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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Jul 10. 2020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와 메리 카사트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 9화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2013~2018)는 넷플릭스에서 제작, 공개한 정치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제목은 직역하면 ‘카드로 만든 집’이기에 언제라도 금방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또한 미국 하원이 House, Cards가 도박을 뜻한다는 점에서 마치 도박과 같이 비논리적인 정치판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시즌별로 에피소드들이 한꺼번에 공개되기 때문에 질질끄는 요소가 없어 매 화 넘치는 긴장감으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드라마예요. 정치판이 얼마나 더러운지,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웹드라마 사상 최초로 미국의 드라마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비평계의 인정을 받기도 했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프랜시스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와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 부부인데요, 이 둘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과 이해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들의 태도를 살피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렇지만 남자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행 스캔들이 터지면서 시즌 6는 그가 빠진 상태로 제작되는 사건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의 9화에서는 조이 반스(케이트 마라)와 프랜시스 언더우드가 만나는 장면에서 메리 카사트(Mary Casatt)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조이 반스는 워싱턴 해럴드지의 기자로, 프랜시스 언더우드와의 사적인 관계를 이용하여 특종기사를 쓰고 일약 스타가 됩니다. 그러나 점차 조이 반스가 성장하면서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 프랜시스 언더우드를 위협하게 되고, 결국에 그는 그녀를 지하철역에서 밀어서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조이 반스이지만, 결국 더 큰 욕망을 가진 자에 의해 무참하게 제거된 것입니다. 메리 카사트의 그림이 배경으로 나온 해당 씬은 조이 반스가 프랜시스 언더우드에게 사적인 관계는 청산하되, 업무적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만을 주고받자고 제안하는 장면입니다. 언더우드는 그 앞에서 어른답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그녀에 대한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메리 카사트(Mary Casatt, 1844~1926)는 미국의 화가로, 대부분의 일생을 프랑스에서 보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여행하고, 또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규 미술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866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였고, 미술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이곳에서 메리 카사트는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를 만나며 많은 교류를 나누었으며,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메리 카사트 <오페라 극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인> 1878, <파란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소녀> 1878


19세기에는 정규 교육을 받은 여성이 급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미술가의 경우, 그들의 활동을 여성적인 것에만 제한하려는 남성들의 욕구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여성 화가의 작품은 ‘여성’이라는 측면에서만 평가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남성 화가들은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성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으며, 여류 화가들은 자신들의 모성애로 어린 아이를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여성 미술가들의 헌신과 희생을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실제로 남성 미술가들이 주로 드나들던 카페, 댄스홀과 같은 부르주아의 사회적 영역에 여성은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주로 실내 풍경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는 “여성 작가, 여성 변호사, 여성 정치가는 괴물이고 발이 5개 달린 송아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여성 미술가라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여성 가수나 무용수는 괜찮다”는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성을 계급과 직업에 따라 구별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공적 활동을 하는 전문직 여성은 가정 생활의 조화를 파괴하는, 남성의 권위를 침해하는 자로 간주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카사트가 전문 화가로서의 삶을 유지하면서, 남자 동료와 동등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부유한 계급적 위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메리 카사트의 <파란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소녀>(1878)는 밝은 빛이 집 안으로 가득 들어온 실내 풍경을 보여줍니다. 네 개의 커다란 파란 안락의자가 갈색빛이 도는 회색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어린 소녀가 일종의 지루함 혹은 피곤함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옆에는 강아지가 완전한 평안 속에서 평화롭게 누워있고요. 카사트는 바느질하는 모습, 아이를 돌보거나 목욕시키는 일, 차 마시기 등 여성들이 주로 가정 내에서 하는 몸짓이나 행위를 바라보는 예리한 눈을 가졌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전통적인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문제의식 없이 묘사하였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당대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였을 때, 결혼하지 않고 전업 화가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당당히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파란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소녀>는 앞으로 다가올 조이 반스의 안타까운 운명을 반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 바깥에서 무모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조이 반스의 모습과 실내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아있는 그림 속 소녀의 모습은 대비를 이룹니다.


19세기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오페라 극장에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여인> 입니다. 카사트는 오페라 공연의 모습을 담지 않는 대신, 뒤편에 앉은 남자의 응시(gaze)의 대상이 되는, 공연을 보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똑같이 공연을 감상하고 있음에도, 여성은 다른 남성 관객에게 볼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발튀스 <꿈꾸는 테레즈> 1938, <고양이와 소녀> 1937


비슷한 맥락에서 2017년 미국에서 큰 논란을 야기했던 작품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인 발튀스(Balthus, 1908~2001)의 작품 <꿈꾸는 테레즈 Thérèse Dreaming>(1938)입니다. 카사트의 작품은 종종 이 작품과 비교되기도 하는데요, <꿈꾸는 테레즈>는 햇빛을 받으며 한 소녀가 속옷을 노출한 채로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미국 시민들은 성폭력이 점점 더 만연해져가는 시대에, 관음증을 낭만화하고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하는 데에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8천여 명의 미국 시민들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이 작품을 후손들에게 보여줄 것을 재고해달라는 온라인 청원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미술관 측은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의 역할이 여러 시대의 뛰어난 작품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작품을 철거하지 않았습니다. 발튀스는 이 작품 이외에도 <고양이와 소녀 Girl with Cat> <흰 셔츠를 입은 소녀 Young Girl with a White Shirt> 등 10대의 소녀들을 외설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논란에 시달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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