신 앞에서 결혼 발표를 하면서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지게 됩니다.
두 여자는 인터넷 상에서 일정 기간동안 집을 바꿔서 생활해보는 사이트를 발견하고, 각자의 삶에서 잠시 로그아웃해서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겨 크리스마스 연휴동안 우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죠. 그런데 각각 정반대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아만다는 아이리스의 오빠인 그레엄(쥬 드로),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친구인 작곡가 마일스(잭 블랙)을 만나 특별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곱씹어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한 작품은 바로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1953~)의 모노크롬 시리즈 <도시에 사는 사람들 Men in the City>(1980-81)입니다. 이 작품은 화려한 로스앤젤레스의 삶을 보여주는 아만다의 대저택 계단 옆에 걸려 있었어요. 아만다가 성공한 도시 여자로, 그 반대 급부로 아이리스는 영국의 작은 시골집에 사는 여자로 영화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만다의 집에 걸린 이 작품은, 아만다의 취향을 보여주기에 꽤 적절한 작품인 듯 합니다.
로버트 롱고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 시리즈는 추상미술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경향인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이라고도 하는데요. 이는 사진기가 가지는 매끄럽고 정교한 기술을 기법적으로 활용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일컫습니다. 마치 인공 조명 아래에서 촬영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인데요. 광고에서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해당 제품을 살 것을 설득하기 위해 광택을 극대화한 신기술을 미술에 적용시킨 거예요. 미국의 도시문화 속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죠.
사진기의 발명으로 얼마나 똑같이 그려내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큰 크기로 확대해서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이 그려낸 이러한 작품들은 아무런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오히려 더 부각시킵니다. 마치 흑백 영화의 스틸 사진을 그린 것처럼 정확하게 세부 디테일을 묘사한 이 작품은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주관적 판단을 최소화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합니다. 어떤 사람을 일상에서 세밀하게 관찰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롱고의 작품은 매우 사실적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롱고가 그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넥타이나 스커트가 휘날리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이는 바쁜 현대인들의 속도감 있는 움직임을 나타내면서도, 또한 지독한 경쟁에 지쳐 절규하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로버트 롱고는 이 시리즈의 작품으로 보테가 베네타의 2010년 광고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