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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Jul 10. 2020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미드나잇 인 파리> 포스터, 빈센트 반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우디 앨런 감독 좋아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대사와 정교한 서사를 담은 영화들로 많은 팬을 가진 감독이예요.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오늘은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영화 포스터부터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데요. 이 포스터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별이 빛나는 밤>(1889)를 이용해서 제작한 것입니다.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의 대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고흐는 선명하고 강렬한 원색을 이용해 심리적 내면세계를 표출하고, 굵은 터치를 이용해 격정적인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회화 세계를 구축했어요. <별이 빛나는 밤>은 동료 작가인 고갱과 다툰 뒤 귀를 자르고 생레미의 요양원에 갔을 때 그린 그림으로, 비연속적이고 동적인 붓터치가 인상적인데요. 그가 본 자연에 대한 주관적인 표현이 드러나고, 꿈틀거리는 선은 별의 광채를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남자주인공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잘 어울리는 포스터가 아닐까 싶네요.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해드릴게요.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현재는 소설을 집필 중인 길 펜더(오언 윌슨)과 그의 약혼녀 이네즈(레이철 맥아담스)가 약혼녀의 아버지의 사업확장을 위한 파리 출장에 따라가서 생기는 일들을 담고 있어요. 길 펜더는 1920년대 파리의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성에 흠뻑 매료되어 있는데요. 밤에 혼자 호텔로 돌아가는 길 자정에 알 수 없는 자동차에 오르게 되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선망하던 1920년대 파리로 말이죠. 자동차에서 내려 들어간 술집에서 그는 젤다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Zelda and Scott Fitzgerald), 콜 포터(Cole Porter),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등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에 등장한 1920년대 인물들을 살펴볼까요. 실제 인물과 얼마나 닮게 묘사했는지 비교해서 보시면 더 흥미롭답니다. 젤다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는 알리슨 필과 톰 히들스턴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코리 스톨이, 살바도르 달리는 애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했는데요, 고증에 신경을 많이 쓴듯한 디테일이 느껴지는 연출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문인과 화가, 음악가까지 다양한 예술가가 등장하는데요. 이들의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어요. 스콧 피츠제럴드는 일전에 미술랭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위대한 개츠비>를,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쓴 소설가죠.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적 그림을 그리는 화가예요. 



젤다와 스콧 피츠제럴드
살바도르 달리


영화 뒷부분에서 길 펜더는 자신이 집필 중인 소설을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스타인은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으로, 1903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많은 유럽의 예술가들과 교류했죠. 매주 그녀의 아파트에서 열었던 살롱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고 해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에게 있어서 스타인의 후원과 우정은 이후의 성공에 큰 자양분이 되었는데요. 그가 그린 스타인의 초상화는 1905년에 제작이 시작되어 1906년 완성된 작품이예요. 피카소의 장미빛 시대(Rose Period)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어요. (피카소의 화풍은 크게 청색시대 1901-4, 장미빛 시대 1904-6, 입체주의 시대 1908-15로 구분됩니다.) 이 작품에서 피카소는 대상의 형태를 단순한 덩어리로 표현했는데요, 얼굴은 마치 마스크처럼 표현했고 눈꺼풀은 매우 무겁게 처리했어요. 당시 피카소가 보았던 이베리아 반도의 조각상들과 닮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당시 피카소와 마티스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의식을 불태웠다고 하는데요. 스타인의 집 벽난로 위에 마티스의 그림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자존심이 상해서 피카소가 더 멋진 그림을 그려서 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 Gertrude Stein> oil on canvas 100 x 81.3cm 1905–6               


길 펜더의 마음까지 빼앗아간 아드리아나(마리온 코티아르)는 모딜리아니, 마티스, 피카소 등과 사귄 1920년대 뮤즈로 묘사됩니다. 스타인의 아파트에서 만난 피카소와 스타인은 그의 작품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스타인은 “이건 아드리아나가 아니다. 넘쳐흐르는 성적 암시에 폭발할 듯한 육욕, 예쁘지만 미묘한 아름다움과 은근한 섹시함이 없다”고 말하고,  피카소는 “아드리아나를 정확히 담고 있다”고 말해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주관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작품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예요. 영화 상에서 등장하는 작품은 영화만을 위해 제작된 가짜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아마도 1927년에 제작한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Bathers)> 시리즈를 기반으로 창작을 한 것 같아요. 피카소는 엄청난 여성편력 으로도 유명한데요. 올가 호흘로바라는 여성과 결혼한 상태였음에도, 1927년 마리 테레즈 월터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1928년 피카소와 그의 가족은 비밀리에 마리 테레즈도 동반하여서 브리타니 지역의 해변 휴양도시로 휴가를 떠났는데요. 그때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 시리즈를 그렸어요. 당시 아내인 올가는 회색 톤으로 뾰족하게 그린 반면, 마리 테레즈의 모습은 날렵하고 에로틱한 자세로 그렸다고 하네요.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의 작품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영화에서만 특별히 제작된 가짜 작품이다              
Pablo Picasso <공과 노는 여인들 (Baigneuses au ballon)> oil on canvas 21.9x35.1cm 1928                     


영화는 파리의 아름다움과 멋진 예술가들을 칭송하고 있지만,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은 아무리 과거의 멋진 시대가 그립다 하더라도 그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야말로 새로운 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말자는 것 같습니다.  길 펜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p.s.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흘러나오는 OST도 놓치지 마세요. 재즈광인 우디앨런의 취향이 묻어나는 감미로운 멜로디의 <Si Tu Vois Ma Mère> <Let’s Do It>은 정말 명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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