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6일부터 6월 3일까지 미국의 HBO사에서 방영된 <체르노빌>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습니다. 1시간 가량의 러닝 타임을 가진 영상 총 5부작으로 구성된 웰메이드 드라마입니다. 2019년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비평계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답니다. 이 드라마는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있었던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재난 장르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드라마는 실제 사고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과 정치적 이유에서 거짓을 말한 대가로 이 사고가 예고된 인재임을 드러냅니다. 거짓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 드라마 시작부터 끝까지 핵심을 관통하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합니다.
드라마는 시작하자마자 폭발 사고를 보여줍니다. 그 이후의 대처와 수습 과정이 주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건의 현장 담당자인 댜틀로프(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보조 수석기술자)는 폭발 소식을 듣고도 그것을 부정하며 직원들을 현장에 계속 투입시켜 확인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건을 보고 받은 상사들 역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자 하지 않고 고르바초프(소련 공산당 서기장)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을 안심시키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에 사고 현장 정화작업을 돕기 위해 레가소프(쿠르차토프 연구소 부소장)와 셰르비나(소련 정부 장관회의 부의장)가 투입되어 현장에 파견됩니다. 여러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사고의 뒷처리는 불합리하게 진행되고,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외면해 더 많은 인명 손실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소방대원, 광부, 의료진 등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뛰어들어 총알받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레가소프와 울라나 호뮤크(핵물리학자)는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위험천만한 현장에서도 두려움 없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끝없이 감시하고, 억압하며, 사실을 은폐하고 보여주기식 수습을 하기에 급급합니다.
고위급 관료들의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장면에서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인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의 작품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1885)을 볼 수 있습니다.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의 역사와 민중의 삶을 그려낸 화가로, 내면의 심리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사실주의(realism)는 1830년대 프랑스의 낭만주의(romanticism)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낭만주의 회화가 역사적이거나 도덕적인 주제, 혹은 감동적인 이야기나 이상화하여 연출된 장면 등을 다루었다면, 사실주의 작품은 사물 자체와 보이는 그대로의 형상이 스스로를 표상해야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사실주의는 이미 유럽의 시대 정신 그 자체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 전쟁에서 패배한 군인들이 절망한 모습 등 유쾌하지 않은 장면들도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도래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운동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리야 레핀은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하고, 민중의 일상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1870-1873)은 동물과 같이 가죽끈을 몸에 묶인 채 비인간적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는 11명의 인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1885)은 러시아의 황제인 이반 4세와 그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530년 태어난 이반 4세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잔인한 폭군이자 황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 유래한 한자어인 뇌제(雷帝)는 직역하면 ‘번개왕’, 영어로는 ‘the terrible’, 우리말로는 폭군이나 패왕에 해당하죠. 이반 4세는 축복받지 못한 왕자로 태어났으며, 자신을 보호하던 어머니 황비는 다른 가문과 귀족들의 반발로 반대파에 의해 독살됩니다. 어렵게 황제가 된 그는 포악하고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로 매우 불안정한 성정을 가졌는데, 이를 잘 다독여준 것이 황비 아나스타시아 로마노바입니다. 그러나 황비 역시 30살의 나이에 암살되어 이반 4세는 미쳐버리게 됩니다. 이후 그는 암살의 혐의가 있거나 황비의 죽음으로 이득을 얻을 가문들을 잔혹하게 살해하여 제거합니다. 결국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죠.
어느 날 불시에 아들의 방에 간 이반 4세는 옷을 충분히 갖춰입지 않은 며느리를 보고 단정치 못하다며 분노를 참지 못해 마구 매질을 하였고, 임신 중이던 며느리는 유산을 하게 됩니다. 그는 아내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들 바실리 황태자도 무자비하게 지팡이로 때려 죽입니다.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은 관자놀이를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아들을 안고 붉은 방에서 절망한 표정을 지은 이반 4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공포와 적막으로 가득한 방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긴 이 그림에서 아들을 죽인 아버지의 후회, 그리고 광기가 전달됩니다.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은 2018년 5월에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트레티야코프 국립미술관에서 한 취객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데올로기적 이유에서 작품을 의도적으로 파손하려고 했다고 하네요. 이반 4세를 관광객들이 보고 나쁘게 생각하는 걸 막고자 했다고 진술했다고 해요. 이반 4세는 즉위 후 13년간은 명군으로 훌륭한 리더쉽을 보여주었으나, 왕비의 사망 이후 최악의 폭군으로 변했으니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13년에도 이 작품은 정신병자에게 공격당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작가가 살아있어 직접 복원을 했다고 하네요.
<체르노빌> 3화 중반부에 등장한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은 러시아 현대미술 작품 중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지만,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에서는 자신들의 실수로 수많은 자녀들(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게 된 자신들에 대한 자괴감,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은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 역시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만들어 낸,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