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urgundy Jul 10. 2020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2000년대 초반 미국 뿐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이 드라마는 뉴욕에 거주하는 4명의 당당한 여성과 그들의 사랑, 우정, 일에 관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20~30대 여성들에게 특히나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섹스 컬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 홍보회사 대표 사만다 존스(킴 캐트럴), 갤러리스트 샬롯 요크(크리스틴 데이비스), 변호사 미란다 홉스(신시아 닉슨) 네 명의 주인공의 싱글 라이프는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의 네 주인공들은 성적으로도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드러내며, 남성을 위한 것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의 성 생활에 관한 관점을 잘 드러냈습니다. 극중 캐릭터들 모두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전문직 여성들이기에 이들의 패션 역시 큰 관심을 얻었죠. 말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골드 미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캐리가 애정하던 명품 구두 브랜드인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역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총 6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오랜 기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 드라마는 2008년과 2010년에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그만큼 캐릭터가 입체적이며 명확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겠죠?   


시즌 6의 12번째 에피소드는 “Carrie Meets The Russian!”이라는 제목으로 캐리와 샬롯이 함께 한 갤러리에 걸어 들어가는 모습에서 극이 시작됩니다. 갤러리 안에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고 있고, 갤러리스트인 샬롯과 달리 캐리는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코멘트를 하며 조용한 퍼포먼스 장에서 웃음을 터뜨립니다. 캐리와 샬롯은 이곳 전시장에서 알렉산드르 페트로프스키라는 유명한 추상미술 화가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살펴보고자하는 것은 이들이 보고 있는 퍼포먼스 작품이예요! 실제 이 드라마는 2003년에 방영되었는데, 이 작품은 명백히 퍼포먼스 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b.1946)의 작품 <바다가 보이는 집(The House with an Ocean View)>(2002)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성장한 여성 작가로, 내전과 분쟁으로 얼룩진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에 폭력, 죽음, 관계에 관한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답니다.  2002년 11월 15일부터 12일 동안 작가는 뉴욕의 숀 캘리 갤러리(Sean Kelly Gallery)에서 생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바닥에서 180cm 높이에 세 개의 부스가 만들어져 있었는데요, 왼쪽에는 샤워를 하고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마련된 화장실, 가운데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누워서 잘 수 있는 침대가 설치돼 있었어요. 12일 동안 작가는 먹거나 말할 수 없었고, 오직 물만 마셨다고 해요. 독서나 글쓰기 같은 정신적인 활동도 금했죠. 그 시간 내내 가운데 부스에 놓인 메트로놈은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전시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때 삶의 시간은 작품에서의 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시장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부스에서 연결된 사다리를 이용해야하는데, 그 사다리의 계단은 식칼날로 이루어져 있어 실제 작가가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제작됐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작가가 곧 벽에 걸린 움직이는 그림(tableau vivant)처럼 보이게 했답니다. 극한 상황에 처해진 작가는 오직 자기 자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은 12일 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었고(public living installation), 작가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꿈꾸거나 혹은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 <바다가 보이는 집  The House with the Ocean View> 2002/2003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흘러가지만, 그것을 매순간 인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많은 미술 작가들은 시간의 체험을 조정하여 그것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실제 시간(real time)과 동일한 작품의 시간을 관망하면서 우리는 무심히 흘러가는 삶의 속도에 관해 재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집니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 만들어 둔 단식과 감금이라는 장치를 통해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에 두고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몸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노출시킴으로써 관객과 더욱 강렬하게 교감을 나누게 됩니다. 작가는 개인의 몸에 부과되는 고통으로 잡념과 증오, 분노를 비워내고, 가장 단순한 인간의 삶으로 돌아가는 비움의 미학을 몸소 보여줍니다.  


드라마에서는 50대의 멋진 화가 아저씨(!)와 캐리나 만나게 되는 장소로 이 갤러리와 작품이 활용되었지만, 이 작품의 원래 의미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 션켈리갤러리 전시 내용 보기

https://www.skny.com/exhibitions/marina-abramovic?view=slider



매거진의 이전글 [공공미술] 청계천과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