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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Oct 13. 2020

[영화] <5 to 7>(2014) 과 에드워드 호퍼



오늘은 2014년 개봉한 멜로 영화 <5 to 7>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타트렉>의 안톤 옐친과 <007 스카이폴>의 본드걸 베레니스 말로에가 주인공을 맡아 더욱 관심을 불러모았는데요. 안톤 옐친은 24살의 뉴요커 작가 지망생 브라이언 역을 맡았고, 베레니스 말로에는 33살의 파리지엔느 유부녀 아리엘 역을 맡았어요. 아리엘과 발레리 부부는 배우자가 있어도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허락하기로 했어요. 쉽게 말해 단순 불륜 미화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두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멋진 뉴욕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어요. 


영화 도입부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로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등장해요. 그곳에서 브라이언과 아리엘이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작품 두 점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요. 여자 주인공이 프랑스인인 만큼 불어를 사용하는 장면도 많고, 프랑스와 미국의 문화적 차이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해요. 가족과 결혼에 대한 관념과 자유를 허용하는 범주에서도 차이를 보이기도 하고요. 호퍼의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인 것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에드워드 호퍼 <주유소(Gas)> 1940, <카페테리아의 햇빛(Sunlight in a Cafeteria)> 1958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화가로, 도시에 살고 있던 평범한 미국인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는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미국인들이 느꼈던 고독과 절망을 담담하게 화폭에 담았어요. 그의 작품을 보면 고요한 적막함 속에 외로움, 상실감, 지루함 등이 느껴져요.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나가죠. 호퍼는 멜랑콜리한 시선으로 이 같은 침묵의 순간을 건조하게 표현해냅니다. 어쩌면 이러한 소외된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아리엘은 호퍼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작품이 죽음과 위협에 관한 그림이라고 말해요. 텅빈 것처럼 보이는 공간, 멍한 표정의 인물들을 언급하며, “호퍼가 미국 화가의 전형이라면 미국은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기까지 하죠. 


에드워드 호퍼 <밤을 새는 사람들(Nighthawks)> 1942


호퍼가 주로 그렸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미국인의 일상적 삶의 모습(주유소, 모텔, 식당, 영화관, 길거리, 건축물 외관 등), 그리고 바다와 시골 풍경이예요. 영화에서 언급된 호퍼의 두 작품 역시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어요. 호퍼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밤을 새는 사람들(Nighthawks)>(1942)은 식당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그린 그림이예요. 식당 내부의 밝은 조명은 어두운 바깥과 대비되어 공간을 더욱 연극적으로 만들어요.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크게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작품 속 인물들은 움직임이 전혀 없이 무표정한 채로 그려졌어요. 또한 얼굴의 표정이나 생김새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도시에 그저 지나칠 법한 익명의 누군가 정도로 느껴져요. 작품의 제목 ‘Nighthawks’는 사전적으로는 새의 한 종류인 쏙독새, 혹은 밤도둑이라는 뜻을 가져요. 주로 낮보다는 밤에 포식자가 먹이를 사냥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 속의 인물들은 자신을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묘사되어 보는 관객은 이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답니다.   


에드워드 호퍼 <롱 렉(The Long Leg)>, 1930


호퍼는 1916년부터 1919년까지 몬헤건섬(Monhegan Island)에서 순수 풍경을 많이 그렸어요. <롱 렉(The Long Leg)>(1930)은 매사츄세츠 프로빈스타운의 롱포인트 등대(Long Point Light) 근처의 배 한 척을 그린 것입니다. 화창한 날 오후 3시경으로 추정되는 데요, 돛이 휜 정도를 통해 배가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작품은 여가 생활을 보여주는 풍경을 담은 것이지만, 배 위에도, 배경에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썰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답니다. 호퍼는 미국의 리얼리즘의 전통을 따라 빛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풍경을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건물과 배는 매우 생력적으로 표현했고, 그림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고립된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특성은 몰개성적인 모더니즘을 반영한 듯 합니다. 


호퍼의 작품은 히치콕 감독을 비롯해 많은 문화예술 생산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답니다. 국내에서도 호퍼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제작한 SSG 광고를 보신 적 있을 거예요. 이번 기회를 통해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한 번 살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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