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드라마 중에서 10~20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 중 하나인 <가십걸>. Xoxo, 라는 맺음말로 매 에피소드를 마무리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 뉴욕의 부촌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패션과 미술 작품에 관한 세련된 취향을 감상하는 것도 이 드라마의 큰 매력이지요! 이 작품의 두 여성 주인공 세레나(블레이크 라이블리)와 블레어(레이튼 미스터)는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며,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아이콘으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적인 고급 취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집 내부의 인테리어도 주목할 만 한데요, 가구나 조명, 카페트 이외에도 키키 스미스, 라이언 맥긴리 등 수많은 현대미술, 동시대미술 작품들이 벽에 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단숨에 빼앗아 간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작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Michael Elmgreen b.1961, Ingar Dragset b.1968)의 작품 <PRADA Marfa>(2005)입니다. 세레나와 릴리가 살고 있는 집 출입구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어 여러 회차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저게 뭔가?”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합니다. PRADA라는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는 한데, 그 아래에 익숙치 않는 문구들이 추가적으로 삽입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MARFA 1837 MI ->" 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Prada Marfa>(2005)는 텍사스에 있는 마파(Marfa)라는 도시에 영구 설치된 조각 설치 예술 작품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고속도로에서 내려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실제로 쇼핑을 할 수는 없는 프라다의 부띠끄였습니다. 2005년 10월 1일부터 마파에는 단독으로 자그마한 건물이 설치 작품으로 세워졌는데요, 듀오 작가는 이 작품을 “팝 건축 대지미술 프로젝트(pop architectural land art project)”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현대미술의 여러 사조를 한데 뒤 섞은 형태로 이름을 붙인 것을 알 수 있죠.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을 사용해 반문명적인 시도를 펼쳤던 대지미술과, 대중매체와 광고 등의 시각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미술의 영역에 수용하고자 했던 팝아트의 경향을 조합하였습니다. MARFA 1837 MI 는 마파에 있는 이 작품까지 1837 마일 떨어져있음 나타내는 표지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현 방식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종류로 패러디 되었는데요, 특히 방을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들어졌어요. 이 장소에서 특정 도시, 예를 들어, 뉴욕까지 몇 마일, 파리까지 몇 마일 이런식으로 이 작품을 패러디한 소품이 우후죽순 등장했습니다.
12만 달러(한화 1억 5천만원)의 건설 비용을 들여 만든 <Prada Marfa>는, 럭셔리 브랜드인 프라다의 실제 매장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디자인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설치물의 문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아 실제로 사람이 건물 안에 들어가거나 상품을 구매할 수는 없답니다. 건물 앞의 커다란 두개의 창문 앞에는 실제 프라다의 2005년 가을/겨울 컬렉션 제품들을 진열해 놓아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했어요. 프라다에서 이 작품에 직접 제품을 협찬해 주었습니다.(프라다는 2001년부터 엘름그린&드라그셋과 협업을 해왔어요.) 제작 비용은 뉴욕을 기반으로 한 Art Production Fund(APF)의 후원으로, 텍사스의 Marfa 에서 이 작품을 구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고 수많은 뉴스와 기사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공기물을 파손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창문을 모두 부수고, 물건을 모두 훔쳐갔으며, 벽에는 그래피티로 가득했죠. 작가는 다시 이곳에 와서 건물을 보수하였으며, 이번에는 도난방지 장치를 철저하게 하고, 두꺼운 창문을 설치했으며, 진열된 가방은 모두 바닥이 없고, 신발은 모두 오른쪽 발만 있도록 했습니다. 훔쳐가도 쓸모가 없도록 말이죠. 90번 고속도로에 더 이상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덕분에 매년 수천명의 방문객이 오는 장소가 되었답니다. 2012년에는 가수 비욘세가 이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 텀블러와 인스타그램에 게재하기도 했어요.
이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데요. 그러나 이 작품이 스스로 비판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가치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매장처럼 만들어진 가짜 명품 매장을 하나의 조각처럼 만들어서 설치하다니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 아닌가요? <가십걸>이라는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화려함, 소비욕을 부추기는 멋진 배우들의 스타일링 등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작품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