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나딘 Jul 15. 2020

[영화] 겨울왕국 속에 네덜란드 풍속화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한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은 개봉한 해의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등을 수상함과 동시에 흥행 1위를 기록하는 등 디즈니의 저력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여자 아이들의 유니폼이 되어버린 엘사의 드레스는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적어도 한 벌 이상은 구매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겨울왕국 2편에서는 다양한 엘사와 안나의 드레스로 인해 부모님들은 영화 보는 동안 걱정이 앞섰다고 합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

1,000만 관람의 흥행 성공을 이룬 겨울왕국은 뮤지컬 애니메이션답게 주옥같은 음악과 찰떡같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이미지들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을 부르는 명랑한 안나의 신(scene)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외로운 시간을 보낸 안나는 언니 엘사의 대관식 날 성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에 대한 기쁨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을 노래로 표현합니다. 바로 그 노래가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인데요. 안나와 엘사가 각자 자신의 노래를 부르지만 아무래도 명랑한 안나의 장면에 눈이 더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명화들과 디즈니 영화를 오마주한 이미지들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과연 어떤 그림들이 있었을까요? 모든 장면을 열거할 수는 없지만 몇 장면만 나열해보겠습니다.




우선, 디즈니 영화답게 미키마우스, 라푼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디즈니의 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오마주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를 부르면서 안나는 멋진 남성을 만나는 장면을 회상합니다. 아버지의 흉상을 마치 처음 보는 매력적인 남성인양 연기하며 안나는 입안에 초콜릿을 잔뜩 넣는데요. 이때 접시에 담긴 초콜릿은 <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의 한 장면을 오마주한 것입니다.

영화 <주먹왕 랄프>의 일부 장면

그렇다면 명화는 어떤 작품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To dream I’d find romance~’라는 가사를 부를 때 안나는 그네를 타는 여인 위로 뛰어오르며 그림 속 화려한 주인공인 것 마냥 좋아합니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그림은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거장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의 <그네 The swing>(1767)와 똑 닮았습니다.


(좌) 영화 겨울왕국 화면  (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그네  The swing>, 1767, 캔버스에 유채, 81×64.2㎝, 윌리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법 같은 일과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야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there’ll be magic, there’ll be fun’을 부르는 신에서 안나는 평범한 남성의 춤을 청하는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수많은 작품이 벽에 걸려있는 방에서 유난히 이 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왕족인 안나와 달리 그림에 묘사된 대상은 인물의 옷차림을 비롯하여 술병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화려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박한 삶을 재현한 해당 작품은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우아하게 누워있는 여인이 등장하는 바로 다음 그림과도 대조적입니다.


이 장면의 그림은 기존 서양화에 신화나 종교, 역사적인 인물이나 귀족들의 모습이 아닌 늘 주변으로 취급되던 서민들을 주제로 삼아 그린 풍속화(Genre Painting)입니다. 풍속화는 기존 서구 미술이 추구하던 참된 진리를 이성을 중심으로 탐구하는 것과 달리 일상의 순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 미술장르입니다. 풍속화 중에서도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16세기~17세기 네덜란든 풍속화를 연상시킵니다.

네덜란드 풍속화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얀 하빅스 스텐(Jan Havicksz Steen, 1626~1679),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피터 드 호흐(Pieter de Hooch, 1629~1684),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1525년경~1569)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보았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와 <우유 따르는 여인The Milkmaid>이 바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입니다.

네덜란드의 황금기 혹은 네덜란드의 르네상스로 불리던 17세기의 작가들과 달리 피터르 브뤼헐은 황금기의 서막을 알린 작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소작농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1551년 앤드워프 화가 조합(Antwerp Painter’s Guild)에 가입하여 직업화가가 된 후 이탈리아로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과 자신의 생각을 그림에 옮겼습니다. 일상을 담은 풍속화를 즐겨 그렸던 그는 1563년 결혼 후 브뤼셀로 이주해 ‘농민 브뤼헐(Peasant Brueghel)’로 불리며 농민들의 삶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의 작품 중 <농민의 춤 Peasant Dance>(1568년)을 오마주한 장면이 바로 겨울왕국에 등장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일부, 디즈니 제공 원작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농민의 춤 Peasant Dance>, 1568, Oil on Panel, 114 × 164 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아이들이 즐겨보는 영화이기에 아마도 원작품의 좌측에 등장하는 음주하는 인물들은 흥겹게 춤을 추고 음악을 즐기는 모습으로 대체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건축물이나 배경에 등장하는 나무의 구도 등 상당부분이 닮아 있습니다.


얀 스텐 (Jan Havicksz Steen), <침실에 있는 커플 Couple in a Bedroom>, 1665~1675, 유화, 49 x 39,5 cm

네덜란드 풍속화는 서민들의 삶을 그리면서 그 이면의 어떠한 내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순간의 장면을 그대로 이미지로 재현하면서 우리의 삶을 그것으로 제시합니다. 그렇기에 풍속화는 도박, 음주, 매춘과 같은 음탕한 삶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피터 드 호흐(Pieter de Hooch), <빈 술잔 The Empty Glass>, 1858, 패널에 유채, 46×37㎝

동시에 아이와 부모, 학교에서의 교육이나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뛰노는 장면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일반사람들의 삶의 한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 무언가 특별하지도 않지만, 악덕과 미덕이 공존하는 풍속화는 그 자체가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과도 닮아 있기에 동시에 특별하기도 합니다.



(좌) 얀 스텐, <마을학교 선생님 The Village School>, 1665.    (우) 얀 스텐, <춤추는 커플 The Dancing Couple>, 1663.

주변으로 터부시되던 이들의 삶을 담은 풍속화는 연속되는 시간 속의 찰나를 포착하여 순간을 영원히 지속시킨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작가는 매우 함축적인 시간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시간을 초월하여 당시 그의 현재를 지금까지 우리에게 현재로 제시하는 특수성을 부여합니다.

한 철학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 속에 있고, 그 순간의 미(美)에 영원이라는 시간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풍속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네덜란드 풍속화를 예술의 승리(Triumph der Kunst)라 말했습니다.

Written by 그레나딘


https://blog.naver.com/misoolin25/221978609934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와 메리 카사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