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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Jul 15. 2020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와 고야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1987)는 중권 거래소와 그곳에서 일하는 증권브로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월 스트리트>에서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는 불법적 방법을 활용해 주가를 조작,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체포되고 말죠. 이 작품의 후속작으로 2010년 개봉한 영화가 바로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입니다. 이 영화는 2008년 미국의 리먼브라더스사가 파산한 것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는데요. 2015년 나온 영화 <빅쇼트>에서도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답니다. 남자주인공 샤이아 라보프(제이콥 무어)는 미국의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Peter Lynch)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하네요.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히 살펴보면요, 샤이아 라보프는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트레이더예요.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대표가 자살하자, 악성 루머를 흘려 대표를 파산에 이르게 한 브레톤 제임스(조슈 브롤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11년만에 출소한 고든 게코를 찾아갑니다. 영화는 이 둘의 복수극을 중심으로, 게코의 딸이자 라보프의 애인인 위니 게코(캐리 멀리건) 사이의 관계에서 등장하는 사랑과 갈등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이 영화에서 살펴볼 작품은 브레톤 제임스의 방에 걸려있는 바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삼키는 사트루누스>(1819–1823)입니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는 스페인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14살부터 종교화가 호새 루산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1775년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의 부름을 받아 궁궐에 들어가게 됩니다. 고야는 그곳에서 방의 벽을 덮을 태피스트리 밑그림을 그렸는데, 활기차고 밝은 로코코 양식의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1780년에는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고,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왕족과 귀족 등 상류계층 인물들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고, 이를 통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실험할 수 있었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 Oil mural transferred to canvas 143 cm × 81 cm 1819-23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는 난청과 어두운 시대 상황으로 고통받던 고야가 말년(1819~1823)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는 마드리드 외곽에 전원주택 ‘킨타 델 소르도(Quinta del sordo, 귀머거리의 집)’를 장식하기 위해 회벽 위에 14점의 유화를 그렸는데요. 이 작품들은 대중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그린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고야 역시 당시 귀머거리였지만, 이전 주인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이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검정, 회색 등 어두운 색조를 띠어 ‘검은 그림들(pinturas negras)’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그림은 식사하는 공간에 그려진 6개 작품 중 하나 입니다. 고야는 이 작품들에 이름을 붙인 적이 없는데요, 그가 죽고 난 후에 미술평론가들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1874년, 이 집의 주인이었던 바론 드 에를랭헤르(Baron Emile d'Erlanger)가 프레스코화를 캔버스에 옮겼고, 현재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oil on canvas 180x87cm 1636


사투르누스는 고대 로마의 농경신으로, 그리스에서는 크로노스(Cronus)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태어나자마자 잡아먹었다고 전해져요.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역시 같은 주제로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1636)을 그렸어요. 두 작품 모두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기괴한 표현이 두드러지는데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혈육인 자식을 잡아먹는 끔찍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야의 집에는 고결함을 상징하는 <유디트(Judith)> 그림 맞은편에 쾌락의 끔찍함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그려져 서로 대조를 이루도록 했답니다. 루벤스의 사루트누스가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고야의 사트루누스는 광기에 사로잡힌 추한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것은 단순 신화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전쟁에서 느낀 인간에 대한 회의, 각기 다른 세대 사이의 갈등, 병마와 싸우며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을 사투르누스 도상을 빌어 표현한 것처럼 보입니다. 스페인에서 있었던 오랜 전쟁은 그들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내 몰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면요. 제이콥 무어가 브레톤 제임스를 처음 찾아갔을 때 리처드 프린스, 키스 해링 등 여러 미술작품들이 가득 걸려있는 그의 방에서 제이콥은 이 그림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브레톤은 다른 고야의 작품들은 다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있지만 이 스케치는 미국에 있다면서 얼마나 희소한 작품인지 자랑하죠.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제이콥의 복수가 성공하고 브레톤이 몰락하게 되는데요. 이때 분노에 찬 모습으로 찢어버리는 그림 역시 이 작품입니다. 자신의 끝없는 욕망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 브레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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