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urgundy Jul 10. 2020

[영화] <007 스카이폴>(2012)와 윌리엄 터너


007 시리즈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보시지 않은 분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샘 멘데스 감독의 2012년 작품 <007 스카이폴(Skyfall)>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007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혹자는 007 시리즈 중 단연 최고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작품에 관해 말씀드릴게요.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 앉아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젊은 정보원 Q(벤 위쇼)와 접선하게 되는데요. 이 둘은 한 작품을 응시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눕니다. 이 둘이 보고 있는 작품은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 윌리엄 터너(J.M.W. Turner)의 <전함 테메레르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1838)입니다. Q는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커다란 배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멜랑콜리를 느낀다고 말하며 나이 많은 본드를 향해 비아냥거리고, 본드는 젊음이 꼭 혁신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 작품에서도 이 둘의 대화에서처럼 과거와 미래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 1838


윌리엄 터너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의 노동계급의 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발을 제조하며, 이발사로 일했어요. 그는 11살에 처음으로 작업 의뢰를 받았고, 14살에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해 수채화를 배우고,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어요. <전함 테메레르>를 제작할 때 그는 64세였답니다. 풍경과 바다의 장면들을 많이 그려왔어요. 자연히 배를 그린 작품도 많았죠. 배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어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수많은 배를 많이 그려온 터너이기에, 배에 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어요. 그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도 영국 해군 전함을 그려낼 수 있을만큼 익숙했죠.


<전함 테메레르>를 살펴보겠습니다. 좌측 뒤에는 옅은 노란색, 초록색을 띈 큰 배가 보라색 하늘 구름을 밀어내면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어요. 이 배는 텅 비어있는 상태예요. 그 앞에는 어두운 색의 증기선(steamboat)가 뒤의 큰 배를 끌고 오고 있어요. 증기선에서는 검정 연기가 나오고 있고요.. 반대쪽에는 아름다운 태양이 핑크색, 노란색, 주황색 등으로 밝게 빛나고 있어요. 왼쪽의 바다는 푸른색으로 칠해진 반면, 그림 오른쪽의 바다는 하늘의 빛이 물에 비쳐서 생기는 효과를 강조하고 있어요. 당시 탬즈 강은 이 당시에 수많은 배들로 항상 붐볐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그림에서처럼 조용하고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던 거죠.


이 작품은 배를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초상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모델로 그린 것일까요? 이 작품은 그냥 강에 있는 아무 배를 그린 것이 아니고, 테메레르를 그린 것이에요. 이 배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큰 전투인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적인 배입니다. 그러나 이 전투 후에 이 배는 다시 싸울 기회가 없었으며,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이후에는 물건을 나르는 배로 사용되었어요. 영국 해군에서는 이 배가 더 이상 필요없다고 판단해서 팔게 되죠. 이 배는 오천 그루의 떡갈나무와 값비싼 부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이것을 가져다 분해해서 다른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자 했어요. 이 작품은 영웅적인 배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것이예요. 1839년 이 작품이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이 작품이 새 시대의 배에게 밀려나는 텅빈 영웅적인 배에 바치는 애가(elegy)라고 해석했어요. 거대한 범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으며, 증기선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고요.


윌리엄 터너 <트라팔가 해전> 1806-8

터너가 의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터너는 그의 작품을 한가지 방식으로만 읽을 수 있게 하지 않았어요. 다시 그림을 볼게요. 테메레르는 이미 팔렸기 때문에 영국 해군의 깃발이 걸려 있지 않은 대신, 흰 깃발이 걸려 있어요. 1815년부터 터너는 예인선(tug boat, 다른 배를 끌고 가는 배) 스케치를 많이 남겼어요. 1820년부터는 그의 수채화 작품에도 예인선이 등장하기 시작해요. 그는 예인선을 그리는 연습을 충분히 마친 상태였던 거죠. 터너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증기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어요. 이 작품에서 테메레르와 증기선의 바다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 매우 비슷한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꼭 이 새로운 증기선만이 미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터너가 실제로 테메레르가 해체를 위해 최후 정박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어요. 터너는 직접 보지 않았다고 말하죠. 이미 팔렸을 때 테메레르의 돛대는 잘린 상태였고, 또 테메레르를 끌고 가기 위해 두 대의 예인선이 동원되었고, 또 당시 템즈강은 수많은 배들로 가득차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터너는 이 일을 얼마나 진실되게 그리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대신 이 배를 접하고 그가 느꼈던 감정적인 부분을 전달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 작품은 터너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이지요.


또 혹자는 태양이 동쪽에 있기 때문에 일몰이 아닌 일출 장면임을 지적하기도 해요. 터너는 수많은 풍경화를 그려왔고 또 기후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해 왔기 때문에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은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태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터너는 이 멋진 배의 종말을 아쉬워하기만 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는 역사의 산물들을 그냥 폐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와 카라바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